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큰손 싱가포르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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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섹 등 세계 최고 투자회사 맹활약…세계화·중앙 집중으로 번영
 
싱가포르는 땅 덩어리 6백92㎢에, 인구가 4백35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하지만 나라가 작다고 국력도 약하리라고 얕봤다가는 큰코다친다.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5천 달러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전세계에서 세계화가 가장 잘 된 나라(또는 도시)로 손꼽힌다. 싱가포르는 또 정부의 효율성이 가장 높기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2년 4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런 싱가포르에 별명 두 개를 붙여주었다. 하나는 외국인 혐오증이라고는 눈 씻고 찾을래야 찾아볼 수 없는 ‘글로벌(global) 싱가포르’. 다른 하나는 국가 전체가 중앙 집권적 방식으로 일사불란하게 운영된다는 뜻의 ‘조합주의자(corporatist) 싱가포르’이다.

싱가포르의 특이 체질은 사방이 이슬람 국가들로 둘러싸인 불리한 입지 조건에서 탄생했다. 싱가포르는 1965년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 전 총리의 영도 아래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이루었다. 당시 싱가포르는 화교의 영향권 확대를 우려한 주변 국가로부터 상당한 경계와 박해를 받았다. 싱가포르가 이같은 상황에서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채택한 것은 ‘개방’과 ‘해외 진출’ 그리고 ‘중앙 집중’이었다. 이때 리콴유 전 총리가 취했던 맨 처음 조처는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나라’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투자를 잘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최대의 국영 투자 회사 테마섹이 본보기다.

테마섹은 전체 투자의 절반을 싱가포르항공·싱가포르통신 등 싱가포르 회사들에 하고 있다. 나머지 절반이 해외  투자 부문인데 이 중 상당 부분은 아시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테마섹, 1년간 아시아에 1백30억 달러 투자

테마섹은 지난 3월까지 1년간 아시아 지역 자산을 불리는 데에만 1백30억 달러를 썼다. 중국 은행에 대한 테마섹의 투자 현황을 보면 이 기업의 위상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2005년 9월 현재, 테마섹은 중국 최대의 시중 은행인 중국은행의 지분을 10% 보유하고 있다. 테마섹과 나란히 투자에 참여하고 있는 금융 회사들은 메릴린치·UBS 등 그 이름도 화려한 세계 굴지 금융사들이다.

테마섹은 또 중국 굴지의 시중 은행인 중국건설은행에도 투자하고 있는데, 투자 파트너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이다. 중국의 주요 은행에 대한 투자에 한국 투자 회사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실정을 감안하면, 테마섹이 얼마나 인정받는 큰 손인지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다. 테마섹의 일거수 일투족은 세계 유수의 경제 전문지들이나 신용 평가 기관으로부터 빠짐없이 체크되고 있다. 그 결과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테마섹홀딩스의 호칭 회장은 지난 10월31일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해 발표한 ‘세계 경제를 이끄는 파워 여성’ 7위에 올랐다. 현 리시엔룽 싱가포르 총리의 부인이기도 한 그녀는 지난 2002년부터, 총 자산 규모 5백50억 달러에 이르는 테마섹의 경영권을 맡아 중국·인도에 과감한 투자를 벌이는 등 경영 수완을 높게 평가받아 ‘세계의 파워 여성’ 명단에 올랐다.

테마섹은 세계 유수의 신용 평가 기관인 스탠다드앤푸어스나 무디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지난해 테마섹은 스탠다드앤푸어스와 무디스 양 기관으로부터 모두 최고 등급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테마섹과 같은 큰 투자 회사로부터 관심을 받거나 투자 제의를 받는 일은, 국제 경제계에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드는 것’에 비유된다. 신용도 최고인 투자 회사가 투자한다면 그 회사의 투자도 투자이지만, 이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다른 투자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고, 조건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한국도 ‘호박이 넝쿨째 굴러드는 경사’를 맞을 뻔했다. 테마섹 관계자가 싱가포르의 또 다른 간판 투자 회사 GIC(싱가포르투자공사)와 함께 S프로젝트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 한국을 직접 찾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뒤 이른바 지난해 5월 ‘행담도 불똥’이 S프로젝트로 번져 투자가 없던 일로 되면서 호박은 넝쿨째 날아갈 위기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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