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논란, 좌도 없고 우도 없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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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진영 무너뜨린 ‘대연정’, 축복일까 재앙일까

이른바 황빠(황우석 지지자)건 황까(황우석 비판자)건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한 해였다. 황우석 교수와 결별하겠다는 피츠버그 대학 새튼 교수의 폭탄 선언이 있은 11월12일 이후 한국 사회는 황우석 논쟁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 기간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황우석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네이버의 경우 12월4일 뉴스홈에 올린 ‘<PD수첩> 취재 윤리 위반 사과’ 기사에는 2만4천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기사는 12월 첫째 주 최다 덧글 기사로 꼽혔다. 네이버 박선영 뉴스팀장은 특정 이슈에 이렇게 장기간 폭발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평했다.

이같은 양적 지표보다 더 주목할 사실은, 황우석 논쟁이 우리 사회의 모든 대립 구도를 일거에 무력화했다는 점이다(상자 기사 참조).

물론 이번 사태를 기존 보수-진보 대립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12월6일 기고한 칼럼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좌파 매체와 좌파 성향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MBC <PD수첩>의 보도를 옹호하거나 더 나아가 황우석 깎아내리기에 동조했다’며, 이들이 노리는 것인즉 ‘우리가 잘되기 바라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 곧 우파를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보통 사람들에 대한 마녀사냥’).

그러나 그의 칼럼은 전제부터 흔들렸다. 그가 좌파라고 지목해 온 이른바 ‘친노(親盧)’ 매체들은 이번 사태를 겪으며 극심한 분열을 겪었다. 하다못해 진보적 성향이라고 알려진 논객마저 황교수를 비판하는 데 최소한의 애정도 읽을 수 없다며 진보 진영을 ‘까는’ 판이었다(유창선, ‘황우석 몰아세운 일그러진 진보주의’). 

실제로 비교적 진보 성향의 독자를 가졌다는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은 황교수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보도할 때마다 독자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했다. 이 때문에 <PD수첩>이 취재 윤리를 위반했다고 시인한 직후 <오마이뉴스>는 내부 옴부즈맨 조사 보고서(‘<오마이뉴스>의 황우석 보도를 말한다’)를 통해 자사 보도 경위를 밝히는 이례적인 대응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노빠 사이트’임을 자임해 온 <서프라이즈>는 이번 사태 내내 황우석 교수를 적극 편드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이트의 간판격 필자인 김동렬씨는 ‘MBC 난동의 본질’ ‘서태지, 노무현, 황우석’ 같은 칼럼을 잇달아 올리며, 황교수야말로 서태지·노무현을 잇는 새로운 시대 정신의 상징인데 좌파가 이를 짓밟는 ‘부시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필자 ‘마케터’는 MBC를 '국민을 분열로 몰고 가는 비열한 언론'이라고 칭하며, 언론에도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황교수에게 비판적인 글은 융탄 폭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한 논객은 여유를 갖고 자중하자는 요지의 칼럼을 올렸다가 네티즌들로부터 ‘-1000점’을 받고 자기 글이  해우소(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인터넷이 논쟁의 주무대 구실

이를 두고 아이디 ‘눈팅’은, 한때 ‘안티 조선의 전진 기지’로 불렸던 서프라이즈가 이제 와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국익을 내세워 내셔널리즘을 선동하고 있다며 ‘동종교배’의 위험성을 걱정했다.

문화 평론가 김갑수씨는 ‘흡사 원수지간 같아 보이던 <서프라이즈>와 <조선일보>가 같은 객석에 앉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개탄했다(<너무 거칠었다, 우리 모두>, 한겨레). 

균열은 보수 언론과 논객에게도 나타났다. 뉴라이트 논객 조영환씨는 한국의 우파들이 ‘MBC 죽이기’를 통해 집단 광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광풍에 휩싸인 황우석 우상화와 MBC 죽이기’, 업코리아). ‘빨갱이가 되자’는 구호를 일반화한 월드컵 응원과 탄핵 반대 시위에서처럼 군중과 네티즌을 선동하는 것은 좌파의 장기인데, 우파가 이를 무분별하게 원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죽이는 짓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본질적인 균열은 가치 체계 붕괴로 나타났다. 김일영 교수(중앙대·법학)는 진보 진영이 ‘알 권리와 진실 규명’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고 나오고, 보수 진영이 ‘진실보다 국익이 우선’이라는 코리안 스탠더드를 들고 나온 이번 국면을 ‘기묘한 문명 충돌’이라고 파악했다(‘황우석 논란에 웬 보수·진보?’, 중앙일보 시평).

특히 일부 언론이 황교수의 거짓 해명 등을 질타하기보다 미국의 시기·견제설 따위를 강조하는 보도 행태를 보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안현수씨는 “평소 한·미 동맹을 부르짖으며 미국에 맹종하자고 외치던 조선·동아 등 수구 언론이 엉뚱하게 미국에 대한 자주성을 주장하는 것이 참으로 어이없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곳곳에서 벌어진 이같은 균열 속에 대중은 우왕좌왕했다. 음모론도 난무했다. 황교수 연구를 재검증하라고 요구한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둥 잡설에 시달린 한 네티즌은 이런 자조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음모론에 따르면) 우리는 프리메이슨의 행동대원으로, 교황청과 국제 유대인 조직이 합작 설립한 비밀 조직의 자금 지원을 받고, CIA의 신원 보증으로 북조선 노동당 작전부에서 훈련받은 후 남한으로 파견되어 MBC 알바로 뛰고 있는 민노당/노빠라는군요.’

이런 분위기 속에 진실은 더 이상 대중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를 두고 칼럼니스트 진중권씨는 황우석 신드롬이 ‘과학’을 넘어 ‘종교’의 영역에 진입했다고 비아냥댔다(‘패션오브 황우석…비판자는 가롯 유다’). 중량감 있는 대권 주자마저 황교수 비판자를 ‘악인’이라고 규정하는 상황에서 과학적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이 와중에 희생된 제물은 MBC만이 아니었다. <PD수첩>에 광고주 전체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을 언론이 견제하지 못했던 일은 결국 다른 언론에도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것이라던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의 예견을 입증하듯, 황교수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보도 태도를 보였던 조선일보 또한 뒤늦게 황교수 지지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피츠버그 대학 새튼 교수가 2005년 논문에서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한 사실을 특종 보도한 뒤 조선일보가 ‘황교수 죽이기’로 보도 방향을 틀었다는 추측이 난무하면서였다. ‘조선일보 구독 신청했다’는 황교수 지지 사이트의 댓글들이 ‘조선일보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로 바뀌는 데는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모든 논쟁을 인터넷이 대부분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과정에서 전통적 지식인, 그중에서도 특히 논문 진위 논쟁에 영향을 미칠 만한 과학계 지식인들은 거의 침묵했다. 언론은 언론대로 실체적 진실을 보도하기보다 여론에 편승해 혼란을 부추겼다. 

강준만 교수는 <인물과 사상> 폐간호에서 인터넷이 ‘참여의 축복’ ‘연대의 축복’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참여의 왜곡’‘연대의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식인·언론의 책임 방기 속에 실현된 초유의 ‘보수-진보 대연정’이 축복과 재앙 중 어느 쪽을 가져올지, 대세는 곧 판가름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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