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지고 부산 떠오르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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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문제 해법 중심축, 6자 회담에서 에이펙 정상회의로 이동

 
‘몸은 베이징에, 마음은 부산에?’ 11월9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5차 6자 회담 참가국 대표들의 심경이 이런 것이었는지 모른다. 한마디로 옹색하기 그지없는 회담이었다. 6자 회담 주요 참가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에이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를 앞두고 그보다 몇 등급 아래인 차관보급 대표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는 곤란하다는 회담장 분위기에서도 이런 옹색함이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이 빈손으로 회담에 참석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 이번 회담은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이행계획 마련에 초점이 두어졌다. 문제는, 바로 그 성명의 주역이었던 힐 차관보의 추진력이 그 이후 현저히 떨어졌다는 점이다. 의욕을 가지고 추진했던 방북이 무산되었고, ‘9·19 이후 강경파로부터 단단히 교육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워싱턴 공기도 예사롭지 않았다.

미국이 이 기간에 보여준 대북 외교의 실태는 방황·표류·분열이라는 말로 집약된다. 힐의 방북 무산으로 다음 단계 목표를 제시하지 못한 데서 방향과 표류가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 불거진 미국 재무부의 북한 자산 동결 조처와  마카오 은행 돈세탁 이슈화에 부시 대통령의 폭언 외교 부활이 대북 외교의 한쪽 면이라면, 평화협정 체결, 북·미 관계 정상화,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버시바우 신임 대사의 ‘멋진 신세계’ 연주가 또 한 면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종합해보면 ‘잘해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탄이 없어 몸이 따르지 못하니 냉각기를 갖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이 못 알아들을 리 없다. 첫날 연설에서 북한의 핵 포기와 상응하는 조처에 대한 상세한 언급으로 각국 대표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김계관 대표가 다음날 논외 사안인 미국 재무부의 조처를 조준 사격해 파란을 일으킨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어차피 미국이 내놓을 것이 없어 회담 진전은 어려울 터이니, 그동안 억눌러온 불만 사항이라도 표출해야겠다는 뜻일 것이다.

후진타오의 ‘부산 보따리’에 관심 집중

결국 이번 회담의 의미는 북핵 문제 해법의 중심이 베이징이 아닌 부산 에이펙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예고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월18~19일 열릴 부산 에이펙 정상회의가 북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운명의 진앙지가 될지 모른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우선 11월16일 도쿄에서 열릴 미·일 정상회담에서 그 포문이 열릴 것이다. 9·11 총선 뒤부시 대통령이 바로 만나자고 한 제의를 고이즈미 총리가 뿌리치면서 약속 날자가 에이펙 직전인 11월16일로 조정되었다. 실탄을 확보하지 못한 미국의 대북 일정은 이 기간에 엉망이 되었다. 따라서 동북아 외교의 이단아인 고이즈미 총리가 게임 참가비 조로 과연 얼마를 내놓을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국 대북 외교의 진폭 역시 좌우될 것이다.

11월18일 한·일 정상회담 역시 관전 포인트이다. ‘평양행 익스프레스’를 열망하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이다. 한국의 동의 없는 평양행은 힘을 받을 수 없다.

이번 에이펙 회의에서 최대의 귀빈은 어쩌면 후진타오 주석이 될지도 모른다. 정상들 간의 국제적 회동을 앞두고 화제의 중심인 평양을 전격적으로 다녀오는 ‘센스’를 발휘한 그가 풀어놓을 보따리에 관심이 모일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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