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화성연쇄살인 공소시효 만료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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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5일 공소시효 만료돼…정치권, ‘공소시효 연장법안’ 심의조차 안해

 
마침내 15년이 지났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을 체포할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1990년 11월15일 화성군 태안읍 능리 김미정양 살해 사건 공소 시효 완료일이 바로 2005년 11월15일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0년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미제 연쇄 살인 사건을 부르는 말이다. 1986년 1차 사건을 시작으로  1991년 4월까지 10명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진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행은 9차까지로 보는 것이 옳다. 정액·체모 조사 결과 10차 사건 범인은 9차 사건 범인과 DNA가 달랐다. 9차 사건은 어린 여학생(피살 당시 13세)을 목졸라 살해하고 시체를 희롱한 전형적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었다. 반면 10차 사건은 1991년 4월3일 사건 발생 직후부터 수사진이 모방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 사건이다. 결국 며칠만 지나면 화성연쇄살인 범인은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여론은 살인죄 공소시효 연장이 대세지만…

<시사저널>은 지난 8월 제828호에서 화성 연쇄살인사건 공소시효 임박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우리 나라 공소시효가 너무 짧다며 공분하는 시민이 많았다. 현행 살인죄 공소시효는 15년이다.  미국 연방법에 살인죄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있다. 독일은 30년, 일본은 25년이다.

한 포털 사이트 댓글 코너에는 ‘공소시효가 없어야겠지요..죄를 졌다면, 당연히 죄값을 무는 게 정상인데...’(아이디 : endy6784)라는 등 기사에 달린 댓글이 1천 개가 넘었다. 방송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도 이 문제의식을 받아 공소시효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여론의 뜨거운 관심과 달리, 공소시효 연장 법안을 다루는 정치권의 움직임은 미온적이다. 지난 8월17일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 등 10명이 공소시효를 연장하자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아직 한 번도 심의조차 받지 못했다. 8월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이후 석 달 동안 잠만 자고 있었던 것이다.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은 “그 사이 정치 일정이 많아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일부러 늦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는 11월8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법안을 심의할 예정이지만 통과되기는 쉽지 않다. 공소시효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소시효 연장 개정안은 정치인 스스로를 옥죄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 살인죄뿐만 아니라 여타 모든 범죄의 공소시효도 덩달아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치자금법 위반·기부행위 금지 위반·뇌물 수수 같은 범죄도 현행 공소시효 5년에서 7년으로 연장되고, 부정 선거운동 죄도 공소시효가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정치인들로서는 자기 목에 방울을 다는 격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재벌 총수 등 경제인들도 민감해 할 만한 부분이 많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배임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업무상 횡령배임죄 등의 공소시효가 7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난다. 또 문병호 의원이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과거 발생한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가 소급 적용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법안 심사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래저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11월15일 이전에 통과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 공소시효 문제에 대한 정치권·시민단체의 무관심에 화성 연쇄 살인범만 웃고 있다.

나라별 살인죄 공소시효

미국

공소시효 없음
독일

30년

일본 25년
한국 15년
한국 개정안(국회 계류중)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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