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반찬인 제삿밥의 추억
  • 성석제(소설가) ()
  • 승인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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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긴 한밤중이다. 오줌이 마려워 잠을 깬다. 마루에 있는 요강까지 무릎걸음으로 간다. 방문을 여니 마당은 온통 눈이고 달빛이다. 언제 눈이 와서 세상을 덮었나. 언제 또 구름을 헤치고 저리 환한 달이 떠올랐나. 마을 어디선가 개가 컹컹 짖는다. 우리집 개는 바보다. 덩지는 산만한 게 사람이라면 소도둑놈한테도 꼬리를 흔든다. 그 개는 마루 밑에 엎드려 자고 있다. 사람 잘 때 저도 자고 사람 깨어서 일할 때 저는 자고 밥 먹을 때나 깰까. 오줌을 누고 다시 방문 쪽으로 가려는데 대문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끼우웅, 소리를 내며 개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든다. 대문 쪽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어, 옆집 선종이 목소리다. 나하고 같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섬돌의 고무신에 발을 넣고 내복 바람으로 마당을 걸어가니 발밑에서 뿌득뿌득 소리가 난다. 눈이 고무신 안으로 들어와서 팔짝 뛰도록 발이 시리다. 대문을 열고 보니 선종이가 보자기가 덮인 소반을 들고 서 있다. 야, 너 그게 뭐냐. 보자기를 들추자 뚜껑이 닫힌 놋그릇과 접시가 네댓 개 놓여 있다. 어, 너희 집 오늘 제사 지냈구나. 선종이는, 빨리 받아, 나 추워서 돌아가시겠다, 고 말하면서 소반을 내밀고는 제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짜아식, 기특하구만. 형님 드시라고 제삿밥을 가져오다니.... 하지만 그 음식이 할아버지에게 보내온 것임을 나도 알고 있다.

우리집은 겨울에 제사가 없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모두 여름이다. 고조부모는 큰집에서 지내는데 그 역시 겨울은 아니다. 제사를 지내는 날에는 자정까지 불을 환히 켜놓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아버지는 문어를 오리고, 제사 준비를 마친 어머니, 고모와 아주머니들은 라디오 연속극에 빠져 있고, 아이들은 삼촌과 고모부가 두는 장기를 구경하고 있다. 나는 사랑방에서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죽은 혹(획), 건방시로운(겉멋이 들어간) 삐침’이 나타날 때마다 알밤을 맞아가며 지방을 쓰느라 죽을 지경이다. 제사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

진귀한 음식 곁들인 양반 고을의 헛제삿밥

제사 뒤에 식구들 먹을 것과는 따로 쟁반이나 소반에 밥과 탕국, 나물과 전, 떡 따위를 담아 아이에게 들려 이웃에 보낸다. 선종이네, 그 뒷집 침쟁이 할아버지 모두 할아버지의 친구분이고 그 집안에서 제사가 있으면 으레 쟁반을 보내왔다. 여름밤에 제사 음식을 이웃으로 가져가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겨울은 다르다. 춥고 손발이 시리고, 음식은 가져가는 도중에 식어버린다.

선종이가 건네준 소반을 들고 사랑방 앞으로 가니 방에 촛불이 켜진다. 할머니가 연 미닫이문 뒤에서 할아버지가 옷고름을 매고 있다. 할머니가 눈을 부비면서 큰 대접과 물그릇, 간장이 든 종지를 가져온다. 정좌한 할아버지는 밥을 반쯤 떠내어 대접에 넣고 그 위에 나물 - 고사리 도라지 콩나물 무나물 숙주나물 등등-을 얹은 뒤 간장을 가볍게 넣어 비빈다. 평소에는 밥을 비벼 먹는 것이나 국물에 말아 먹는 것을 마땅치 않아 하던 할아버지다. 식은 음식은 쉽게 비벼지지 않는다. 제사음식은 장만하는 정성만큼 먹는 데도 정성이 필요한 것 같다. 이윽고 나물 씹히는 소리와 참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퍼지는 가운데 탕국 훌쩍이는 소리가 곁들여진다. 할아버지의 식사가 끝난 뒤 내가 그 수저를 든다. 할머니가 남은 찬밥과 찬 나물을 비벼준다. 차가운 탕국을 마셔가며 찬 비빔밥을 먹는다. 눈빛에 달빛이 더하여 밖은 대낮보다 환하다. 내가 밥알이 하나라도 남았을까 빨던 놋숟가락을 아쉽게 내려놓자 할아버지가 굉장한 경구인 것처럼 말씀하신다. “시장이 반찬이다.”

스무 해가 지난 뒤 우리집에도 겨울 제사가 생겼다. 할머니가 겨울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렇지만 서울에서의 제사는 저녁 일곱 시, 보통 저녁 먹는 시간에 지낸다. 아파트에는 쟁반에 음식을 담아 돌릴 이웃이 없다. 보내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옛날 같으면 쟁반을 들고 갈 아이들은 제삿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몇 해 전 겨울에 고향에 갔다가 제사가 있는 친구를 만났다. 아니 친구를 만났는데 마침 그날 밤이 제사라고 했다. 얼씨구나 하고 읍에서 반 백릿길이나 되는 동네까지 쫓아갔다. 고향에서도 두메의 대명사인 동네이다 보니 길 곳곳이 비포장이었고 얼어붙어 있었다. 제주인 친구 형님은 오밤중에 웬 손님들인가 싶어 어리둥절해 했다. 우리는 그 형님에게 넙죽넙죽 절하고 나서 평소에는 안 쓰는 방에 모여 앉아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에 갔던 한 친구가 밖에 걸려 있더라며 곶감을 하나 빼와서 제 아가리에만 처넣었다.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여서 먹기는 좋단다. 나도 화장실을 가는 체하고 나가서 처마 밑에 걸려 있는 곶감을 두 개 빼먹고 왔다. 나 다음에 갔던 친구가 아예 한 줄을 빼서 들고 오다가 집주인에게 현행범으로 적발됐다. 그래 배고프마 밥 머이(먼저) 주라 하까. 형님 말씀에 우리는 싹싹 빌며 아니라고 도리질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은 좋이 지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삿밥이 나왔다. 밥상 앞에서 말들이 많다. 요새 고사리는 전부 중국산이라 카더라. 도라지는 표백까지 한다면서? 신숙주 집안에서는 숙주나물을 녹두나물이라고 한다카대. 설마 무나물은 국산이겠지. 무는 확실히 전라도 무가 최고랑께.

탕국은 양지머리를 넣어서 큼직큼직하게 썬 무·두부와 함께 넉넉히 오래 끓인 국이다. 그 훈기에 대번 감동이 느껴진다. 갖가지 전이나 적, 배가 황금색이고 머리에 다이아몬드 돌기가 뚜렷한 조기는 고맙긴 하지만 오늘의 영웅본색은 아니다.

식어서 약간 딱딱해진 밥을 큰 그릇에 넣고 나물을 넉넉하게 얹는다. 간장 맛이 중요하다. 묵은 조선간장이다. 제사 음식에는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빛이 나는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는 쓰지 않는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주문을 외며 비빈다. 경상도 북부의 큰 제사 치르는 가문에서는 맏며느리가 손으로 수십인 분을 이런 식으로 비벼서 손님을 대접했다고 한다. 제삿밥의 변형이라는 전주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빈다고도 한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다 좋다.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 이미 입안은 침으로 홍수가 났다.

한 입 그득할 만큼 밥이 담긴 놋숟가락이 덤벼온다. 온몸이 입이 된다. 혀가 삶이다. 순간이 눈 내린 들판의 달빛처럼 환해진다.

양반 동네인 안동과 진주에 헛제사밥이라는 게 있다. 양반님네들 안 그래도 제사가 많을 터인데 제사가 없는 그동안을 못 참고 제사 지내는 시늉을 해가며 헛제사밥까지 만들어 먹었던 모양이다.

안동의 헛제사밥에는 저 유명한 간고등어와 돔배고기라고 부르는 상어고기가 들어 있다. 두어 번 일부러 찾아가서 먹었던 진주의 헛제사밥은 민어 같은 귀한 물고기류가 있었고, 더 격식을 차린 듯 육적·어적·소적(두부적)의 3적, 명태·건홍합·피문어의 3탕, 숙주·고사리·시금치의 3색 나물이 모두 갖춰져 나왔다.

진주고 안동이고 쉽게 갈 수는 없지만 겨울이면 몸을 일으킬 생각이 난다. 훈훈한 탕국과 깔깔한 밥알의 감촉 때문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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