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성역 이면 들춘 ‘진실의 수첩’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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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논란’의 발원지인 MBC 은 온갖 압력을 뚫고 배아 줄기세포에 얽힌 비밀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12월15일 오후 <시사저널> 편집국은 돌연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다. 기자들이 2005년 ‘올해의 인물’ 선정을 위해 막바지 작업을 하는 와중에 황우석 교수 관련 긴급 뉴스가 편집국을 강타한 것이다. 애초에 <시사저널>은 <PD수첩>을 올해의 인물 유력 후보로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PD수첩>에 선뜻 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황우석’이라는 성역에 도전장을 던진 것은 높이 평가했지만, 논문의 진위 여부가 최종적으로 가려지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 ‘문제의 뉴스’가 터져나온 것이다. 황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벌이는 ‘진실 게임’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 한 달여 국내외 과학계와 한국 사회를 뒤흔든 황우석 논란이 종착지로 치닫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PD수첩>이 제기한 논문의 오류들이 상당수 사실로 드러났고, 황교수는 논문 을 자진 철회했다.

이제 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취재 윤리’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니지만, <PD수첩>의 보도 행위는 국민의 알 권리를 좇으며 진실을 파헤친다는 언론 본령을 추구한 것으로 평가할 만했다. 그동안 성역 앞에서 묻히곤 했던 과학계 내부의 의문과 문제 제기는 이들의 위험천만한 도전이 있었기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시사저널>이 <PD수첩>을 ‘2005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판단 근거였다.

다사다난을 넘어 너무나 역동적인 한국에서 올해의 인물 선정 작업은 늘 순탄하지 않았지만, 올해처럼 격론이 벌어진 적도 드물다. <시사저널>은 개인 혹은 집단의 선도적이고 가치 있는 행동이나 뛰어난 성취가 한국 사회를 발전시킨 동력이 되었다는 믿음으로 창간 첫해인 1989년부터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왔다
.

12월16일 오후 2시 서울대학교 수의대 3층 스코필드홀의 마이크는 유난히 말을 듣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마이크를 교체하고 두드리고 나서야 황우석 교수(서울대·수의학과)는 말문을 열었다.
“심각한 오염사고가 동시 발생해 더이상 줄기세포 실험을 할 수 없었으며 수립된 6개 줄기세포가 생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논문을) 자진 철회하겠다.”
“맞춤 줄기세포가 미즈메디 병원 줄기세포로 바뀌었다"
황교수는 논문과 줄기세포를 망친 주범으로 미즈메디병원 팀을 지목했다. 이에 질세라 오후 3시에는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에서 노성일 이사장이 기자회견을 했다. “황교수는 복제된 배아 줄기세포가 없는데도 미즈메디병원의 줄기세포로 둔갑되고 김연구원이 나쁜 행위를 했다고 책임을 전가했다.”

황우석과 노성일. 둘 가운데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반전드라마를 보았다. 그러나 이처럼 혼란스런 와중에도 분명한 점이 하나 있다. 진실 게임과는 별도로 <PD수첩>팀의  애초 문제 제기가 대부분 옳았다는 점이다.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은 저자들이 철회를 요청할 정도로 문제투성이 졸작이었다.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 모두 지난 한 달 동안 줄기세포 보존 상태와 숫자에 대해 거짓말을 해 왔다. 설사 줄기세포의 존재가 확인된다 하더라도, ‘논문에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PD수첩> 주장의 정당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거짓말을 한 것은 황교수와 노이사장 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는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세력이 연합해 <PD수첩>의 입을 막았다. 작게는 황우석 교수 연구팀에서, 서울대학교 수의대·한양대학교 의대, 눈치만 보던 원로 과학계, 황우석 연구를 후원해 온 박기영 청와대 보좌관과 정치권, 그리고 진실 탐구보다 ‘MBC 죽이기’가 더 급했던 <조선><중앙><동아><YTN> 등 언론사...... 이 모두가 <PD수첩>의 반대편에 섰다. 외로운 싸움이었다. <시사저널>이 <PD수첩>을 2005년 ‘올해의 인물’로 뽑은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의 맹목적 영웅만들기 풍토에 경종을 울리고, 실종되었던 진실의 가치를 되찾아 주었기 때문이다.

1972년 미국의 ‘워터게이트’에 비견할 만한 ‘황우석 스캔들’의 출발은 6개월 전 한 인터넷 제보에서 출발했다. MBC 홈페이지(www.imbc.com) <PD수첩> 제보 난에는 하루 평균 20여 건의 비리 고발 제보가 쏟아진다. 와중에는 악의적이거나 근거 없는 제보도 많다. 하지만 6월1일 <PD수첩> 최승호 책임프로듀서(CP)가 발견한 ‘황우석 교수 관련입니다’라는 제목의 제보는 달랐다. 제보문은  ’Science지에 대한 사실에 양심이 허락지 않아. 이렇게 편지 보냅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신념 하나로 이렇게 편지를 띄우니 부디 저버리지 마시고 연락 부탁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4개월간 집중 취재 후 확신 굳혀

최CP는 “학수야 이리 와봐”라며 앞자리에 앉아있던 안경을 낀 젊은 후배를 불렀다. 한학수 PD(36)였다. 그는 '이 달의 좋은 프로듀서상''올해의 기획보도상''반부패 수범 유공상' 등을 받았으며, 그 전까지 <한국의 진보> 3부작 시리즈를 제작해 주목받던 민완 PD였다. 최CP가 팀내 PD 8명 가운데 특히 한 PD를 부른 것은 마침 그가 줄기세포를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학수 PD는 지난 5월말 <PD수첩>팀에 합류했는데, 그 즈음 황우석 교수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해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논문이 허위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한PD는 ‘황우석 vs 부시’라는 가제로 복제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윤리 논쟁을 재조명해볼 요량이었다. 제보자를 만나면서 한학수 PD의 탐구 주제는 180도 바뀌었다.

<PD수첩>의 ‘딥스로트’(워터게이트 사건내부고발자의 별칭)는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핵심 연구자였다. 한학수 PD는 제보자의 근무지에서 그를 만났다. 딥스로트의 폭로는 충격이었다. 2005년 논문이 날조된 것이며, 황교수 연구에 쓰인 난자들이 돈을 주고 매매된 것이거나 연구원에게 얻은 난자들이었다는 내용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나 난자 제공 윤리 문제와 관련한 제보 내용은 증거가 너무 명백했다. 다른 제보 역시 근거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최승호 CP의 회고다.

취재의 기본은 제보자의 동기를 확인하는 것이다. 악의는 없는지, 이해관계는 무엇인지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이 ‘딥스로트’는 황교수 연구실로부터 불이익을 받은 일이 없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가졌고 제보를 통해 얻을 이익이 없었다. 딥스로트는 ‘체세포 복제를 난치병 치료에 응용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조직적으로 황우석 교수의 업적이 포장되고 있다. 가짜를 기반으로 생명공학이 세워지면 안된다’라고 제보 동기를 밝혔다. 그렇다면 그 많은 시사 고발 프로그램 가운데 왜 <PD수첩>을 골랐을까. 최CP에 따르면 딥스로트는 <PD수첩> 15주년 특집 방송(5월31일 방영)을 보고 다음날 제보를 결심했다고 한다. 

 
최초 제보를 받은 이후, 제작진이 제보 내용에 확신을 가지기까지는 4개월이 걸렸다. 제작진은 <사이언스> 논문 공저자 25인 대부분과 접촉했다. 논문의 진위 여부는 원래의 체세포와 복제된 줄기세포를 놓고 DNA 검증을 함으로써 가려진다. 황우석 교수에게 직접 접근할 수 없었던 제작진은 먼저 주변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하나둘 단서를 모았다. <PD수첩>의 딥스로트는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가 복제 줄기세포로 둔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힌트를 주었다. 제작진은 우여곡절 끝에 미즈메디병원 수정란 줄기세포 라인을 입수했고, <사이언스> 논문에 등장하는 환자(체세포 제공자)들을 직접 만나 머리카락을 얻었다. 퍼즐 맞추기 게임 같았다.

한학수 PD는 8월부터는 아예 다른 취재를 모두 접고 오로지 황우석 논문 문제에만 매달렸다. 4개월 가까이 딥스로트로부터 줄기세포 ‘과외’를 받으며 내공을 쌓았다. 11월이 되었을 때는 국내 과학 기자 가운데 한학수PD만큼 복제 줄기세포에 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드물었다. <PD수첩>이 얼마나 철저히 취재를 했는가는 11월16일 노성일 이사장 기자회견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PD수첩> 방송의 피해자라고 밝히면서도 “< PD수첩> 은 너무나도 과학적으로 완벽했다.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라며 혀를 내둘렀다.

10월21일 한학수 PD는 미국 출장을 떠났다. 취재의 핵심이자 오욕이기도 했던 출장이었다. <PD수첩>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연락해 피츠버그 대학에 소속된 황우석 사단 연구원들을 섭외했다.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하기 전날 한PD는 한국으로부터 국제 전화를 받았다. DNA검사를 해 본 결과 논문에 나온 줄기세포 2번 라인이 미즈메디 수정란 줄기세포 4번 라인과 일치한다는 전화였다. 한PD는 논문이 가짜라는 확신을 굳혔다.

다음날 한PD는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다. “황우석 박사만 주저앉히면 됩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될 겁니다.” “젊은 분들이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실제 어조는 여리기 때문에 듣기에 따라 강압 여부는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협박 취재라고 비판했다.

<시사저널>은 <PD수첩>의 취재 윤리에 문제가 없었다고 보지 않는다. 이 <PD수첩>의 결함은 올해의 인물 수상과 별도로 남을 것이다. 이 때문에 최승호CP와 한학수 PD는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았다. MBC는 12월4일 <뉴스 데스크>에서 사과 방송을 하고 12월15일 특집 방송에서는 취재 윤리 위반에 대해 세 번 사과했다.

피츠버그 취재를 마칠 때까지  <PD수첩>은 취재 내용을 MBC 경영진에게 보고하지 않고 있었다. 10월 말부터 취재 내용이 황우석 교수측에 알려지자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교수측이 MBC 임원을 만나청와대를 언급하며 압박했다. <오마이 뉴스>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11월 초 <PD수첩>을 협박죄로 형사 처벌할 수 있는지 검토해 달라는 보고서를 받았다.

취재 윤리 문제로 거센 역풍 맞아

11월 중순부터 <PD수첩> 방송 내용이 공공연히 언론가에 떠돌았다. 고등학교 1학년인 최CP의 딸이 방송 이후 벌어질 결과가 무섭다며 아빠에게 방송 안 하면 안 되느냐고 부탁했다. 11월22일 <PD수첩>은 난자 윤리 문제를 방송했다. 방송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대로다. MBC 광고주 불매 운동으로 11월29일 <PD수첩>에는 광고가 사라졌다. 본사 10층 교양제작국은 항의 전화 벨 소리로 시끄러웠다. 공공연한 협박이 이어졌고 한학수PD 가족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11월26일 MBC 앞에서 성난 네티즌들이 촛불 시위를 했다. 최CP는 회사에 있다가 퇴근하면서 촛불 시위 행렬을 보았다. “시위 군중 가운데 난치병 환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유일한 희망이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죄송하다”
두 가지 진실이 팽팽히 맞설 때는 대개 어느 쪽의 논리가 맞느냐는 것보다 어느 쪽에서 도덕적 결함이 먼저 발견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PD수첩>이 그랬다. 안규리,윤현수 교수와 함께 미국 피츠버그에 동행한 YTN 취재진은 12월4일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해 ‘<PD수첩>의 강압 취재 사실’을 고발했다.
게임은 끝난 듯 했다. 대국민사과 방송을 한 MBC는 <PD수첩> 방영을 중단시켰다. MBC 보도국의 한 기자는 “MBC 로고만 보이면 삿대질을 하는 시민들 때문에 정상적인 취재를 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여성부는 4월12일 방송된  <PD수첩>의 <강간죄를 개혁하라> 프로그램에 상을 주려고 했으나 돌연 취소하는 촌극을 벌였다. 
번민의 시간이었다. 최CP의 몸무게는  7Kg 빠지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우리 잘못은 인정하지만 방송은 내보내고 싶었다. 정 방송을 못 내보내면 취재한 사실 가지고 나와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MBC를 죽인 것도 인터넷이지만 살린 것도 인터넷이었다. 12월5일부터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황우석 논문에 대한 온라인 재검증이 이루어졌다. 소장 생물학자라고 보도된 이들은 거의 매일 <사이언스> 논문의 결정적인 문제를 발견해 알렸다. 줄기세포 사진이 최소 11쌍 중복되었고, DNA 핑거프린팅에도 조작한 흔적이 있었다.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2월8일 서울대 소장파 교수들이 대학에 재검증을 요청했다. 12월9일 미국 피츠버그 대학 섀튼 교수가 <사이언스> 논문에서 자신의 이름을 뺄 것과 논문 철회를 주장했다. 그리고 12월15일 노성일 이사장이 ‘줄기세포는 없다’고 폭로했다. 첫 제보로부터 5개월 보름이 지난 후였다.

소장 과학자들 문제 제기 후 상황 반전

12월15일 저녁 10시 MBC 시사교양국에서 <PD수첩>팀 가족이 모여 특집 방송(녹화)을 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최CP와 한DP도 있었다. 대기 발령되어 있던 두 사람을 대신해 최진용 국장이 방송 진행을 맡았다. 방송은 왜 2005년 <사이언스>에 제출된 황우석 논문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지 조목조목 나열했다. 도입 부분을 빼면 배경 음악이 깔리지 않았다.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고 적막이 흘렀다. 방송은 한 문장의 자막과 함께 끝났다.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생명과학 전공 및 학생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PD수첩> 침몰 이후에도 황우석 교수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한 BRIC, Scieng(과학기술인연합), 소장파 생명과학 교수 들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시사저널>은 이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PD수첩>을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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