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 원희룡 “내 길을 가련다”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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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혁신안 후퇴 막는 데 결정적 역할…목소리 높이며 ‘광폭 행보’
 
원희룡 의원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천재’ 이미지를 떠올리곤 하는 모양이다. 그는 요즘도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하면 ‘공부법’에 대한 질문을 어김없이 받는다고 한다. 그는 1982년 대입 학력고사와 1992년 사법고시에서 잇달아 전국 수석을 차지해 ‘천재 원희룡’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최근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는 에세이집을 내면서 아예 공부법을 정리해 수록했다(‘서브쓰리’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에 완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원희룡 의원이 최근 당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천재 원희룡’말고 ‘정치인 원희룡’으로서 주목되고 있다. 그는 재산 형성 과정을 공직자가 소명하게 하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 대해 당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과 8조9천억원 감세안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대통령 경선 룰’이 주요 쟁점이었던 ‘혁신위 수정안’을 원안대로 돌려놓게 만드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 11월10일 박근혜 대표에게 유리하다는 평을 얻은 혁신안 수정안이 당 운영위에서 통과된 후 11월14일 의원총회에서 이 결정이 번복되기까지 4일 동안 원희룡 의원은 수요모임을 중심으로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 국민생각 등 당내 모임과 물밑 접촉을 하고, 이명박 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로부터 ‘지원 사격’까지 받아 세를 규합하는 데 성공했다. 원희룡 의원은 “운영위 회의 이후 다른 소장·개혁파 의원들과 역할을 분담했다. 의원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고는 있는데 결정을 뒤집을 수 있겠느냐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상황이었다. 무력 시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최고위원 자격으로 이시장·손지사와 만났다”라고 말했다. 혁신안 논란은 그동안 의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소수로 남아 있던 당내 소장·개혁파가 당내 혁신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고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혁신안 논란 이전에 원희룡 의원을 비롯한 소장·개혁파는 당 주류세력과 개혁 세력 사이 ‘경계선’에서 정반대  평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영남 중진 등 당내 주류 세력은 원의원에게 비판적이었다. 소장파로서 개혁적 이미지만 좋을 뿐, 당내 현안에 대해서는 몸을 사린다는 것이었다. 혁신안 논란 이후 이성헌 사무2부총장이 쓴 글에서도 원의원에 대한 이런 정서가 묻어난다. 이부총장은 ‘원최고위원이 혹시 한나라당을 남의 당 보듯이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있다. 주로 친여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원최고위원의 정치적 견해를 보면 솔직히 이 분이 왜 한나라당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반면 원희룡 의원이 당내에서 소장·개혁파의 처지를 대변하기를 기대하는 측에서는 실제 그 역할을 제대로 해냈는지에 실망감을 드러낸다. 정치 전문가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교수, 정치부 기자 1백50명을 상대로 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서 ‘재선급 의원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정치인’으로 꼽히고, 선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나라당에서 ‘5년차 재선 정치인’인 그가 박근혜 대표에 이어 ‘2등 최고위원’으로 당선(2004년 7월 전당대회)된 것은 소장·개혁파의 리더 역할을 기대한 것인데, 실제 활동이 기대에 미흡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원희룡 의원이 속한 수요모임이 그동안 당내 현안에 대해 ‘정치적 이벤트’ 차원에서 접근하고, 뚝심 있는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곁들여진다.

원희룡 의원 본인도 이런 비판을 잘 알고 있다. 원의원은 “소장·개혁파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와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군락을 이루듯이 지지세를 규합할 수 있을까가 나를 포함한 소장·개혁파의 가장 큰 고민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 안한다”

당내 소장·개혁파가 세를 형성하지 못하는 데는 내부 요인도 있다. 국가 정체성 논란 당시에는 소장파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해 힘을 모을 수 없었고, 원희룡 의원 혼자서 치고 나가는 형국이 되었다. 여기에 당이 ‘친박 대 반박’ 구도로 나뉘면서 소장·개혁파가 분열하는 조짐과, 원희룡 의원을 비롯한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을 경계하는 시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 관계자의 말대로 중도 성향의 수요모임 회원들로서는, 일이 잘 되면 ‘남원정’ 이름만 남고, 잘못되면 소장·개혁파라는 이름으로 ‘반박’으로 분류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원희룡 의원은 소장·개혁파가 동력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에는 동의하면서도 “당에서 건설적 제안을 안 하고 딴죽만 건다는 당 주류의 비판은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소리다”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박근혜 대표 체제와 소장·개혁파 사이에는 몇 차례 고비가 있었다. 전향적 대북 관계를 위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에 당이 가입하거나 의원이 개별적으로 참여하고 당이 지원하는 모양새를 취해 달라고 했으나 박근혜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 정수장학회를 민주화 유자녀들의 장학재단으로 내놓아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화해하는 메시지를 주자는 제안도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고 한다. 원의원은 “국가 정체성 논란 때 국가정체성수호특위 위원장을 해달라고 해서 거절했다. 상생과 화해와 맞지 않는다, 거꾸로 가는 후진 기어라고 거의 두 달 동안 비판했지만 당 지도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에서 말하지 않고 외부 언론에 먼저 말한다’는 비판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원희룡 의원은 9인 최고위원회가 의결기구가 되는 혁신안이 통과되면서 한나라당이 최대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여긴다. 본인도 당내 개혁 목소리를 높일 계획이다. 원희룡 의원은 “최고위원회가 의결기구가 되면 사전에 협의하고 토론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조정과 설득이 강제되어 대화에 기초한 토론을 할 수밖에 없는데, 토론 문화가 없는 당 체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원희룡 의원이 겪는 이른바 ‘경계인’ 논란은 그 자신이 정치를 시작하면서 감수해야 할 운명 같은 것이다. 이미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그동안 걸어온 1980년대 운동권 이력과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때 그는 ‘전통적인 산업화 세력과 개혁 세력이 결합해 있는 정치 세력이라는 데 의미를 두었고,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의 개혁 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변해야 한다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가 보기에 여전히 한나라당은 ‘이념적으로 보수 반공, 지역적으로 영남당, 계층적으로 부자당, 연령으로 노인당이라는 장막에 갇혀 있다’. 당내 보수세력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미운 오리새끼’ 대접을 받더라도 발언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이다.

원희룡 의원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지사가 당으로 복귀해 다자구도로 경쟁하는 내년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 그는 “그동안 한나라당은 변화를 추동하는 자체 동력이 약했다. 내년 주자들의 다자 경쟁은 한나라당의 유력한 변화 동력이 될 것이다. 나는 당이 뒤로 가면 지키는 파수꾼, 옹벽 역할을 하겠다. 소장 개혁파도 안티(anti) 집단이 아니라 혁신적 중도보수 정당에 걸맞는 정책 활동을 하는 ‘창조적 소수’임을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원희룡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나간다는 사람은 나간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안 나가는 사람이 안 나간다고 떠들고 다닐 수도 없어 곤혹스럽다. 하지만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서는 안 나가는 게 분명하다”라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원희룡 의원이 한나라당 대통령 선거 경선에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서 그도 여지를 남겼다. “국회의원은 대통령을 견제하는 역할뿐 아니라 어떤 대통령을 국민이 선택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소장·개혁파)가 다른 주자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우리 내부에서 키워가든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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