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조작의 달인 조폭과 손잡다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12.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은 이용호 게이트의 배후이자 1조4천억원대 금융 사기 공범인 최병호씨가 2003년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인도네시아로 도피했음을 확인하고, 현재진행형인 최씨의 범죄 행각을

 
<시사저널>은 이용호 게이트의 배후이자 1조4천억원대 금융 사기 공범인 최병호씨가 2003년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인도네시아로 도피했음을 확인하고, 현재진행형인 최씨의 범죄 행각을 추적했다.

지난 11월23일 낮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 자리한 힐튼호텔 커피숍. 찻잔을 사이에 두고 한국인 3명이 인도네시아인 3명과 마주앉아 심각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윽고 한국인 한 사람이 인도네시아인 3명에게 준비해간 두툼한 쇼핑백을 하나씩 건넸다. 안에는 방금 은행에서 인출한 인도네시아 화폐 15억 루피아(미화 약 15만 달러)가 5억 루피아씩 세 다발로 나뉘어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쇼핑백을 주고받은 일행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 날 돈을 건넨 한국인들은 일찌감치 인도네시아로 진출한 조직폭력 단원인 황○○, 김○○, 김○ 씨였다. 세 사람은 국내 조직 폭력 세력인 ㅈ파 등에 소속된 인물들이다. 돈다발을 건네받은 현지인들은 인도네시아 최대 조직폭력단으로 꼽히는 얍또파 중간두목들이었다. 얍또파는 자카르타를 무대로 마약 밀매와 위조 지폐 제조를 일삼는 조폭 3대 패밀리 가운데 하나로 통한다.

 면면으로만 보면 이날 이들의 접선은 한국 조직폭력 세력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현지 조직폭력 중간두목들을 매수해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전형적인 국제 범죄 커넥션 현장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단순히 양국 조폭이 접선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힐튼호텔 객실에는 얍또파 조직원들에게 줄 돈다발을 한국 조폭에게 전해준 거물급 한국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최병호씨(51·전 체이스벤처케피탈 대표).

자카르타 시내에서 2년째 살고 있는 최씨는 한국 금융범죄 수사당국에는 특급 수배자로 등록되어 있는 거물 경제 사범이다. 그는 지난 11월20일 한국에서 그의 뒤를 보아주는 세력으로부터 미화 3백만 달러(약 30억원)을 환치기 수법으로 송금받아 인도네시아 조폭을 매수하는 일에 나섰던 것이다.

 법무부·검찰·금융감독원·경찰은 최병호씨의 정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DJ 정권 시절 권력형 비리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용호 게이트’의 실질적 배후이자 대한민국 주가 조작의 천재로 불리는 금융 사기범이다. 2002년 검찰에 적발된, 사상 최대 규모로 꼽히는 1조4천억원대 금융 사기 범죄에도 변인호씨(지난 11월28일 중국 공안에 체포된)와 함께 최씨가 깊이 개입했다. 현재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형사부·강력부·금융조사부·서울 서대문경찰서·강남경찰서가 최씨가 해외로 도피하기 전에 저지른 각종 범죄에 대해 특가법 위반으로 총 6건의 수배 조처를 내려둔 것으로 확인되었다. 주로 증권거래법 위반, 횡령, 사기, 납치, 감금, 폭행과 관련된 범죄 혐의이다. 이용호 게이트의 핵심 배후로 구속된 뒤 재판을 받고 있던 그는 2003년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특급 수배자가 어떻게 외국으로 도망갔나

 
<시사저널> 취재를 통해 지난 2년 동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은신해 왔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최병호씨의 문제점은, 그가 과거의 대형 경제 범죄를 숨기기 위해 해외로 도피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최씨의 갖가지 범죄 행위는 현재진행형일 뿐 아니라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그는 해외에서 국내 조폭과 현지 조폭을 연계해 주가 조작 거점을 마련하고, 앞으로 인도네시아 조폭들을 투자자로 가장시켜 국내에 보내 주가 조작에 이용하려는 야심찬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자가 추적한 결과 올해 들어서만도 최씨가 자카르타를 발판으로 국내 거점을 이용해 코스닥 시장 주가 조종에 가담한 사례는 2건이다. 

 그러면 감옥에 있어야 할 최씨가 인도네시아에 은신해 사업을 확장하고 국내 조폭과 연결되어 한국 주식 시장을 끊임없이 교란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시사저널>은 지난 10월 최병호씨가 자카르타에서 윤영삼이라는 위조 여권으로 은신한 채 해외 거점 한국 주가조작망을 구축했다는 제보를 받고,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의 최씨 행적과 범죄 행각을 입체 추적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최씨의 공식 행적은 2003년 여름 교도소에서 병보석으로 출소한 뒤 행방불명된 것으로 나와 있다. 도피 직전까지 종로구 신영동에 주소지를 두었던 최씨는 지난 9월8일자로 송파구 신천동에 있는 한 호화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 아파트를 찾았으나 최씨는 없었다. 수소문한 끝에 최씨가 도피하기 전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던 아무개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최병호씨와 함께 도피해 자카르타의 대저택에서 두 달간 함께 살았다고 했다.

아무개씨는 “최병호씨가 병보석으로 나온 뒤 내연녀 김○○씨가 먼저 중국으로 도피한 오빠에게 부탁해 허영삼이라는 위조 여권을 만들어 중국으로 빼돌린 뒤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인도네시아로 재차 은신처를 마련해 보냈다”라고 말했다.

 2003년 여름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내연녀이자 사채업을 하는 김씨의 도움으로 허영삼이라는 위조 여권을 만들어 인천공항을 빠져나간 최씨는 처음에 중국 선전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한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된 중국에서는 허영삼으로 행세하던 그를 알아보는 한국인이 더러 있었다.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강제 송환당할 것을 두려워한 최씨는 국내에 있던 자기 회사 간부에게 전화해 도움을 청했다.

현지 조폭 끌어들여 안마시술소 등 운영

당시 최씨를 아무개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병호씨가 중국에서 도와달라고 전화해 왔기에 홍콩으로 나와서 만나자고 했다. 내가 홍콩에 최씨를 만나러 나간 사이에 회사 내부인이 우리 두 사람이 해외로 함께 도피했다고 검찰에 신고해 나도 귀국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최씨와 함께 지냈다. 그러다가 최씨가 내연녀의 도움으로 먼저 자카르타에 피신했고, 나도 뒤따라 최씨의 은신처로 가서 두 달간 내연녀 김씨와 최씨 집에서 함께 지내다가 혼자 귀국해 검찰에 자수하고 구속된 뒤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최씨의 소재지를 검찰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확인한 결과 최씨의 은신을 도운 여성 사채업자 김씨는 올 들어서만도 수 차례 자카르타를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최병호씨가 자카르타를 도피처로 택한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역사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나라라는 점과, 두 나라 사이에 아직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점을 고려해서였다.

자카르타 시 외곽 보글라야 골프장 근처 호화 저택에 은신처를 마련한 최씨는 철저하게 허영삼으로 행세하면서 내기 골프와 사기 도박을 벌이면서 현지에 적응했다. 한국인 중 인도네시아에 나왔다가 여권 기한이 넘어 약점이 잡힌 이들이 주된 표적이었다. 자카르타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 아무개씨는 “최병호가 자기 집으로 교민 사업가와 자영업자 들을 초대해 사기 도박을 일삼고 있는데, 교민 사회에서 최씨에게 걸려 재산을 탕진한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최씨는 자카르타에서 새로운 범죄 조직과 만났다. 이미 각종 폭력 사건으로 수배된 뒤 이곳에 피신해 들어와 터를 잡고 있던 ㅈ파와 ㄷ파 출신 국내 조폭 세력과 결합한 것이다. 황○○, 김○○, 김○○, 박○○, 김○○씨 등 국내 조폭 세력은 처음에 최병호씨에게 허영삼이라는 위조 여권을 문제 삼겠다고 접근했다. 최병호씨는 이들에게 이권을 나누자고 제안해 결국 최씨가 대주주가 되고 조폭쪽 황씨가 대표를 맡아 지분을 7 대 3으로 나누기로 하고 해외 현지법인(주류 유통회사)을 설립했다. (주)신우라는 이름을 가진 자카르타 현지 법인은 한국 주가 조작과 불법 해외 송금을 받기 위한 거점이자 인도네시아 조폭과 손잡고 도박장과 안마시술소를 운영하기 위한 회사이다. 

 그동안 환치기 수법으로 국내에서 막대한 돈을 송금받은 최씨는 인도네시아 휴양지 발리에 5억원을 들여 안마시술소를 매수하고 호텔 카지노를 설립하기 위해 발리 인근 섬 부지 매입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현지 조폭의 보호막이 필수라고 판단한 이들은 인도네시아 3대 패밀리 가운데 하나인 얍또파에 접근해 중간두목 세 사람을 동업자로 끌어들인 것이다.

 
최씨가 얍또파 하부 조직원들을 국내 조폭과 결합시킨 데 쓰인 자금 출처는 11월20일 국내에 있는 그의 대리인들이 환치기 수법으로 보낸 3백만 달러였다. 이같은 사실은 최병호씨와 현지에서 동업하는 한 관계자가 국내에 있는 수하 조직폭력배들을 인도네시아로 데려가려고 귀국했다가 주변에 말함으로써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얍또파 조직원들을 매수해 최병호씨가 인도네시아 투자자로 가장해 외국인 투자 형식으로 국내 주가 조작에 내세울 계획이다. 세금 문제도 있고, 국내에 있는 최병호 주변 사람들을 주가 조작에 내세우기에는 검찰에 너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최씨, 올해 주가 조작해 100억원 벌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허영삼으로 위장한 최병호씨의 행각이 인도네시아에서의 불법 행위에만 그치지 않고 국내 주식 시장에도 손길을 뻗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진행형인 최병호씨의 코스닥 시장 개입 수법은 대담하다. 최씨와 함께 주가 조작에 가담한 적이 있는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의 수법은 대략 이렇다. 최씨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은신처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한국 코스닥 시장에 매물로 나온 회사를 찾는 것이 일과이다. 주가를 조작하기 쉽고 성장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회사를 찾아내는 데는 최씨가 천재적 소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표적 회사를 물색하면 국내 주가 조작 1세대 기술자들에게 연락한다. 연락 방법은 도청을 피하기 위해 인터넷 전화를 주로 사용한다. 그런 다음 최씨는 사채업계에 있는 자기의 국내 대리인들을 통해 정보를 주고 회사 매수 자금 80%를 대도록 한다. 주식을 뻥튀기해서 팔아치운 후 생기는 수익금은 최병호씨가 50%를 챙기고 나머지 국내 대리인들이 참여한 비율만큼 배분한다고 한다. 초기 회사 매입 자금 중 나머지 20%는 최씨가 끌어들인 주가 조작 기술자에게 떼준다.

그러나 주가 조작 기술자는 자금이 없으므로 할당받은 회사 매입 자금을 사채 시장에서 끌어들인다. 자기들이 기술을 걸어 주가 조작을 주식이 천정부지로 치솟기까지는 보통 두세 달이 걸리므로 그 기간에 기술자들은 사채를 갚으라는 압박을 받게 마련이다. 결국 이들은 자기를 조작에 끌어들인 최병호씨측 대리인들에게 사정해 주식 담보 대출을 받는다. 이때 이자는 1주일에 10%에 이르는 고리채이다.

 
주가 조작이 성사되면 기술자 몫은 대개 약점이 없는 경우 약속대로 20%가 돌아가지만 기술자가 수배 중이라든지 형집행정지 상태라든지 약점이 있으면 최병호씨측에서는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잡아둔 주식을 통째로 처분해 가로챈다.

 최씨는 이런 수법을 통해 지난 6~8월 자카르타를 거점으로 코스닥 상장 회사인 ㅋ사와 ㅅ사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회사의 주가가 조작된 내막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최병호씨는 명동에서 사채업을 하고 있는 두 친친척과 역시 사채업자인 내연녀 김씨를 통해 증자 수법으로 두 회사 주가 조작을 진두지휘해 약 1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라고 말했다.

올해 두 회사의 주식 시세 변동과 대주주 변동, 제3자 배정 방식 증자 참여자 등을 조회한 결과 그의 제보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ㅋ사의 경우 최씨의 친족과 최씨를 은신시킨 내연녀 김 아무개씨의 동생, 오빠, 아들 명의로 7월 중순 약 50억원대의 증자가 이루어진 것으로 공시 서류를 통해 드러났다. 증자 이후 이 회사 주가가 2배가 넘게 뛰자 이들은 고점에서 주식을 처분한 뒤 썰물처럼 빠졌다.

“최씨, 세 차례 이상 한국 방문”

ㅅ사의 경우는 지난 여름 이들이 주당 3백원대에 매입한 주가가 보름 사이에 거의 10배에 가까운 2천9백원대까지 치솟았다가 이들이 매물을 대량 처분한 뒤 대폭락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주식 시세 조작을 제대로 감시하고 조사해야 할 금융감독원은 이 두 회사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두 회사에 변칙 시세 조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누가 개입했는지 계좌를 찾기가 어렵고, 인적 조사는 검찰만이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도피한 금융 사기범이 해외를 거점으로 자행하는 주가 조작을 방치하는 금감원의 태도가 주가 조작 범죄를 부추기고 개미 투자자들에게만 큰 피해를 떠안기고 있는 꼴이다.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사부의 한 관계자는 “최병호는 주가 조작으로 수배해두고 영장을 발부한 상태이지만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잡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력부의 다른 검사도 “우리도 최씨를 수배했는데 그가 들어오면 중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대검 역시 그를 수배했다. 취재를 마칠 무렵 기자는 놀랍게도 최씨가 도피 후 한국을 최소 세 차례이상 오갔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성용 주가조작 사건 검찰 수사가 이루어지던 2003년과 또 다른 공범으로 경인금고 대주주의 주가 조작 수사가 이루어지던 2004년, 그리고 국내 코스닥 기업에 대한 주가 조작을 지휘하던 지난 6월 중순 최씨가 다른 한국인 여권으로 서울을 다녀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 6월 최병호씨가 귀국해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병원에 입원 중이던 한 주가 조작 기술자를 사실상 납치해 해외로 데려갔다”라고 전했다. 이 기술자의 부인은 남편이 최씨 일행의 꾐에 빠져 해외로 나갔다가 살해되어 암매장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호소했다.

 최병호씨의 행적을 둘러싸고 터져나오는 이런 증언들은 그가 나라를 뒤흔들 특급 수배자라는 점에서 누군가 비호하고 있거나 최소한 방조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가 불법 밀입국해 인도네시아에 불법 체류하며 두 나라 법망을 유린하고 있다는 사실이 포착된 이상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최씨의 신병을 하루속히 인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