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cm 앞 촛불도 불어 끄지 못한다면?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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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사망 원인 4위,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 급증

 
 담배가 암을 비롯한 수십 종의 질환을 일으킨다는 연구 보고서가 수차례 나왔지만, 아직도 ‘강심장’들은 느긋하게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러나 ‘설마, 나한테 무슨 일이…’라는 식의 기대는 금물이다.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 흡연자들은 십중팔구 담배로 인한 후유증을 겪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과 타르를 비롯한 4천여 가지 독성 물질이 인체로 파고든다. 그로 인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는 기관은 허파라 불리는 폐이다. 궁극적으로 담배는 폐암?폐기종(폐포가 파괴되어 폐가 탄력을 잃는 병)?만성폐쇄성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C OPD) 같은 심란한 병들을 유발한다.
 그 가운데 최근 가장 눈총을 받는 질환은 CO PD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어느 폐 질환보다 환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학회)가 2000~2004년 한림대성심병원?삼성서울병원?영동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 등 7개 병원을 조사한 결과, 5년간 CO PD 진단 환자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2000년에 1만5천2백95명이었던 환자가 2004년에 1만9천8백87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COPD는 조류독감처럼 위험천만한 질환이다. 이 질환은 현재 전 세계 사망 원인 4위에 올라 있다. 세계보건기구(WH O)는 2020년이면 COPD가 3위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한다. 정기석 교수(한림대 성심병원?호흡기내과)는 “학회와 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국내 45세 이상 남성의 12%가 COPD 환자임이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호흡기 장애 등록자 상황을 살펴봐도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2003년에 중증 COPD  호흡기장애(1~3등급) 등록자는 모두 7천39명이었다. 그러나 2005년 6월 그 숫자는 1만8백15명으로 불어났다. 2년간 54%나 늘어난 것이다. 사망자도 점점 늘고 있다. 1983년, COPD로 목숨을 잃은 한국인은 1천2백29명, 그러나 2004년에는 5천4백60여 명이 COPD가 안겨주는 고통에 무릎을 꿇었다.

 쉽게 설명하면, COPD는 만성기관지염이나 폐기종에 의해 기도가 좁아져서 호흡 곤란이 일어나는 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면 흔히 요란한 기침과 함께 객혈(피를 토함)?객담(가래를 뱉음)?천명(쌕쌕대는 소리)과 호흡곤란 등을 경험한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송정섭 이사장(가톨릭대 성모병원)은 “어쩌면 COPD가 폐암보다 더 고통스러운 질병일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폐암은 발병한 뒤 즉각 고통이 찾아오지만, COPD는 옥죄듯이 서서히 고통을 일으켜 긴 시간 환자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COPD가 무서운 또 한 가지 이유는 폐 기능이 50% 이상 손상되기 전까지 발견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 말은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기도 폐쇄가 서서히 일어나 전문가도 눈치 채기 어렵다는 뜻이다. 게다가 COPD는 증세가 천식과 비슷해, 전문가들도 가끔 천식으로 오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폐 기능 50% 이상 손상되어야 비로소 발견

 병이 진행되어 중증이 되면 환자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15cm 앞에 있는 촛불도 끄지 못할 정도로 숨이 허약해진다. 물론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상생활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삶의 질도 형편없이 저하된다. 더 심각해지면 호흡 곤란과 기침 등으로 며칠씩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고, 끝내 탈진 상태에 이른다. 이 상태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의식이 혼미해지고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고통스럽지만 죽을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산다는 환자가 적지 않다”라고 김영환 교수(서울대병원?호흡기내과)는 말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질환이지만, 원인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다. 담배. 의사들은 흡연을 COPD 발병의 가장 주요한 인자로 꼽는다. “80~90%의 환자가 담배 때문에 이 병을 경험한다. 흡연으로 먼지 등을 걸러주는 섬모 운동에 이상이 생기고, 점액 분비선이 비대해지면서 고통이 찾아온다”라고 정기석 교수는 말했다. 이산화황이나 이산화질소가 뒤섞인 대기, 카드뮴이나 이산화규소 같은 물질에서 배출되는 화학가스 등도 위험 인자로 꼽히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COPD가 비교적 늦게 발현된다는 사실이다. COPD 환자의 대부분은 50~70세이다. 2004년 기준으로 보면, 환자 1만9천8백87명 가운데 50~70세가 1만8천4백51명이었다(그 중에 여성이 3천98명). “20년 이상 담배를 피운 사람들에게서 주로 발병하기 때문이다”라고 김영환 교수는 설명했다.

 
 COPD에 걸리지 않으려면 건강이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이나, CO PD 발병이 의심되는 사람은 진찰?흉부방사선 촬영?폐 기능 검사를 통해 적극 예방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다가오지 않은 재앙에 미리미리 대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호흡기 질환에 걸리지 않는 '여섯 가지 지침'을 정해서 발표했다(아래). 송정섭 이사장은 11월18일 ‘제3회 폐의날’을 맞아 서울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무료 폐 기능 검사 및 상담, 환자 사례 발표, COPD 강의 등의 행사를 열 예정이라며,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를 바랐다(문의 51 2-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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