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울린 ‘수사권 조정’ 청와대도 못말렸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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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일방 주도…연내 처리 결정 후 ‘속전속결’

 
검찰이 뒤통수를 크게 한방 맞았다. 반면 경찰은 내심 환호하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열린우리당 ‘검·경 수사권조정 정책기획단’(기획단·단장 조성래 의원)이 지난 5일 경찰을 수사 주체로 인정하고 검·경의 상호 협력을 명문화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기획단 안으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아직 열린우리당은 기획단 안을 당론으로 결정하지는 않았다. 법무부와 검찰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열린우리당은 올해 안에 당론으로 확정하려고 했으나, 지난 8일 오전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기획단 안을 존중하되 꼭 시간에 구애될 필요가 있느냐’는 신중론이 제기되었다.  

초비상이 걸린 쪽은 검찰이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열린우리당의 조정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인사 청문회 당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던 여당이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 수사정책기획단 단장인 박상옥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기자들과 만나 “심의가 계속 진행돼 왔는데 별안간 기존 틀과 전혀 다른, 우리 나라 수사 구조를 180도 바꾸는 안이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선언됐다. 검찰로서는 당황스럽고 뜻밖의 일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사실 열린우리당의 발표는 갑작스런 측면이 있다. 열린우리당 이은영 제1정책조정위원장이 11월22일  기자들과 만나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여당 논의와는 별개로 법사위에서 백지 상태로 다루기로 했다. 법사위원들도 의견이 달라 올해 안에 매듭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한 이후 ‘해를 넘긴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에 일대 충격을 안겨준 열린우리당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

기획단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조정안이 발표되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정세균 의장 등 당 지도부라고 말했다. 당 정책위가 ‘금융산업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등 해를 넘기기 전에 정리해야 할 주요 정책 과제로 꼽은 것 가운데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지도부의 방침이 정해지고 당 전략기획실이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의견을 기획단에 전하면서 ‘내년 처리’가 ‘연내 처리’로 급선회한 것이다.

지도부가 입장을 확정하기 전까지 기획단은 내용상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지난 6월 ‘검·경 수사권과 관련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겠다’며 의욕적으로 출범한 기획단은 취지와 달리 쉽사리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행자위원 5명, 법사위원 4명, 이은영 제1정조위원장 등 10명으로 구성된 기획단은 출신과 소속 상임위에 따라 의견이 갈렸다. 그나마 의견이 모아졌던 것이 지난 9월12일 열린 3차 회의였다. 이때 민생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의 자율적인 수사 개시·진행권을 인정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검·경 상호 협력 관계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11월4일 열린 4차 회의 때는 ‘사안이 중요하고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결과에 이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법사위에서 진행되는 논의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다시 기획단 회의를 연다’고 논의를 정리했다. 사실상 공을 법사위에 넘긴 것이다. 법사위에는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과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올라가 있다. 모두 경찰의 주장을 반영한 법안이다.

‘연내 처리’ 방침을 정한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11월29일 열린 열린우리당 고위 정책조정회의에 기획단 단장인 조성래 의원을 참석시켜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다. 이 날 회의에서 지도부는 다음 주 중으로 1차 결론을 내라고 조의원에게 지시했고, 이에 따라 기획단은 12월2일 오전 결론을 내기 위한 회의를 소집했다.

기획단 회의에서 30분 만에 합의안 확정

회의 전날인 12월1일 정세균 의장은 조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론을 내기 전에 법무부와 협의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조의원은 2일 열 예정이던 기획단 회의를 취소했다. 대신 다음날인 12월2일 저녁 5시,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천정배 법무부장관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조의원이 비밀리에 모였다. 천장관은 “법무부 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문수석은 “청와대 안대로 가자”고 했다. 조의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월요일 오전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달라”고 천장관에게 요청했다. 주도권이 당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분명히 한 모임이었다. 청와대를 믿고 있던 검찰은 이때부터 화급한 처지에 몰렸다.

월요일인 12월5일 오전 대검청사에서는 심상치 않은 여권의 기류를 간파하고 긴급 소집된 전국 고검·지검장 간담회가 열렸다. 결론은 “민생 관련 범죄에 대해 경찰을 수사 주체로 인정할 수 있으나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2월5일 오전까지 법무부 쪽에서는 열린우리당에 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막판에 청와대 안대로 가자는 의견을 밝혔으나 당에서 거부했다.

 
12월5일 오후 2시30분 열린 기획단 회의는 30분 만에 끝났다. 정성호 의원을 제외한 9명이 참석해 세 가지 안을 놓고 결론을 냈다. 경찰도 수사 주체로 하고 검·경 상호 협력을 명문화한 홍미영 의원 법안, 위 두 가지를 명문화했지만 구체적인 사건(내란·외환 범죄, 공안범죄, 폭발물범죄, 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 범죄 등)에 대해서 검사의 지휘권을 명문화한 기획단 1안, 위 두 가지를 명문화했지만 구체 사건이 아니라 대통령령에 규정된 사항에 한하여 지휘하는 기획단 2안 등이었다. 기획단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각 방안에 대하여 대략 2 대 3 대 4로 의견이 갈렸다. 결국 홍미영 의원 법안과 기획단 2안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기획단 2안으로 의견을 모으면서 결론이 났다.

열린우리당이 검·경 수사권 조정 방안을 결정하는 과정에 청와대는 별다른 영향을 행사하지 못했다. 청와대도 두 가지 안을 냈는데 기획단 위원들에게는 ‘참고 자료’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했다. 청와대 안은 경찰을 수사 주체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검·경의 협력 관계를 명문화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단, 구체적으로 정한 일부 범죄에 한해 검사 지휘 없이 수사할 수 있다(1안), 대통령령이 정하는 범죄는 검사 지휘 없이 수사할 수 있다(2안)는 규정이 있을 뿐이다. 안도 안이지만 조정안이 몰고 올 후폭풍 때문에 청와대가 적극 밀어붙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큰 흐름이 잡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조성래 의원은 “기획단 안은 가이드라인이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남아 있는 당·정 협의-당론 확정- 법사위 심의- 본회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변형될 여지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법사위는 법무부 안, 열린우리당 안, 홍미영 의원 안, 이인기 의원 안을 놓고 심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획단 회의 과정에서부터 보좌진을 내보내고 의원들만 토론했던 열린우리당은 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해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 검찰과 당이 갈등하는 것으로 번져서는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격을 당한 검찰은 앞으로 ‘수사 지휘권’을 사수하는 데 공세를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경찰은 수성 전략을 짜는 쪽으로 행보를 옮겼다. 굳히기에 들어간 경찰과 뒤집기에 나선 검찰의 수사권 줄다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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