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 ‘죽음의 물’ 꿀꺽꿀꺽
  • 칭다오 · 정유미 통신원 ()
  • 승인 2005.12.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억7천만명이 화학물질에 오염된 물 마셔…성장제일주의가 부른 재앙

 
겨울이면 형형색색의 얼음 조각과 빛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시. 눈과 얼음 축제의 도시인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시가 최근 재앙의 도시로 돌변했다. 

지난 11월13일 일어난 지린성 중궈스유 벤젠공장 폭발 사고로 맹독성 물질인 벤젠 100t이 쑹화강으로 흘러들면서 하얼빈 시에 최악의 식수 오염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5일 간의 대대적인 단수 조처로 시민들은 마실 물을 찾아 인근 도시로 탈출을 시도했고, 도시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청정 수역으로서‘하얼빈의 젖줄’이라고 불리던 쑹화강은 1980년대 중반부터 상류 지린성에 석유화학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중급 오염 하천으로 급속히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쑹화강 오염이 하얼빈 시에 끼친 직접적인 경제 손실이 15억 위안(약 1천8백88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빙등제·빙설제 등과 관련된 관광업계의 간접적인 손실은 50억 위안(약 6천2백93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국제 이미지 추락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 또한 막대하다.

그러나 중국은 사스나 조류 독감 발생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사건 발생 초기에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한 은폐·조작 행위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당국은 그때서야 ‘관련자 엄중 처벌’을 공언하며 여론 무마에 나섰다.
 
그러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고위 관리자들의 사퇴가 이어지고, 지난 12월6일에는 벤젠 오염 사실을 숨겼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지린시 왕웨이 부시장이 중앙 정부 차원의 조사를 하루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국 환경 문제를 총괄하는 국가환경보호총국 셰전화 국장도 쑹화강 오염 사태로 옷을 벗었다. 그는 ‘후진타오 체제 출범 이후 해임된 최고위 관료’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셰 국장에 이어 새로 국가환경보호총국 수장을 맡은 저우성셴 국장은 “누구나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할 책임이 있으며, 기업은 장기적 안목으로 둘 사이의 상호보완점을 찾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앞세워 환경 문제는 외면한 채 연 8%대 고도 성장을 지속해온 중국에게 엄중한 경고장 역할을 했다.

최근 중국은 지난 20여 년간 고도 성장 과정에서 자행했던 환경 파괴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3월에는 쓰촨성 퉈강 하류 비료공장 폐수 배출로 물고기 500t이 폐사하고 20여 일간 단수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어 5월에는 같은 강 중류의 한 제지공장에서 폐수가 배출되어 물고기 80t이 폐사했다. 지난 9월에는 광둥성 구이위진 전자제품 재처리 공장의 폐수 배출로, 어린이 1백60여명이 납에 중독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다. 구이위진은 전자제품 관련 쓰레기 처리장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중국의 수질 오염 실상은 가히 살인적이다. 현재 중국 주요 도시의 70% 이상이 깨끗한 물이 부족해 허덕이고 있다. 강, 하천, 호수 중 70%가 오염되어으며, 호수의 75%는 부영양화 현상으로 썩어가고 있다. 기준치를 초과한 대장균이 포함된 물을 마시는 사람이 인구의 절반이 넘는 7억명에 이르고, 1억7천여명은 유해 화학물질에 오염된 물을 마시며 살고 있다. 

세계의 쓰레기장’이 된 ‘세계의 공장’

매일 3억t이 넘는 생활오수 중 85% 이상이 정화되지 않은 채, 하천을 거쳐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중국의 수질 오염은 인근 국가인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전체의 골칫거리라고 할 수 있다. 환경 전문가들이 중국을 ‘세계의 쓰레기장’이라고 비하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번 쑹화강 오염 사태도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쑹화강의 오염 물질이 러시아 아무르 강에 합류하면서 그쪽까지 오염시킨 것이다.  중국은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러시아에 피해 배상을 발 빠르게 약속했으나 국제 분쟁으로 비화할 소지는 아직도 남아 있다. 
   
중국 수질 오염의 주요인은 공업 폐수를 통해 배출되는 화학 폐수와 중금속이다. 산업 폐기물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오염에 대한 규제가 허술하다는 점도 수질 오염을 더욱 가속화하는 간접 원인이다. 모두 ‘성장 제일주의’가 낳고 있는 병폐이다.

실제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 공장을 지을 때에도, 환경부담금이 적고 폐기물 처리가 쉽다는 점을 입지 선정의 주된 이유로 꼽는다. 한국인들의 공장이 밀집해 있는 산둥성 칭다오 시 청양 지역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 사장은 “한국은 환경오염에 대한 규제가 점점 엄격해지고 있는데 중국은 그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인건비가 싼 것도 이점이지만 환경부담금을 한국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공장 입지를 선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소득 수준 향상과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생수 판매가 급증하고 정수기 사업이 유망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음용수를 제외한 생활 용수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쏟기란 쉽지 않다.
 
중국에서는 1990년대 이전 한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돗물은 곧 더러운 물’이라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다. 뜨거운 차를 즐겨 마시는 습관도 물에 대한 불신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인들이 서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중 하나는 ‘깨끗한 도시’라는 것이다. 특히 뉴스 또는 드라마, 영화 등 미디어를 통해 본 한강의 모습은 직접 물을 떠서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더러운 물의 상징이었던 한강이 완벽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그린 올림픽’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한강이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새로 태어났듯이, 중국의 양대 강인 황허와 양쯔도 새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