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미래 초석을 놓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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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중문화 달군'4대 천왕'/새로운 코드로 지평 넓혀

올 한 해도 대중 문화 현장은 여전히 뜨거웠다. 텔레비전에서는 <내 이름은 김삼순> 등 새로운 드라마들이 새로운 감수성을 선보이며 시청자의 열띤 호응을 받았으며, 영화에서는 <웰컴 투 동막골> 등 새로운 코드의 흥행 영화가 등장해 관객을 사로잡았다. 온라인 음악 시장을 중심으로 서서히 재기하려고 기지개를 켜고 있는 대중음악계도 SG워너비·버즈 등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면서 부활을 알렸다. 

지난해까지 한류의 주역이 보아와 <겨울연가>였다면, 올해 한류의 새로운 주역은 <대장금>과 비였다. 대장금은 타이완 홍콩 중국 등에서 ‘대장금 신드롬’을 일으키며 새로운 한류 코드로 떠올랐고, 비는 드라마 <풀하우스>로 얼굴을 알린 뒤 ‘레이니데이 콘서트’로 아시아인의 눈과 귀를 휘어잡았다. 2006년의 대중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시사저널>은 올해 대중문화계가 성취한 것 중에 우리 대중 문화의 지평을 넓히고 앞으로 한류의 좋은 씨앗이 될 4대 천왕을 꼽아보았다. 

드라마의 미래 보여준 ‘김삼순’

 
올해 안방 극장은 삼순이 금순이 맹순이, 이른바 ‘쓰리 순이’가 맹위를 떨친 한 해였다. <내 이름은 김삼순><굳세어라 금순아><장밋빛 인생> 등 힘 없는 여성을 중심에 놓은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었다. 변화한 여성의 삶과 위상을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이들 드라마에 시청자는 열광했다. 고졸 여성의 줏대 있는 삶과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을 보여준 <내 이름은 김삼순>은 그 중에서도 특히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한류의 주역이었지만 한국 드라마는 소재 중복과 비슷한 스토리 구조 때문에 식상하다는 비난을 국내외로부터 들어왔다. 이 드라마는 고전적인 가족 드라마와 신데렐라 드라마들과는 차별화한 현대적인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다양한 컬트 코드 실험을 통해 우리 드라마의 영역을 확장했다. 또한 다니엘 헤니 등 혼혈 연예인을 등장시키면서 우리 드라마의 외연을 확장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성공한 이후, 노처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 <영재의 전성시대> 등 아류 드라마들이 등장했으나 그다지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대학 문화 가능성 보여준 이상미

 
삼순이와 금순이로 MBC 드라마국이 드라마 왕국 MBC를 재건하는 동안, MBC 예능국은 카우치의 성기 노출 사건과 상주 콘서트장 압사 사건으로 인해 악몽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런 대형 사고와 함께 시청률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MBC 예능국을 구한 ‘잔 다르크’는 바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그룹 익스의 리더 이상미였다.

이상미를 스타로 키운 것은 네티즌의 힘이었다. 올해 대학가요제에서 대학생 실업 문제를 담은 <잘 부탁드립니다>로 대상을 받은 그녀는 네티즌들의 입소문을 통해 스타로 떠올랐다. 그 현상은 만들어진 대중 문화를 그대로 소비하지 않고 스스로 문화를 일구고 즐기는 요즘 대학생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네티즌은 그녀의 음악이 보여주는 ‘자연미’에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그러나 이후 이상미가 보여준 행보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녀는 대안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여느 스타 지망생과 마찬가지로 연예기획사에 적을 두고 본격적으로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를 발굴한 MBC 예능국도 수시로 그녀를 불러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며 발목을 붙잡았다. 새로 시작한 시트콤 <레인보 로망스>에 합류한 이상미는 이제 평범한 아이돌 스타와 비슷한 행보를 하게 되었다. 

한국 영화의 새 희망, 신인감독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올해 한국 영화계는 신인 감독들이 먹여살렸다’고 말할 수 있다. 8백만 관객을 모은 <웰컴 투 동막골>(박광현), 5백만명을 동원한 <말아톤>(정윤철), 3백만 명을 기록한 <너는 내 운명>(박진표)과 <마파도>(추창민) 모두 신인 감독이 연출한 영화였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신인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신인 감독들은 작품성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 박진표 감독(<너는 내 운명>)은 청룡영화제 감독상을, 박광현 감독(<웰컴 투 동막골>)은 대한민국영화대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새로운 감수성으로 무장한 웰메이드 상업영화를 제작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다 잡는 데 성공했다.

신인 감독들의 영화는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지 않고도 기획력과 연출력으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신인 감독들은 새로운 소재에 주목했다. 자폐아를 소재로 한 <말아톤>, 농촌 총각과 에이즈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너는 내 운명>, 섬마을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활용한 <마파도> 모두 소외 계층을 새로운 시선으로 그리며 관객의 시선을 붙들었다.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은 신인 감독으로서 드물게 블록버스터 제작에도 성공했다.

한류를 세계 시장으로 확장한 박진영

한류와 관련해 올해 가장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룬 사람은 가수 겸 프로듀서,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이사였다. 그가 발굴한 스타 비는 올해 드라마 <풀하우스>와 ‘레이디 데이 콘서트’를 통해 아시아 최고의 스타로 올라섰다. 프로듀서로서 박진영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윌 스미스·타이리스 깁슨 등 미국 유명 가수들이 그의 곡을 앨범에 실으면서 세계 팝 문화의 중심지인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스타 기획자로서 박이사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이사와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 이수만씨는 일본과 중국 시장만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이 두 시장을 확실하게 다져서 이익을 창출하고, 미국 시장은 따로 공략하지 않고 중국 시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월드 스타가 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박진영씨는 일본 중국 이외의 다른 아시아 시장이나 미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며 확장하는 모형을 따르고 있다. 

올해는 박이사에게 뜻깊은 한 해였다. 그가 발굴한 비가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 수출대상 시상식에서 3년 동안 수상한 보아를 제치고 음악부문 우수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비의 열풍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06년은 비가 월드 스타로 진출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세계적인 프로듀서로 성장한 박진영이 비를 어떻게 월드 스타로 키워낼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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