교통 사고 다발 지역 길 탓인가 사람 탓인가
  • 허광준 기자 ()
  • 승인 199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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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30곳에 안전 시설물 보완…운전자 안전 의식도 높아져야

서울 여의도광장을 가로지르는 왕복 6차선 도로. 곧게 뻗은 1.4km 직선 도로를 자동차들이 질주한다. 중간에 문화방송쪽으로 좌회전하려는 차량을 위한신호등이 하나 있을 뿐 어떤 장애물도 없다. 시원스레 내달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이 도로는 지난 해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사람이 가장 많이 죽거나 다친 곳이다. 작년 한해 이곳에서만 인명 사고가 1백77건 발생해 5명이 죽고 1백83명이 부상했다. 이틀에 한번 꼴로 인명 사고가 난 셈이다.
 지난 1월 말 현재 서울시에 등록되어 있는 차량은 모두 1백94만5천여대로 한국 전체 자동차의 4분의 1이 몰려 있다. 차는 많고 도로는 부족하다. 그 중에서도 몇몇지역은 사고가 많이 나기로 악명 높아 운전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운다. 위의 여의도 도로, 마포구 대건로(인명 사고 1백4건), 성북구 국민대 앞(73건), 강서구 마곡동 가양 가스 앞(73건) 같은 곳이 대표 적인 사고 다발 지역이다.(43쪽 표 참조).
 서울경찰청은 이처럼 유달리 사고가 많이 나는 지역을 30곳 골라 5월까지 사고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안전 시설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들 장소는 서울의 30개 경찰서에서 자기 지역 안에 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을 꼽은 것이다.
 이 30곳에서 작년에 발생한 인명 피해 사고는 모두 1천33건이다.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8백3명 중 10%에 해당하는 83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왜 이처럼 같은장소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 많은 운전자들은 “사고는 날 만한 곳에서 난다”라고 말한다. 이들 사고 다발 지역은 이같은 통념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도로 구조와 미약한 준법 정신이 사고 요인
 일반적으로 교통사고는 도로 환경 요소가 합쳐쳐 분석된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도로 자체에 ‘혐의’를 둘 수밖에 없다. 도로 교통안전협회 장덕명 연구위원은 “같은 장소에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은 도로 구조와 운전자의 미약한 준법 의식, 불충분한 안전 시설물 등 여러 요인이 어울려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여의도 도로의 경우 마포대교나 서울교를 건너온 자동차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데도 별다 른 속도 제한 장치가 없고, 중간에 좌회전하는 곳이 있어 사고 발생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국민대 앞의 왕복 4차선 도로인 정릉길 역시 북악 터널을 빠져나온 차들이 내리막길로 내닫는 데 다가 도로가 심하게 굽어 있어 끊이지 않는다. 다른 사고 다발 지역도 대부분 경사져 있거나 교차로이거나 굴곡이 심하다. 그만큼 도로 환경이 나쁜 것이다.
 강북강변로의 마포대교~양화대교 구간인 마포구 대건로는 강변을 따라 심하게 굽어 있어 중앙선 침범 사고가 잦다. 이곳은 30곳 중에서 교통안전시설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어 이미 주요 시설 설치가 끝난 상태이다. 현재 이곳에는 아예 중앙분리대로 양쪽 차선을 나눴으며,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시설을 했다. 또 도로 양 옆으로는 굽은 길임을 표시하는 ‘갈매기’ 경고 표지판을 세우고, 경광등 ․ 시선 유도등도 집중적으로 설치했다. 이 구간에 들어서면 ‘사 고가 엄청나게 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이다.

예방 투자에 돈 아끼지 말아야
 서울경찰청은 이들 30곳에 대해 안전 시설물을 보완해야 할 곳은 보완하고, 도로 구조상의 문제로 길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곳은 서울시와 협조하여 사고 요인을 줄일 예정이다. 현재 일선 경찰서에서는 이 지역 말고도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에 대해 수시로 개선안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도로 구조가 사고 발생 요소가 되는 지역에 대한 전문적 진단과 치료가 시급한 실정이다.
 한 경찰서 교통과 직원은 “도로나 건축에 대해 공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은 일선 경찰관이 도로 여건을 모두 감안해 사고 방지책을 짜 낸다는 것은 무리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날 만한 요소를 미리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도로 구조에 문제가 있으면 근본적인 데에 손을 대야지, 표지판이나 신호등 같은 교통 시설물만을 보완해서는 사고를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행정 당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예산이다. 교차로에 신호등을 하나 설치하는 데에도 목돈이 들어가는 마당에, 서울시 각 구청이나 경찰청이 도로 자체를 여기저기 손볼 수 있는 예산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이와 관련해 장덕명 연구위원은 이제는 안전에 대한 대가를 따져 보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교통사고를 내거나 당한 당사자의 물적 ․ 심적 고통뿐 아니라 사고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사고 예방에 투자하는 돈이 아까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은 사고가 잦은 30곳에 대한 보완 개선이 끝나면 올해 하반기에는 95개 지역 으로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번 작업의 성과는 상당한 기간을 두고 지켜 보아야 하겠지만, 시설 보완만으로도 사고를 꽤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같은 기대는 시설 개선과 더불어 운전자들의 안전 운행 의식도 함께 놓아질 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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