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호주, 기후협약 발뺌은 난센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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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환경포럼 ‘에코마인드 2005’ 열려…8개국 대학생 ‘난상토론’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 2학년생인 앨리슨 해밀튼 양은 국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에콰도르와 코스타리카에서 환경 관련 자원봉사를 한 적도 있다. 이런 경력 덕분인지 그녀는 호주 청소년 환경 대사로 뽑혀 10월26~30일까지 필리핀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포럼(에코마인드 2005)에 참가했다. 10월27일 포럼 둘째날 해밀튼 양은 세계적 석학인 제프리 삭스 교수에게 벼르던 질문 하나를 던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과 호주 정부는 교토 의정서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해가 된다며 비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이자 유엔 밀레니엄 프로젝트 입안자이도 한 제프리 삭스는 거침없이 답했다. “기후 협약은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호주에도 이익이 된다. 정작 개발도상국은 가만 있는데 미국과 호주와 같은 선진국이 앞장서경제 성장 핑계를 대는 것은 난센스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환경 협약에 가장 부정적이던 미국이 허리케인 피해를 당하는 모습을 예로 들었다.

 
국제 청소년 환경 포럼 ‘에코마인드2005’는 유엔환경계획(UNEP)과 바이엘사(社)가 후원하는 환경 교육 프로그램이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행사는 올해 필리핀 수도 마닐라와 휴양 도시 수빅에서 열렸다. 10월27일 개회식에서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직접 축사를 했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원격 화상 강연을 했고 유엔환경계획과 필리핀 마닐라 대학 등 각국 연구진이 참여했다. 호주·뉴질랜드·태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필리핀·중국·한국 등 8개국에서 선발된 대학생 27명은 강연도 듣고 협동 과제도 수행하며 환경 문제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나누었다.

나라마다 처한 경제적 조건이 달라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차이가 있었다. 중국 상하이 동훠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지 웨이 씨(22)는 강연자가 중국의 환경 오염 사례를 언급한 것에 대해 “중국이 세계의 공장(월드 플랜트)이라는 소리를 듣는 점을 잘 안다. 하지만 왜 중국에 (일방적으로) 국제 기준만 요구하느냐”라며 합의에 따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년마다 유엔환경계획과 바이엘사 공동 주관

하지만 경제 사정이 다른 조건에서도 모두가 공감하는 국제 환경 이슈가 있었다. 유전자조작식품(GMO) 문제가 대표적이었다. 행사 셋째 날인 10월28일 강연 시간에 후원사인 바이엘 소속 강연자들이 ‘품종 개량·유전자 조작 식품은 더 적은 자원을 이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환경친화적’이라는 설명을 했다. 이에 대해 각국 학생 대표들이 서로 손을 들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이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지 않는가?” ”종의 다양성이 위협받는 것은 아닌가”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다지만 100년 뒤에 문제가 나타날지 어떻게 아느냐” 이에 대해 바이엘 크롭사이언스 사(社) 마이클 슈나이더 박사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문제가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불확실성은 어디에나 있다. 불확실성만을 따지기 시작하면 어떤 분야도 개발할 수 없다”라고 당부했다. 다만 그는 큰 힘은 큰 책임과 함께 온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바이엘 사는 유엔환경계획에 매년 100만 유로를 후원하고 있다.

 
포럼 넷째 날 각국 학생 대표 27명은 9개 조로 나뉘어 과제 발표를 했다. 한국 대학생으로 포럼에 참가했던 김인영씨(21)는 “흔히 환경 문제라고 하면 정책이나 관리 문제로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포럼 과제는 실제 경영자의 처지에서 산업 발전과 환경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연구하는 것이어서 실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주어진 문제는 특정 조건을 가진 가상의 반도 지형 국가를 설정하고, 6개 모델 산업(방직업·시멘트업·파인애플 가공업·새우 양식업 등)을 제시한 뒤, 어떤 산업을 키워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각국 학생들은 대부분 목화방직업을 택했다. 포럼을 참관한 중국 환경 잡지의 리 웬징 기자는 “학생들이 기술 혁신에 둔감한 것 같다. 목화에서 자연의 이미지를 느꼈던 것 같은데, 방직업은 부가 가치가 낮고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라고 말했다. 환경 전문 기자들은 학생들과 달리 대부분 ‘새우 양식’을 골랐다.

 
포럼 마지막 날 작별 파티에서 특히 주목된 사람은 호주 학생 4명이었다. 제프리 삭스 교수의 격려에 힘을 얻었는지, 이들은 교토 기후 협약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돌리며 연대 서명을 받았다.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국제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춤을 추며 혼란스러운 파티 도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적극 동조해 20명이 넘는 학생 대표들이 서명했다. 호주 멜버른 왕립 공과대학 학부생 라일라 양은 “교토 협약이 임시 협정이며 여러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앞으로 더 나은 협약을 이루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명서 중간에 쓰인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미래의 젊은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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