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소굴에 호랑이 씨가 마르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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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서식지 인도, 밀렵과의 전쟁 선포

 
인도 호랑이의 씨가 마르고 있다. 부적절한 보호·관리 정책과 끊이지 않는 밀렵 및 불법 거래가 겹쳐, 멸종 위기 동물로서 국제적으로 보호받는 대표적인 육식성 포유류인 호랑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약 6개월간에 걸친 집중 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고서로 묶어 최근 발표했다.

인도 정부가 인도 호랑이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선 것은 호랑이 보호구의 하나인 인도 중북부 라자스탄의 사리스카 보호구에 서식 호랑이가 엄격한 보호 정책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년 사이 급격히 감소한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이다.
 
인도 전역 호랑이 특별 보호구(29만㎢) 19개 가운데 하나인 사리스카 보호구(전체 면적 881㎢)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3년까지 25마리 안팎의 호랑이가 야생 상태로 서식하는 것으로 공식 보고되어 왔다. 그런데 지난 2004년 보고된 호랑이 개체 수가 이렇다 할 이유 없이 16~18마리로 줄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인도 당국이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면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 보호구의 호랑이 개체 수는 서류상의 보고와는 달리 이미 1990년대부터 꾸준히 줄고 있었으며, 2004년에 이르러서는 보호구 관리 직원에게 한 마리도 목격되지 않을 정도로 씨가 마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보호구 당국이 몇 년째 ‘허위 보고’를 한 셈이다.

인도 당국이 더욱 더 충격으로 받아들인 사실은, 이 보호구의 몇 년치 관리 기록에 호랑이 새끼를 목격한 예가 없다는 것이다. 보호구에서 새끼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보호구에 서식하는 호랑이들의 대가 곧 끊긴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보호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들짝 놀란 인도 당국은 마모한 싱 총리까지 직접 나서서 호랑이 보호 실태 조사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대책을 세우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싱 총리는 당국의 실태 조사가 진행되고 보고서가 작성되는 동안 몸소 인도 곳곳의 호랑이 보호구를 방문해 관심을 표시하는 등 ‘의지’를 보였다.

인도는 ‘호랑이 종의 보존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한때 서쪽 끝으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부터 동쪽 끝으로는 한반도에까지 유라시아 전역을 영토로 삼아 대자연을 호령했던 호랑이는 현재 중국·러시아 국경 지대(시베리아 호랑이), 인도(벵갈 호랑이), 그리고 인도네시아(수마트라 호랑이) 일부에서만 생존하고 있다. 이 중 인도는 지구상 최대의 호랑이 서식지이다.

인도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 생존 개체 수가 1천3백여 마리까지 떨어졌다가 2001년 3천6백여 마리까지 불어난 상태였다. 이른바 ‘호랑이 프로젝트’로 불리는 인도의 강력한 보호 정책과 국제 사회의 지원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그런데 이도 잠시, 다시 심상치 않은 조짐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보호구에서도 몇 년째 ‘새끼’ 구경 못해

인도 당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호랑이가 줄어드는 첫째 원인은 인도인의 빈곤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호랑이 보호구로 묶인 지역에는 ‘산림 훼손 금지’ 등 규제가 따른다. 하지만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하는 법. 빈곤에 몰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주민들에게 ‘호랑이 보호구’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한 것이다. 이는 결국 서식지 축소 및 파괴로 이어진다.

하지만 인도 호랑이의 생존에 이보다 더 큰 위협은 인간의 탐욕에 따른 호랑이 밀렵과 국제적인 불법 거래이다. ‘호랑이 태스크 포스’ 명의로 발표된 <점 잇기(Jointing the Dots)>는 ‘아직도’ 국제적으로 근절되지 않고 있는 불법 거래 실태와 문제점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전문 밀렵꾼이나 국제적인 불법 유통업자들의 눈에 호랑이는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상품 가치를 갖는 사냥감이다. 호골, 즉 호랑이 뼈는 동양 의학 분야에서는 평판이 자자한 ‘신비의 영약’이다. 호랑이 가죽은 잡귀를 물리치는 부적이나 호사가들의 현시욕을 채워주는 값비싼 치장거리로 여겨진다. 호랑이 생식기는 정력제와 강장제로 인기가 높고, 이빨과 발톱도 부적이나 귀한 액세서리 재료로 팔린다.

인도 당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인도에서 밀렵되어 해체된 ‘호랑이 부속’은 크게 두 루트를 거쳐 한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각국은 물론 멀리 유럽·미국에까지 팔려 나간다. 하나는 티베트 국경을 넘어 중국을 통하는 루트이며, 다른 하나는 홍콩을 경유하는 루트다.

호랑이(또는 그 부속) 거래는 ‘멸종 위기 동식물에 관한 국제 협약(CITES)'을 통해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으며, 이 중에서 규정이 가장 엄격한 ’부속서 1‘의 목록에 올라 있다. 부속서 1은 해당 야생 동식물에 대해 ’과학 연구 용도‘를 제외한 상업적 거래를 일절 금지하고 있다.

엄격한 국제 규약 적용, 국제 야생동물 보호 단체의 캠페인 등으로 1990년대 말 호랑이 불법 거래는 잠깐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추세는 불법 거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호랑이 뼈는 약재로 한국 타이완 싱가포르 일본 중국 등지로 여전히 팔리고 있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등지에서도 호랑이 부속이 표범 가죽이나 아프리카 코뿔소 뼈와 함께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인도 당국은 이같은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제 사회가 호랑이 불법 거래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는 한, 인도가 아무리 국내 정책을 강화해도 이는 혼자 애를 쓰다 마는 꼴’이라면서, 국제 사회의 협조를 촉구했다. 그 협조의 출발점이 호랑이 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부속서 1’ 서슬 퍼렇지만…
야생 동식물 거래, 마약·총기 매매와 ‘동급’ 범죄

야생 동물 불법 거래가 근절되지 못하는 최대 이유는 수요자가 이를 사들일 때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생 동식물, 특히 국제 규약에 따라 보호 종으로 지정된 동물을 구매하는 행위는 엄연히 국제 범죄에 해당한다. 진귀한 호랑이 뼈를 사들이는 순간, 이는 국제 범죄에 가담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야생 동식물 거래 시장은, 마약·총기와 함께 ‘3대 국제 암시장’으로 꼽힌다. 그만큼 불법 거래를 막기 위한 국제 규약도 마약·총기에 대한 규약 못지 않게 엄격하고 까다롭다.

현재 무분별한 야생 동식물 거래를 막는 국제적인 장치로는 ‘야생 동식물 거래에 관한 국제 규약(CITES)'이 1975년부터 발효되어 있다. 거래 불법화의 강도는 이 규약이 적용될 동식물을 보호할 필요성이 높을수록 강화되는데, 별도의 부속서 규정에 따라 크게 3단계로 적용된다.

강도가 가장 센 ‘부속서 1’에 적용되면, 과학 연구 목적의 거래를 뺀 거래 행위가 일절 금지되는데, 여기에는 멸종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동식물이 포함된다. ‘부속서 2’와 ‘부속서 3’은 일부 제한적으로 수출을 허용하는 등 단계적으로 거래 조건을 완화한다.

호랑이는 이 중 ‘부속서1’의 적용을 받은 동물군에 속해 있다. 호랑이와 비슷한 대형 고양잇과 동물로는 표범과 퓨마가 있다. 지난해 한 민간 모니터 단체는, 호랑이 뼈 공급이 달리자 당초 약재로는 별로 인기가 없던 표범 뼈가 호랑이 뼈로 둔갑해 미국 약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예를 적발하기도 했다.

부속서 1이 적용되는 동물로는 ‘인간의 친척’ 침팬지·오랑우탄·고릴라 등 영장류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외에도 야생 동식물 다큐멘터리 필름에 단골로 ‘주연 출연’하는 포유류는 거의 모두 부속서 1이 적용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코끼리·코뿔소·하마·사향노루와 대부분의 영양류가 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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