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들이 갇히지 않았다면…
  •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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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계, 대마초 파동 30년 맞아 ‘과거사 돌아보기’ 활발

 
1975년 12월, 당대를 주름잡던 인기 가수들을 줄줄이 감옥으로 몰아댄 경천동지의 대마초 사건이 터진 지 올해로 정확히 30년을 맞았다. 대마초 파동은 한국의 현대 가요사가 이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전과 후로 나뉜다는 평가가 말해주듯 그 자체로 역사적이다. 이 사건을 실제로 경험했거나 나중에 들은 후대 사람들은 모두가 ‘만약 이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우리 대중 음악의 흐름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분명한 것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장희 윤형주 이종용 신중현 등이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되면서 그들의 퇴각과 함께 당대에 융성하던 포크와 록이 철퇴를 맞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포크와 록은 딴 장르들에 비해서 ‘리얼리즘’ 전통이 강한 음악, 즉 현실 왜곡과 부조리를 올곧게 지적하고 비판하는 성격을 지닌 음악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대마초 파동 이후 우리 가요에는 사실성과 사회 의식은 거세된 채 낭만과 오락성만이 부각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로 인해 한국 대중 음악의 무게감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음악 관계자들은 대마초 사건으로 록과 포크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면 가요는 훨씬 콘텐츠가 풍부해지고 오락성과 사실성 사이의 밸런스를 유지했을 것으로 분석한다. 심지어 근래 가요가 과잉 상업성의 나락에 빠져있고 한두 장르에 갇혀 있는 질곡의 근본 원인을 30년 전의 대마초파동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대마초 흡연이 사회 범죄로 인식되면서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던 상태에서 최근에는 30년의 오랜 포박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피해자의 항변과 가요계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피해자인 가수 신해철은 텔레비전 토론에 나가 대마초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을 폈고, 전인권도 여러 인터뷰를 통해 과감하게 “대마초가 몸에 해롭기는커녕 도리어 삶에 윤기를 준다”는 견해를 개진하고 있다.

역시 대마초 사건에 걸린 강산에도 얼마 전 대마초가 마약이 아니라고 일갈했으며, 영화배우 김부선의 경우는 “대마초 흡연 행위를 처벌토록 한 현행 마약류관리법 조항은 헌법상 행복추구권을 침해해 위헌이다”라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예상대로 대마 사용에 대한 규제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파동 이후 사실성과 사회 의식 거세”

법적 결론을 떠나서 대마초 흡연을 범죄라고 당연시하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놀랄 만큼, ‘마약이다, 아니다’ ‘몸에 해롭다, 해롭지 않다’ 하는 대마초 논란이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가수를 위시한 연예인들이 이처럼 대마초 규제를 노골적으로 반박하는 데는 법적 또는 의학적 이유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우리 사법 당국과 역대 정권이 대마초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긴급조치 9호에 따른 가요 검열과 대마초 파동이 터진 1975년 ‘원년’ 이후 검찰의 대마초 흡연자 검거 소식은 잊힐 만하면 다시 신문에 오르내리는 단골 메뉴였다. 1977년 조용필 채은옥 하남석, 1980년 그룹 사랑과평화 멤버들, 1983년 김수희 이명훈, 1986년 김태화, 1987년 그룹 부활의 김태원·이승철, 들국화의 전인권·허성욱 그리고 김현식, 1989년 신해철 등 구속이든 불구속 입건이든 연예인 대마초 사범 보도가 줄을 이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신성우 현진영 이현우 조덕배 등 대마초를 흡연한 연예인 구속은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이런저런 문제에 휘말려 곤경에 처한 시점마다 국민적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 ‘매력적인 소재’인 대마초 사건을 의도적으로 터뜨렸다는 의심도 고개를 들었다. 사실 신문에 대마초 연예인 구속이 보도되면 대중의 시선은 그 흥미성에 빠르게 흡수된다. 그렇게 되면 정권에 불리한 이슈에 대한 관심은 즉시 뒤로 물러선다. 즉 정권 안보를 위해 당국은 전가의 보도처럼 필요한 시점마다 대마초 사건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혹자는 유신과 5공 때 극에 달했던 북한 소식과 함께 대마초 파동은 정권 차원에서 가장 효과적인 안보의 양대 소재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가요계와 연예계는 정권의 위기 돌파 국면에서 당국이 대마초 흡연 연예인 구속 사건을 만만한 소재로 택한 것을 유서 깊은 대중 문화에 대한 홀대로 연결해서 더욱 불쾌히 여겨 왔다. 그에 대한 뿌리 깊은 의혹과 불신이 여기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최근의 대마초 논란은 단지 대마초 유해에 관한 갑론을박이 아니라, 일반의 왜곡된 인식에 대한 연예계의 싸움이라는 측면이 똬리를 틀고 있다. 과거 억압 시대와 끈을 자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가수 개개인이 겪은 고통과 불행도 결코 가벼이 볼 사안은 아니다. 많은 음악인들이 대마초 사건의 덫에 걸려들어 인기 추락과 방송 활동 규제로 파멸의 길을 걸었다. 아직도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시달리는 피해자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전인권의 분노와 다짐은 더욱 진하게 메아리를 울린다. “마약장이의 아들딸이라는 멍에를 쓴 우리 아이들의 명예를 찾아주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할 겁니다. 고통 받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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