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외제차 산다
  • 장영희 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199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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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탁월하고 가격 경쟁력 갖춰…두달간 9백대 팔려 호황 국면

서울 강남구 논현로. 수입 자동차 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이 거리는 다른 곳보다 일찍 봄을 맞는 인상이다. 전시장에 진열된 ‘잘생긴’ 수입차들은 고객을 향해 자신만만한 자태를 보인다. 전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예외가 아니다. 다소 상기된 이들의 얼굴에서는 ‘이제야 혹독한 겨울을 벗어나는 구나’ 하는 기대감이 엿보인다.
 수입 자동차 시장은 지난해의 여세를 몰아 올해 성장기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94년의 수입차 판매 대수는 3천8백66대로 93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87년 8월 시장 개방 가장 좋은 경기를 누렸다. 올 1~2월에 8백94대를 판 수입 업체들은 가속도가 붙으면 올해 7천대는 팔지 않겠느냐 하는 낙관적 관측을 내놓는다.
 외국 자동차 업체로부터 정식 독점 공급권을 받은 수입 업체는 11개. 이들은 벤트 BMW 폳 GM 크라이슬러 볼보 사브 푸조 시트로앵 아우디 같은회사로부터 모델 74개를 들여와 팔고 있다. 이들 외에 수입차 시장을 춘추 전국시대로 달군 주역은 ‘그래에 임포터’들이다. 이들은 특정 업체로부터 공급권을 받지 않은 수입업자들로, 현지 딜러에게서 차를 공급받는다.
 수입차를 파는 사람들은 수입차 판매를 ‘분위기 장사’라고 요약한다. 정부의 정책과 사회 분위기 따라 시장 환경이 좌우돼 왔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입차를 구입하면 세무조사 대상이 된다’는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 조성 같은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장벽이다. 한국수입 자동차협회 강상도 회장은 올해 관세가 10%에서 8%로 인하됐고, 판매가격이 7만원 이상인 고급 차에 붙던 취득새 중과 규정이 폐지된 것이 올해 장사에 좋은 영향을 주겠지만, 비관세 장벽이 서서히 걷히는 환경이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아경제연구소가 지난해 승용차 보유자 9백 6명을 대상으로 외제차 구입 의향을 물은 설문 조사에 따르면, 외제차를 살 용의가 있다는 응답자가 10명 중 4명이었다. 10명중 6명을 국산차에 긍정적 또는 무조건적 지지를 보냈지만 외제차 선호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소비자들을 수입차로 이끄는 유인은 우선 수입차가 주는 색다른 이미지가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짐나 톡톡히 대가를 치르며 수입차를 사는 이유가 차별성 때문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산 승용차가 주지 못하는 뭔가 다른 유인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난해 봄 가수 조용필씨가 사고를 당했다. 그의 차는 전파됐다. 하지만 조씨는 가벼운 부상을 입은 정도였고 조수석에 탄 사람은 멀 쩡했다. 조씨가 운전한 차는 벤츠300SEL이었다. 벤츠를 수입하는 한성자동차 이회설 영업담당 이사는 “고객들이 수입차에 매력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이다”라고 지적한다. 사고가 났을 때 사람이 죽는 것과 생명을 건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좋은 차라는 명성을 누리는 차들의 안전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다. 대표적 기술이 크럼플 존과 케이지(새장) 시스템이다. 사고를 당해 충격이 전해지면 차체가 예정된 순서대로 접히낟. 본네트에 들어 있는 엔진과 동력 전달장치들은 아래로 어진다. 엔진과 동력 전달장치가 사람에게 밀려드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다. 이를 통해 충격의 정도가 흡수된다. 뒤쪽도 마찬가지다. 또 사람이 타느 ㄴ공간인 승객식을 하나의 새장으로 설정해 전후 좌우에 안전장치를 설치했다. 안전의 대명사인 에어백은 보조 장치일 뿐이다.
 세계적 명차를 제조하는 회사는 이런 수동적 안전성 개념을 넘어 능동적 안정성을 추구한다. 사고를 미리 막는 미끄럼 방지 장차(ABS 브레이크) 같은 기술이 그것이다. 사실상 자동차의 성능과 관계된 모든 기술이 능동적 안정성과 관련이 있다. 국산차는 경제성 ․ 시동 주행성 ․ 편리성 같은 실용적 성능 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지만, 안전성과 관련된 차체 구조에서는 세계적 명차들과 격차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3천만원대 수입차, 국산 고급 차 위협
 한국 땅을 질주한는차  가운데 가장 비싼 차는 영국제 롤스로이스다. 이 차는 ‘고객의 자격을 심사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구입하기가 까다롭다. 국내 판매가격은 2억 7천8백만원이다. 롤스로이스르 수입하는 인치케이프코리아사 이경민 차장은 “롤스로이스 4~5대가 한국에 있다.”고 맗한다.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이 94년 1월에 이 차를 인도 받았으며, 하얏트 호텔은 귀빈 접대용으로 구입했다. 한진 그룹 조중훈 회장이 에어버스사로부터 1대를 기증 받았으며, 미 8군이 1~2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비싼 차는 독일차다. ‘달리는 궁전’ 벤츠 S600L은 국내 판매가가 1억9천8백만원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2대가 팔렸다. 코오롱상사가 수입하는 BMW 뉴 750iL은 1억6천5백만원이다. 미국인들은 캐딜락 컨코어를 구입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것으로 여기는데, 국내에서 이 차는 6천9백85만원에 팔리고 있다.
 가장 싼 차는 배기량 1천8백cc인 아우디 골프GL로 2천2백만원이다. 수입차는 대체로 4천만~5천만원대가 많지만 가격 경쟁력 면에서 국산차와 비교해 손색이 없는 2천만~3천만원대 차도 꽤 있다. 동부산업이 수입하는 푸조 306XT와 405SRI, 삼환까뮤가 들여오는 시트로엥 Xantia SX, 신한 자동차가 공급하는 사브 900ST, 인치케이프코리 얼아사가 들여오는 GM 그랜드 앰, 기아자동차가 수입하는 머큐리 세이블GS 등이 2천만원이다. 3천대만원대 수입차인 세이블LS, 푸조의 일부 모델, 한진건설이 수입하는 볼보의 940GL, 크라이슬러 이글 비전STi등은 그랜저(현대) ․ 포텐샤(기아) ․ 아카디아(대우)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는 미국 포드사의 머큐리 세이블이다. 기아자동차가 89년 5월부터 포드사에 프라이드(수출자 이름은 페스티바)를 수출하며 (현재는 아벨라) 무역 마찰을 피하기 위해 대응 수입하는 세이블은, 지난해 1천89대가 팔려 전체 수입니 28.2%를 차지했다.
 수입차 고객은 기업체 사장급 인사와 대형 음식점 주인 등 자영업자, 의사 ․ 변호사 같은 부유한 전문 직업인, 연예인 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종에 따라 구입 이유도 다르다. 벤츠와 캐딜락은 대기업에서 의전용으로 주로 구입하고, BMW는 자유분방한 자유 직업인과 자동차 마니아가 좋아하며, 크라이슬러는 자영업자들이 주로 산다. 요즘 인기 절정에 오른 가수 ㅅ씨와 ㅇ씨, 탤런트 ㅅ씨, 성우 ㅂ씨와 ㅇ씨가 지난해 사부를 샀다. 볼보와 푸조도 연예인에게 인기가 높다. 연령대로 보면 40대 중반 이상은 벤처 ․ BMW르 선호하고, 30~40대는 볼보 ․ 사브 ․ 푸조와 같은 증가 유럽차와 미국 ‘빅3’(GM ․ 포드 ․ 크라이슬러)를 좋아한다.
 차를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차르 선택하는 것은 남녀가 상대방을 고르는 일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일단 멋진 외모에 끌리는 것처럼 우선 차의 스타일링에 반한다. 그 다음 사람들이 상대방의 인적 사항 ․성격 ․품성 등에 눈을 돌리듯이 ‘어느 회사 제품인가, 최고 출력 등 엔진 성능은 어떤가, 편안한 차인가’ 여부를 살피게 된다. 사람이나 차나 정말 괜찮은 대상을 구했더라도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차를 살 때는 되팔 경우 얻을 수 있는 잔존 가치도 고려한다.
 차를 선택할 때 가격표나 제원 등은 유용한 정보가 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똑같은 경쟁 차종은 없다. 경제력과 용도에 적합한 차를 고를 수 밖에 없다. 한달 평균 소득이 최소한 3백만원은 넘어야 수입차를 탈 수 있는 것으로 수입 업체 직원들은 추정한다. 이는 그랜저 고객과 비슷한 수준이다. 94년에 그랜저를 산 고객은 3만2천5백15명이였다. 최고급인 6기통 3천5백cc 는 1천2백29대 팔렸다. 포텐샤는 2만1천25대, 아카디아는 3천4백45대 팔렸다. 이 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수입 업체가 노리는 0순위 잠재 고객이다. 외국차 수입 업체들은 이미 이들의 신상 명세서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된다.

시장점유율 1%되면 가격 파괴 시작
 ‘우리 시대 최고의 자동차’(BMW 5시리즈). ‘생각보다 훨씬 빨랐습니다.’(메르세데츠 벤츠 마스터피스). 최고로 격찬 받는 차는 흔치 않습니다.(볼보850). ‘이런 파워 드라이빙은 없었다.’ ‘아름답게 절제된 품격의 상징입니다.’(푸조605). 수입 업체들은 이런 광고 문구로 수입차가 탁월한 성능에다 타는 사람의 사회 ․ 경제적 지위와 인격, 그리고 성공을 상징한단는 점을 은근히 드러낸다.
 자동차 수입 업체 대부분은 영업망과 애프터 서비스망 확충에 열심이다 푸조 ․ 사브 ․ 크라이슬러 수입 업체들은 저가 전략을 구사해 판매 확대를 꾀하고 있고, 한성자동차 ․ 코오롱상사 ․ 한진건설 등은 더 나은 서비스로 고객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꾀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안되는 수입 업체들은 당장 자기들이 취하는 비교적 높은 마진을 줄이기 힘들겠지만, 판매가 늘어나면서 점점 소비자 가격을 낮출 여력이 생길 것이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0.4%에도 미치지 못했다. 1%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면 가격 파괴 전략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많다.
 지난해 8월 통상산업부는 올해 개방 일정이 ‘최선이자 최종안’ 이라고 못박고 96년까지는 더 이상 추가 개방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국내 업계가 예측한 수준보다는 앞서가고 있다. 개방 압력은 점점 거세질 것이고 일본차도 2000년이 되기 전에 한국 시장에 상륙할 공산이 크다.
시장 개방은 소비자에게 즐거운 일이다. 다양한 차 중에서 좀더 싸고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 자동차 업계는 생존을 위한 철저한 싸움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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