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바꾸지 말라”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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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문화재 전문가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최근의 ‘국 보 논란’에 대한 여론을 들어보았다

 
국보 논란이 만추의 시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문화재 지정과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다는 감사원의 11월7일 발표가 발단이다. 감사원은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상징성과 정당성에 문제가 있는 만큼 문화재청에 지정 변경을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부연한 문제점은 ‘일제가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지정한 번호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숭례문은 1962년 12월20일 국보 1호로 지정되었지만, 이는 일제가 1934년 보물 1호로 정한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어서 이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다음날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감사원 발표를 거들고 나섰다. 그는 “국보 1호를 바꾸자는 데는 큰 이론이 없다고 생각한다. 국보 1호가 갖는 상징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해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의 국가지정 체계 전반을 손대는 것은 여파가 크지만, 국보 1호만 교체한다면 혼란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언론도 찬반 논쟁에 가세했다.

찬성 쪽의 논리는 감사원이 지적한 것과 비슷하다. 거기에 ‘국보 1호만큼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성을 지닌 문화재가 되어야 한다’(11월8일자 <경향신문> 사설)는 주장이 덧붙었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정치적인 의도를 경계한다. ‘과거사 청산에 집착한 나머지 문화재까지 정치적 논리로 서열을 매기는’(11월8일자 <세계일보> 사설) 일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사실 유홍준 문화재청장으로서는 이번 사태가 오비이락 격이라고 생각할 만도 하다. 그는 이미 지난 2월 <시사저널>(801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국보 체계를 바꾸는 것까지 포함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지난 4월 문화재위원 인선을 새로 하면서 문화재위원회 안에 국보지정분과를 신설했다. 14명으로 구성된 국보지정분과위원들은 지난 9월28일 모여 보물 48호이던 대흥사 마애여래좌상을 국보로 승격시키는 등 전반적인 국보 실태 검토에 들어갔다. 국보지정분과위원들은 이날 국보·보물 지정 체계에 대해서도 손질할 필요가 있는지 토론했다. 이들은 12월에 다시 모여 논의를 계속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감사원 발표와 유홍준 청장의 발언 이후 갑자기 논의에 가속이 붙었고, 정치 논쟁으로까지 확산될 공산이 커진 것이다. 

“국보 1호 변경에 정치적 의도 있다”

국보 논쟁은 어떻게 결론이 나올까. 문화재청 김창준 문화유산국장에 따르면, 국보 1호를 바꾸기 위해서는 전문가들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뒤 문화재위원회 국보지정심의분과의 심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안휘준 문화재위원장은 이에 대해 “국보 1호를 대체하는 것을 포함해 문화재 관련 주요 사안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아야 하고, 가능한 한 국민적 동의를 얻어 결정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문화재청 차원에서 국보 1호 교체에 대해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가 조만간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당시 문화재관리국)은 이미 1996년 10월에 문화재 전문가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비슷한 여론조사를 한 바 있다. 당시 문화재위원·전문위원 1백32명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 조사에서 59.2%가 국보 1호 교체 지정에 반대했다.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전문가보다 높은 67.2%가 국보 1호 변경에 반대했다.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온 뒤 국보 1호 변경안은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되었다.

10여 년이 흐른 2005년 현재, 민심은 어떻게 변했을까. <시사저널>은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국민 1천명과 전문가 1백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조사 대상 전문가 범위는 문화재위원과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한정했다. 전문가 조사에는 문화재위원 1백10명 가운데 30명, 문화재 전문위원 1백94명 가운데 72명이 응답했다. 또한 이와 별도로 문화재 관련 전문가 10명에게 이번 국보 논란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세월은 흘렀어도 민심은 여전했다. 문화재 위원·전문위원들과 일반 국민 모두 국보 1호를 숭례문에서 다른 문화재로 바꾸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전문가들은 50%가 반대했다. 특히 문화재전문위원보다 문화재위원들한테서 부정적인 목소리(66.7%)가 높았다. 일반 국민은 58.9%가 반대했다. 반대 의사는 모든 연령층에서 다 높게 나왔고, 특히 나이가 높을수록 반대 의사가 강했다. 국보 1호를 바꾸자는 데 큰 이론은 없다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호언이 무색해졌다. 전문가 조사와 국민 조사에서 모두 반대 목소리가 높게 나옴에 따라 정부의 국보 1호 변경 계획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새 국보 1호 후보 ‘1순위’는 <훈민정음 해례본>

이렇게 반대 의사가 높게 나온 데에는 현정부의 정책에 대한 일방적인 반감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그룹 52.9%가 국보 지정 체계 변경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문화재위원 63.3%가 이렇게 생각했으며, 국보 1호를 바꾸는 데 반대하는 이들의 72.5%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국보 1호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 국민(50.4%)도 전문가 그룹보다는 다소 약했지만 정치적인 의도를 경계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이전에도 광화문 현판 사건을 비롯해 여러 차례 튀는 발언으로 정치적인 홍역을 치렀다. 이번 일 또한, 유청장으로서는 억울한 일이겠지만, 감사원 발표와 그의 발언이 뒤섞여 증폭되면서 여론의 정치적인 감성을 자극한 감이 적지 않다. 유청장도 이 점을 의식한 듯 11월8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인터뷰에서 “숭례문이 국보 1호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갖고 있지 않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일제 잔재 청산과는 무관한 일이다”라며 정치 논쟁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했다.

국보 1호를 바꾸는 데 반대 여론이 높았지만, 구체적인 대안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추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국보 1호를 바꿀 경우 어느 것이 적당할까. 현재 떠오르는 새 국보 1호 후보는 훈민정음(국보 70호ㆍ세계기록유산), 석굴암(국보 24호ㆍ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국보 32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83호)이다. 이에 대해 국민(53.0%)과 전문가 집단(66.7%) 모두 훈민정음 해례본을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꼽았다. 이에 비한다면 해인사 팔만대장경 등 다른 후보들의 인기는 미약했다. 하지만 여전히 숭례문을 꼽는 이도 상당수여서, 여기서도 국보 1호 교체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음이 다시 확인되었다.  

국민들은 오히려 국보 1호만 바꿀 바에야 아예 국보 체계 전반을 뜯어고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국민 10명 중 4명(40.9%)이 ‘다소 혼란이 있더라도 이번 기회에 문화재 체계를 전반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국보 1호만 상징적으로 바꾸는 것이 낫다’는 응답은 19.6%에 불과했다. 국보 1호 변경 의사를 밝히면서 유홍준 청장은 문화재 국가지정 체계 전반을 손대는 것은 여파가 너무 크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유청장의 바람과 전혀 다르게 반응한 셈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전반적으로 바꿔야 한다’(27.5%)보다 ‘국보 1호만 상징적으로 바꾸는 것이 낫다’(30.4%)고 응답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택한 응답은 ‘국보 1호를 포함해 아무 것도 바꾸지 말아야 한다’(41.2%)였다. 국민과 전문가 여론을 종합하자면 이렇다. ‘현행대로 그냥 두든지, 아니면 확 바꾸어라. 이벤트를 벌이듯 국보 1호만 교체하는 것은 반대한다.’

일부 전문가 “문화재 등급 제도 자체가 코미디”

그럼 국민들은 과연 ‘국보 1호’라는 말에서 어떤 뉘앙스를 느끼고 있을까. 조사 결과를 보면, 유홍준 청장을 비롯한 문화재 전문가들과 일반 국민들 사이에 국보를 바라보는 인식차가 상당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전문가 중 51%는 ‘국보 번호는 관리를 위해 붙인 것이며, 국보 1호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데 동의했다. 특히 문화재위원(63.3%)과 국보 1호 변경에 반대하는 이들(86.3%)에게서 이런 응답이 높았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달리 일반 국민은 열 사람 가운데 여덟 사람(80.6%)이 ‘국보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유산이다’라고 응답했다. 이런 생각에는 국보 1호 변경에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 모두 같았다. 국민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면에는 국보에 대한 신비감과 정보 부족도 한몫을 하고 있는 듯하다. 국보의 개수가 몇 건이나 있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대해 ‘3백1건 이상’이라고 응답한 국민은 14.6%에 불과했다. ‘1백1~2백건 사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참고로 한국의 국보는 모두 3백8건이다. 또한 국보 1호 논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국민은 46.4%였고, 53.6%는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국보를 대하는 생각이 이토록 다르다 보니, 지정 번호를 아예 표시하지 않는 대안에 대한 전문가와 국민의 호응 또한 다르게 나타났다. 일본은 국보에 일련 번호를 붙이기는 하지만, 이는 행정상의 분류일 뿐이며 국보를 지칭하거나 각종 책자 등 자료에 표기할 때는 지정 번호를 표기하지 않는다(00쪽 상자 기사 참조). 전문가 63.7%는 우리도 일본처럼 지정 번호를 표기하지 않는 방안을 적극 추천했다. 반면 국민들은 이에 대해 50.9% 대 43.1%로 반대가 더 높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든 뒤, 문화재 전문가 10명에게 이번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우선 문화재위원회 국보지정분과위원 가운데서는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과 안병희 서울대 명예교수가 답변에 응했다. 국내 문화재 관련 학계의 원로인 두 사람 모두 감사원이 논란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감정적으로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의 말이다. “국보 중에는 미흡한 것도 있고, 새로 국보로 추가해야 할 것도 많다. 문화재청이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 신중하게 할 일이다. 감사원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국보 1호만 바꾸는 것에 반대하면서, 아예 지정 번호를 표기하지 않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지학자인 안병희 교수에게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보 1호의 대안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점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안교수는 국보지정분과위원으로서 말을 아꼈다. 대신 안교수가 내놓은 대안 역시 정양모씨와 비슷했다. “국보 1호 바꾼다고 뭐가 특별히 달라지나. 지정 번호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 그냥 번호를 없애는 것이 낫겠다.”

국보의 지정 번호를 없애자는 방안에 대해서는 인터뷰에 응한 문화재 전문가 10명 가운데 8명이 찬성했다. 반대한 이는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와 강관식 한성대 교수 등 미술사학자 두 사람뿐이었다. 강우방 교수는 “그냥 현재대로 두고 문화재청이 국민들에게 단순한 관리 번호일 뿐임을 설득하라”고 주문했다. 강관식 교수는 “국보 1호를 상징성이 있는 문화 유물로 바꾸고 번호 체계는 유지하자”라고 주장했다.

강관식 교수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새 국보 1호로 추천했다. 그는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출신으로 이른바 간송학파의 주축 멤버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도 “번호를 없애는 것이 낫지만, 굳이 매긴다면 다른 것은 놔두고 국보 1호 하나 정도만 바꾸는 것이 좋다”라면서 한글(훈민정음 해례본)을 새 국보 1호 후보로 적극 추천했다.

하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을 반대하는 목소리 또한 많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고려대 박물관장, 문화재 전문위원)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시도 자주 안해 일반인들이 보기 힘들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최교수는 반가사유상이나 팔만대장경·석굴암도 기독교계의 반발이 예상된다면서, 일본처럼 지정 번호를 표기하지 말자고 말했다.

 
불교미술사가 정우택 동국대 교수(문화재위원)와 한국고대사학자 이종욱 서강대 교수(문화재위원)는 이 참에 국가지정문화재 체계를 완전히 재검토하자고 말했다. 정교수의 말이다. “1950~1960년대에 지정된 국보들 중에는 우리 눈이 아닌 일본의 시각으로 평가받은 작품들이 꽤 있다. 또 그후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온 것도 많다. 이 기회에 모든 국보와 보물의 체계를 우리 손으로 다시 세우자.” 이종욱 교수도 “뺄 것 빼고, 새로 넣을 것 넣으면서 국보의 전체 개념을 바꿔갈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한국미술연구소장)의 주장은 근본적이다. 그는 국보·보물 식으로 문화재에 등급을 매겨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체계 자체가 근대 국민국가 초기의 산물이며, 이런 제도가 여태껏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코믹하다’고 말했다. “예술의 잣대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국가가 예술에 권위를 부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보존과 지원을 위한 최소한의 정책이 필요할 뿐이다.”

최병하 문화재청 전문위원도 같은 말을 했다. 최전문위원은 나아가 “세계적으로 문화재 인식 척도가 바뀌면서, 근대 건축물이나 인문적 경관 등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우리도 시대착오적인 국보 번호 논란에서 벗어나 문화재 보호 정책을 다방면으로 넓혀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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