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앞에서 밥그릇 지키기?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12.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동산 법안 바뀌면 한나라당 재경위 소속 10명 전원이 과세 영향권 들어''

 
‘8·31 부동산 대책’ 관련 후속 입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한나라당이 '부자 정당'이라는 구설에 휘말리고 있다. 정부·여당안 통과를 주장하는 45개 시민·사회 단체들은 12월1일 기자회견을 열어 “시장 검증이 끝난 법안 실시를 한나라당이 막고 있는 것은 원내 제1 야당으로서, 수도 없이 민생을 외친 정당으로서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일이다”라고 성토했다.

물론 이들은 여당에도 ‘개혁 의지가 약해진 것이 아니냐’면서,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에 직면할 것이라는 공세를 가했지만, 한나라당을 겨냥한 기색이 짙었다. 기자회견을 주도한 한 관계자는 “특히 한나라당 소속 재경위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이 한나라당 소속 재경위원 10명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은 재경위가 부동산 관련 법 등 주요 경제 법안을 심사하는 상임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이 8·31 대책 후속 법안의 핵심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과세 기준 등을 둘러싸고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해 대다수 국민의 뜻을 왜곡하고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인적 구성이 이런  혐의를 받기에 딱 좋게 되어 있다. 종부세 과세 기준이 현행 주택 9억원(기준시가)·비사업용 토지(나대지) 6억원 이상에서 각각 6억원·3억원 이상으로 강화되고 개인별에서 가구별 합산 과세로 개정될 경우 10명 전원이 종부세 과세 영향권에 놓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대지에 다가구 주택을 신축했거나(박종근 의원) 아파트 세채 가운데 한 채를 줄이는(이한구 위원) 따위로 올해 종부세 과세를 피해간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대상자는 많아야 2명 늘어

엄호성·김정부 의원은 가구별 합산 과세 그물에 걸린다. 최근 엄호성 의원이 “가구별 합산 과세는 하나의 세원에 이중 과세를 하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가구 구성원이 되었다는 이유로 재산상 불이익을 가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다”라는 주장을 펴 눈총을 받았다. 엄의원은 부부 공동 명의로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데, 자신의 보유 가액은 6억원이 안된다. 김정부 의원도 경남 마산시 소재 아파트를 지난해 부인 명의로 바꾸었지만, 가구별 합산 과세가 되면 과세 대상자로 바뀐다. 한나라당에서 현재 종부세를 내야 하는 이는 김양수·이혜훈 의원뿐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처음으로 올 12월1일부터 15일까지 자진 신고 후 납부해야 하는 종부세 대상자는 7만4천2백12명이다. 물론 이 가운데 한나라당 소속 선량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열린우리당 김종률·이계안·정덕구 의원은 현재도 과세 대상이다. 한나라당과 다른 점이라면 기준이 6억원으로 떨어져 대상자가 27만명(한나라당 추정)으로 늘어난다 해도 새로 대상자가 될 의원이 많아야 2명이라는 사실이다. 김진표 교육 부총리는 확정적이고, 강봉균 의원은 유동적이다. 강의원의 경우 부인 명의 2억원대 토지의 신고가액이 2002년 기준이어서 새로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면 송영길·유시민·우제창 의원같이 아예 해당 사항이 없는, 종부세로부터 자유로운 의원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비교섭 단체 의원 가운데에서는 심상정 의원을 뺀 민주당 김효석 위원과 무소속 신국환 의원이 새로 대상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의원은 가구별 합산 과세로, 김의원의 경우는 토지 과세 기준 변경(6억원→3억원)으로 대상이 된다.
   
한나라당 내부 의견, 하루에도 몇번씩 출렁

8·31 부동산 대책과 관련된 입법안은 모두 14개다. 이 가운데 국민임대주택특별조치법 등 건교위 소관 입법안들은 통과되었거나 통과될 예정이며, 부동산등기법을 다루는 법사위에서도 별 이견이 없는 상태다. 오직 종합부동산세법과 소득세법을 처리해야 하는 재경위에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의 반발로 교착 상태가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부동산 세제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인적 구성 탓인지, 한나라당은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와 정책위, 재경위 등 거의 모든 회의 석상에서 당론과 달리 이른바 ‘소신 발언’을 하는 의원이 속출하고 있다. 11월29일은 한나라당 내부의 분열상을 극명하게 드러낸 날로 기록될 만하다.


이 날 아침 한나라당 서병수 정책위의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종부세 과세 대상 확대, 다시 말해 과세 기준을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떨어뜨린다는 정부·여당안을 수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물론 한나라당이 제의한 5개 감세안 수용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전날부터 서의장은 감세안과 종부세법 개정안을 맞바꿀 수 있다는 이른바 빅딜안을 공식화했었다.

비슷한 시각 이혜훈 제3정조 위원장은 서의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개인(서의장) 발언에 신경 쓸 것 없다.  과세 기준 9억원은 변함이 없다. 이것은 당론이다.” 이의원은 정책위원회에서 부동산 등 경제 사안을 다루는 제3정조를 맡고 있지만, 정책위 책임자인 상급자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다.

 
오전 11시쯤 이번에는 세대별 합산 과세 건으로 요동했다. 임태희 원내 수석 부대표가 기자들과 만나 이미 금융소득종합과세의 부부 합산 과세가 위헌으로 판결 난 만큼 종부세 세대별 합산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치고 나온 것이다. 그러자 이혜훈 의원이 다시 뒤집기를 시도했다. “세대별 합산도 당론이다. 다만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 예외 조항을 둔 법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이의원의 주장은 그날 오후 소관 상임위 회의에서 다시 뒤집혔다. 2시30분 열린 재경위 조세 소위에서  엄호성·김정부·윤건영 의원이 한목소리로 세대별 합산 과세는 위헌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특히 엄의원은 재차 ‘합산 과세가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연좌제’라는 ‘소신 발언’을 펼쳤다.
    
혁신적이었던 한나라당 정책 왜 급선회했나

급기야 열린우리당 재경위 간사이자 조세소위 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이 “이혜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세대별 합산 과세안은 (한나라당의) 당론 아니냐”라고 반문했고, 세 의원이 부인하는 사태로 치달았다. 29일의 소동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조세 소위에서의 발언이 알려지자 이혜훈 의원은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담당 정책조정위원장이자 당 부동산 특위 간사를 지낸 내 말이 곧 당론이다”라고 반박하는 과정이 한 차례 더 연출되었다.

이의원 주장대로 한나라당은 정부안이 나오기 한 달도 전에 ‘부동산 안정, 경제 안정, 국민 안정’이라는 이름의 정책 제안서를 내놓았다. 11월28일 서의장이 <시사저널>에 “부동산 정책만큼은 한나라당이 여당보다 먼저 훨씬 혁신적인 안을 제안했다”라고 밝혔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6월22일 한나라당은 부동산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김학송 의원)를 구성하고 열 차례 회의한 끝에 7월20일 5개 분야 15대 정책 과제를 내놓고 정기국회에서 법률 개정을 통해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기를 보였다.
  
특위 제안 가운데 종부세 관련 대목은 이렇다. ‘현행 종부세 개인별 과세를 세대별로 합산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꾸어서 과세하면 부동산 과다 보유 세대는 반드시 종부세를 내게 될 것이다’. 양도소득세를 중과해 주택 투기를 억제해야 한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양도세와 관련해서도 한나라당에서 다른 말이 나오지만, 당시 특위는 현행 1세대 3주택 양도소득세 중과를 1세대 2주택부터 적용하자고 주장했었다. 물론 특위는 종부세 부과 기준에 대해서는 현행 체제 유지를 고집했다. 이를 근거로 이혜훈 제3정조위원장이 서병수 의장을 반박한 것이다.

11월30일을 기점으로 한나라당은 당론을 수정하는 형식으로 봉합에 나서고 있다. 이 날 열린 여야 정책협의회에서 개인 의견이라던 5대 감세안과 종부세법 빅딜론이 여당에 정식 제시되었으며 세대별 합산 과세와 소득세법 개정 사항인 1세대 2주택자 양도세 50% 중과세(현재 9~36%) 사안에 대해 예외 조항을 두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그럼에도 30일 열린 재경위 조세소위와 12월1일 최고의원회의 등에서 마찰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한나라당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은 여당(정세균 당의장`원혜영 정책위원장)은 물론 재경부(박병원 차관)`국세청(이주성 청장)`청와대(김수현 국민경제비서관) 등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그 어떤 것과도 흥정`거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에서 드러나듯이 국민적 공분이 일어날 판이다.

당장 소관 상임위인 재경위에서 끝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표결 처리될 수밖에 없다(송영길 의원). 여당은 표대결 결과를 낙관하는 듯했다. 설령 한나라당 10명 전원이 반대표를 던져도 우리당 12명과 김효석·심상정 의원의 찬성표로  통과되리라고 보는 것이다.  또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이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도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