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몸 속에 중금속이 쌓이고 있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11.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은 충남대 이계호 교수가 임상 조사한 결과를 단독 입수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무엇 하나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현실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당국의 오락가락 행보는 불신만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다가는 ‘먹거리 폭동’이 일어나게 생겼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식품 안전과 관련한 우리 나라 최고위 기구인 ‘식품 안전관리 대책협의회’는 지난 2년간 회의 한 번 열지 않았고, 지금도 낮잠만 자고 있다.(<시사저널> 837호 40쪽 참조).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된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 자체가 엄청난 위협은 아니다. 기생충 알은 유전되지 않는다. 약을 먹으면 부작용도 없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식품 안전과 관련한 체계가 중구난방이고 의식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오염된 농축수산물을 먹은 우리들의 몸 속에 하루하루 중금속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중금속은 기생충 알과 달리 유전된다. 각종 병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기형아를 낳거나 유산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먹거리 문제는 건강 문제가 아닌 생존 문제다. 기생충 알에 흥분만 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을 통해 진정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바꾸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시사저널>은 이계호 교수(충남대·화학과)가 2005년 1월부터 10월까지 아토피·두통 등의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일반인 1천1백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발검사 결과를 단독 입수했다. 대상자의 74%가 수도권과 충청 지역 거주자다. 머리카락을 이용한 중금속 분석은 미국 환경청과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체내 중금속 축적량을 파악하기 위해 공식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교수는 중금속·잔류농약 분야 국제 공인 기관인 (주)한국분석기술연구소와 공동으로 조사를 진행했는데, 조사 결과는 전세계 37개국에서 공인된다.

중금속, 기생충 알과 달리 후세에 유전

결과는 충격적이다. 18세 이하 3백69명 중 70%인 2백50명의 몸에 납(Pb) 알루미늄(Al) 비소(As)가 기준치 이상 쌓여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카드뮴(Cd)과 안티몬(Sb)도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측정되었다. 이교수는 올해 발표된 스웨덴 주민의 모발 분석 결과를 기준으로 삼아 우리 현실에 맞추어 기준치를 약간 높이 잡아 분석했다. 그는 “병원을 찾은 아이들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나이가 어릴수록 중금속 축적 비율이 더 높은 것에 놀랐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중금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어른들에게서도 납·알루미늄·비소가 다른 중금속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측정되었다. 사료를 많이 먹인 육류나 생선 내장 섭취, 자동차 배기 가스, 양은 그릇 사용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치매·중풍 발생률이 높은 원인이 알루미늄 때문이라는 임상 보고도 있기 때문에 인체에 축적되는 중금속 문제의 심각성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이교수의 조사에서는 중부 지역 거주자들의 모발에서 우라늄(U)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우리 나라 음용수 기준에는 우라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는 “1997년 대전 지역 지하수에서 우라늄이 나온다는 것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었다. 중부 지역에서라도 지하수를 사용하는 식품 관련 업체의 검사 기준에 우라늄을 넣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교수는 또 산모가 모유를 수유하기에 앞서 중금속 축적 검사를 받은 뒤 수유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몸에 중금속이 쌓인 산모가 아이에게 젖을 먹일 경우 중금속이 아이에게 옮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경남 마산 순안병원이 2003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산모의 양수와 모발, 신생아 모발을 분석한 결과 중금속 오염 정도가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 충남대병원 산부인과 강길전 교수는 “아직 의사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산모들이 반드시 모발 검사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많이 오염돼

체내에 중금속이 과다 축적되면 일반적으로 무기력증, 피로, 두통, 탈모, 폭력적 성격, 집중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를 자주 앓고 혈액 순환이 나빠지는 원인이 된다. 순안병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토피 환자들에게서 납·수은·카드뮴·알루미늄 같은 중금속들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높게 측정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사된 바 없지만, 미국에서는 범죄자와 사형수들의 모발에서 일반인보다 중금속이 더 많이 검출되었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온 적도 있다. 폭력적 성격과 중금속 오염이 관계가 있다는 것을 검증한 논문이다.

중금속이 우리 몸 속에 들어오는 경로와 원인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크게 식품과 환경, 두 부분으로 본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평구 박사가 2000년 서울 지역 도로변의 중금속 오염 현황을 조사한 결과, 아연과 구리 등이 선진국 우려 기준을 초과한 경우가 다수였다.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 속에 중금속이 들어있다는 보도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박사는 “체내에 중금속이 들어오는 원인이 다양해 어느 누구도 주된 원인이 이것이라고 특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식품과 환경 두 갈래 경로로 유입”

하지만 대기보다는 토양 또는 유통 과정에서 중금속에 오염된 식품이 우리 몸에 중금속을 쏟아 붓는 주범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과 농촌 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모발을 검사한 결과 중금속 오염도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조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나라는 쌀에 대해서만 중금속 허용 기준(0.2ppm 이내)이 정해져 있을 뿐, 다른 농축수산물과 관련해서는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처럼 어린이들의 몸에 중금속이 쌓이고 있지만 당국의 움직임은 더디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관련 전문가 20명으로 ‘중금속 기준 설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해 경남 고성 주민들이 카드뮴에 중독되어 이타이이타이병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급하게 구성된 이 위원회는 보건복지부의 건강증진기금에서 돈을 끌어 쓰고 있다.

현재 관계 기관은 쌀 팥 콩 옥수수 배추 무 시금치 감자 고구마 파 10개 품목에 대해 모니터링과 분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4월이면 이들 품목에 대해 중금속 허용 기준이 정해진다. 식약청 이종옥 식품오염물질과장은 “농림부와 환경부가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에 한해 내년에 중금속 허용 기준을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문은숙 기획실장은 “그나마 이런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품목을 더 확대해야 한다. 식품이 생산되어 유통, 판매되는 단계 별로 추적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계호 교수는 “유럽은 거의 대부분 식품에 대한 중금속 규격이 설정되어 있다. 김치와 관련해서도 배추보다는 소금·젓갈류·고추와 같은 양념류의 중금속 오염이 더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농축수산물과 수요가 많은 식품에 대한 중금속 허용 기준이 빨리 설정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 내년 4월에야 식품 중금속 허용치 규정키로

외국에서도 중금속 규제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특히 납(Pb) 카드뮴(Cd) 수은(Hg) 크롬(Cr)을 강력히 규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기준을 초과한 중금속이 포함된 어떤 수입품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일본 소니 사가 네덜란드로 수출한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내부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카드뮴이 발견되어 1천억원의 손실을 입은 일이 있을 정도다.

먹거리 안전 문제는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국가적인 과제가 되었다. 국민들도 경제성보다는 안전을 우선 생각하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단편적으로 펼쳐지는 시민단체들의 식품안전운동 또한 새로운 틀을 고민해야 할 만큼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