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할 수밖에 없었던 모정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5.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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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부도 결정에 숨은 가족 갈등 드라마

불같이 일어섰다 불처럼 스러지는 자본가의 몰락에는 늘 화재가 풍성하게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덕산그룹과 정애리시씨(71) 일가의 파산에 관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은, 바로 클라이맥스 부분의 극적인 구성 때문일 것이다.

 박성섭 덕산그룹 회장(47)의 원대한 꿈에 불길한 징조가 찾아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였다. 박회장은 한때 현금 동원 능력이 천억원대에 이르렀다는 정애리시전 조선대 이사장의 5남3녀 중 차남. 그는 90년 당시 정씨가 갖고 있던 한국고로시멘트를 물려받은 후 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해 계열사수를 26개까지 늘렸는데, 무등건설을 인수한 뒤 자금 결제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박회장은 이때만 해도 어머니의 자금력을 믿고 있었고, 정부가 지역의 특수성을 보아 그룹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정씨 일가는 ‘못날 둘째’의 확장 전략에 적극 제동을 걸고 나섰다. 특히 박회장의 형인 박성철 홍성산업 회장(50)과, 덕산그룹에 2천8백억원을 지급보증해 준 고려시멘트 사장이자 막내 동생인 박성현씨(36)가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때는 정씨 자신도 흔들리고 있었다. 박회장은 무등건설을 인수한 후 정씨로부터 3백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을 때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던 약속을 거듭 번복했다. 결국 정씨는 차남의 인감을 확보하고 막내로 하여금 덕산그룹 계열사의 재무 상태를 실사케 했다. 2월7일부터 10여 일에 걸친 실사 결과를 놓고 일가는 마지막 가족 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은 덕산그룹 계열사들을 부도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비정한 모정이었을까. 그러나 정씨 일가 사정에 밝힌 한 인사의 해석은 다르다. “실사 결과 도저히 사태를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실명제가 실시되어 정씨 자금 동원 능력은 이미 빛을 잃은 상태였다.”

 가족 회의에서는 또 그동안의 가족간 거래를 가능한 한 축소하고, 다른 형제들 재산으로 아직 흑자를 내고 있는 고려시멘트․홍성산업․한국고로시멘트 등에 대해서는 법정관리를 신청해 갱생할 길을 밟기로 결정했다. 광주․전남 지역에 덕산그룹 파산이 고의적 부도라고 알려진 것이 바로 이 결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여론은 정씨 일가의 마지막 재기 시도조차 무산시켰다. 지난 3월6일 언론사에 배포된 보도자료를 통해 정씨는 자신과 박성현 고려시멘트 사장의 모든 재산을 법정관리 신청을 한 3개 사에 귀속시키고, 일가가 모든 기업으로부터 손을 떼겠다고 밝혔다. 겉모양에 비해 알맹이가 신통치 않았던 덕산 신화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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