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혁명의 아버지 땅속으로 들어가는가
  • 모스크바 · 정다원 통신원 ()
  • 승인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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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레닌 미라’ 매장·이장 논란 불붙어

 
공산 혁명의 발상지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의 상징 ‘레닌 미라’가 사라진다. 페레스트로이카 20주년을 맞은 올해, 러시아는 사회주의 유산을 청산하려는 움직임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이 중 ‘레닌 영묘’에 안치된 레닌 시신 처리 문제는 러시아에서 단연 화두가 되었다. 기둥이 뽑힐 위기에 처한 공산당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레닌, 하지만 그도 이젠 역사의 애물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레닌 영묘는 모스크바를 방문한 관광객이 꼭 찾는 국제적 관광 명소다. 레닌 영묘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다. 이 영묘 안에 혁명가 레닌은 생전 모습으로 안치되어 있다. ‘혁명의 아버지’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다. 1924년 레닌이 죽자 공산당 지도부는 그를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의하고, 그의 시신을 특수 방부 처리하여 붉은 광장 묘소에 안치하고, 이를 성역화했다.

러시아어로 ‘마브졸레이’(영묘)라는 단어는 기원전 4세기 소(小) 아시아 카리 왕국의 마브솔(Mavsol)이란 왕의 이름에서 기원했다.

미·소가 이념적으로 날카롭게 대립하던 냉전 시절, 레닌 영묘는 소련의 내밀한 정보를 서방에 들통 내는 자리였다. 공산 혁명 기념일을 맞으면 당 지도부는 으레 레닌 영묘 위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사열했는데, 이때 고위 당 간부들이 자리잡은 위치로 권력 서열을 판단할 수 있었다. 완전히 베일에 가려 있던 공산당 권력 구조가 외부에 공개되는 유일한 장소였던 셈이다.

“레닌 시신 이장해야 한다” 52%

옛 소련 해체 이후에도 레닌 영묘는 인기가 좋았다. 2000년까지 방문객이 해마다 증가했다. 여론도, 사회주의는 몰락했지만 레닌 영묘는 관광 명소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1997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가 시신 매장에 반대했고, 2000년에는 응답자의 82%가 반대했다. 또 이장(移葬)에 찬성한 응답자도 9%(1997)에서 6%(2000)로 점차 줄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변덕스럽다. 지난 9월 말 게오르기 폴타프첸코 중부 지역 대통령 전권대표가 레닌 시신을 매장하자는 의견을 표명하자, ‘매장 문제’는 기름에 불을 붙인 듯 단박에 러시아 최대 이슈로 떠올랐고, 여론도 ‘매장’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레닌 시신 매장 문제는 오래 전부터 러시아인의 입에 오르내리던 논제를 공론에 부친 것일 뿐이다. 최근 러시아 여론조사 센터(VCIOM)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이장에 찬성한 응답자(52%)가 반대한 응답자(37%)보다 많았다.

그러면 여론이 갑작스레 변덕을 부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레닌의 위상이 공산당 인기와 정비례해 부침해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러시아 출범부터 1999년 총선까지 공산당은 선거 때마다 최다 득표를 한 부동의 제1당이었다. 그런데 2003년 총선에서 러시아 공산당은 겨우 47석(전체 4백50석)만 건지며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러시아 대선에서 공산당의 추락한 위상은 재차 확인되었다. 니콜라이 하리토노프 공산당 후보가 13.7%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러시아 공산당은 올해 들어 치욕을 당했다. 과거 러시아 국가 최대 경축일인 공산당 혁명 기념일(11월7일)이 국경일에서 제외된 것이다. 포자르스키와 미닌이 폴란드의 침공으로부터 러시아를 구한 11월4일(‘국민통합의 날’)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이 날은 1612년 수즈달의 공후였던 포자르스키와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백정 출신 미닌이 침략자 폴란드에 맞서 싸워 승리한 날이다.

설상가상으로 레닌 시신 처리 문제가 불거지자 한때 러시아를 호령했던 공산당의 표정은 침통하다. 지난 11월12일 러시아 공산당 모스크바 지부 소속 당원들은 공산당 혁명 광장에서 레닌 시신 매장을 반대하는 피켓 시위와 함께 서명 운동을 벌였다. 지부장 예브게니 도로빈은 피켓 시위와 서명 운동을 일과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레닌 시신을 매장하거나 이장한다는 말이 쏙 들어갈 때까지 전국 규모의 집회를 매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노선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여론의 물살은 급하기만 하다. ‘국민투표에 부치자’ ‘레닌 가족에게 맡기자’ ‘모스크바 시의 문제다’ ‘두마(하원)에서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위임하자’ 등 의견도 분분하다. 몇년 전에는 별난 주장도 나왔다. 즉 붉은 광장에 혁명 기념 박물관을 건립해서 레닌 영묘를 비롯한 볼세비키 혁명 유물·유적 들을 전시하고 유네스코에 세계 유적지 등록을 신청하자는 주장이다.

공산당 “부르주아 혁명이 필요하다”

러시아 정교 서부 지역을 총괄하는 키릴 대주교는 “종교적 관습에 따라 죽은 자는 땅에 묻어야 한다. 그러나 ‘레닌·시신 처리’ 문제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므로, 이에 대한 토론을 거쳐 국민 투표에 부쳐야 마땅하다”라고 주장했다. 설문 조사를 분석한 결과 국민 투표가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나타났다(30%). 다만 자본주의 세대인 청소년들(18~24세)은 레닌 시신 처리 문제가 레닌가의 ‘가족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다.
묫자리 논쟁도 벌어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주교 블라디미르는 “레닌 시신을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에 위치한 볼코프 수도원 묘지에 묻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유인즉 이곳에 레닌의 어머니가 묻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색다른 제안도 나왔다. 러시아 남부 칼미크 공화국의 키르산 일륨지노프 대통령은 레닌의 할머니가 칼미크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레닌 시신과 영묘를 공화국 수도인 엘리스타로 옮기는 데 100만 달러를 낼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전과 발전’ 재단 대표 알렉산드르 레드지노프는 공화국 빚 4백만 달러도 못 갚는 주제에 별소리 다 한다고 꼬집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공산당은 변신의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혁명론을 버리고, 부르주아(중산계급)와의 전략적 연대를 모색하는 강령을 채택했다.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는 “러시아에서 농민·노동자 중심의 사회주의 혁명은 시대착오다. 지금은 부르주아 혁명이 필요한 때다”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 성격을 띤 ‘붉은 혁명’을 주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공산당이 풀어야 할 난제는 수두룩하다. 우선 ‘젊은 피’를 수혈하는 일이 급선무다. 즉 젊은 당원을 받아들여 ‘공산당=경로당(敬老黨)’이라는 등식을 깨야한다. 문제는 젊은층을 끌어들일 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정치 자금을 확보하는 문제다. 때문에 크렘린의 주인 푸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회장과의 제휴설이 종종 대두한다. 하지만 호도르코프스키측과 연결할 정치적 매개 변수가 전혀 없다.< BR>
전문가들은 획기적으로 활로를 개척하지 않는 한 공산당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한다. 레닌 미라와 함께 20세기 지구촌의 삶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공산 혁명’이라는 거대한 유산도 종언을 고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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