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버시바우 최후 노림수는?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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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연락사무소장 된 뒤 동북아 ‘정책 사령관’ 맡을 듯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에게서는 ‘북구’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러시아 대사를 오래했기 때문인지, 뭔가 수수께끼에 싸인 인물 같다. 그를 접한 서울 외교가의 평도 비슷하다. “웃거나 말하는 모습은 여성적이기조차 하다. 그러나 말의 내용은 외교관 치고는 살벌하다.” 한마디로 ‘살벌한 얘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사나이’인 것이다. ‘미국 재외 공관 중 가장 터프한 러시아 대사를 몇 년간 지낸 인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평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가 마치 드럼을 치듯 쏟아내는 대북 강경 발언이 서울 외교가를 뒤흔들고 있다. 12월7일 관훈클럽 토론에서 북한을 ‘범죄 정권’이라고 느닷없이 호칭한 데 이어, 12월12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미나에서는 미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라며 남북 경협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한술 더 떴다. 현직 대사로서는 위험 수위를 한참 넘어선 그의 발언들에 대해, 지난 12월14일에는 미국 국무부 당국자가 ‘미국의 정책을 반영한 것’이라고 두둔하고 나섰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 사이에는  그의 발언 퍼레이드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가 퍼져 있기도 하다. 워싱턴 정부와 교감하면서 어떤 목표를 향해 그가 행군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서울행에 얽힌 미스터리: 돌이켜 보면, 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스타일 문제는 그렇다치고, 미국 국무부가 자랑하는 화려한 경력의 거물 외교관이 어느 날 갑자기 서울로 날아온 배경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미국 대사관 홈페이지에 떠 있는 그의 프로필을 잠깐만 보아도 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19 77년 국무부에 들어가 옛 소련이 무너질 때 소련과장을 지냈고, 유럽 담당 대통령특별보좌관을 거쳐 1998~2001년 나토 대사, 그 이후 2005년 7월까지 러시아 대사를 역임했다. 직업 외교관으로서 그는 이미 커리어 미니스터급(CM), 즉 장관급이다.

워싱턴 정가 사정에 밝은 전문가로부터 그의 ‘서울행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통상적인 역할이었다면 구태여 그가 움직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힐 대사 이상의 임무를 띠고 온 인물이다”라고 그 전문가는 말문을 열었다.

“크리스토퍼 힐 이상의 임무를 띠고 온 인물”

그의 임무란 무엇일까. 현재 워싱턴 정가 깊은 곳에서 거론되는 그의 임무는, 바로 그가 앞으로 북한 및 동북아 외교에서 미국의 현장 사령탑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북한 정책과 관련해, 미국은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세우는 것을 당면 최대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 연락사무소를 앞으로 국무부가 아닌 버시바우 대사가 직할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는 자못 충격적이기조차 했다. 이와 관련해 이 전문가는 “이 것은 미국 정부의 대외비 사항이다”라고 강조했다.

평양 연락사무소는 앞으로 미국의 동북아 외교에 발판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이를 발판으로 미국은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일본을 조정할 수단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곧 서울의 주한 미국대사관이 주재국인 한국과 그리고 북한을 넘어, 중국 러시아까지 상대하는 동북아 외교의 현장 거점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당연히 버시바우 대사가 현지의 총사령관이다. 그는 처음에는 다른 보직을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한 대사가 앞으로 러시아 대사보다 훨씬 중요해질 것이라고 국무부측이 설득해 이를 수락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주한 미국 대사의 역할이 이토록 격상된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같은 변화는 2004년 11월16일 라이스 국무장관 체제가 등장한 이후 전반적으로 대외 정책을 조정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즉 대 유럽 정책을 수정한 데 이어 지난 2월께 동북아 정책이 크게 수정되면서, 이같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지난 2월게 윤곽이 드러난 라이스의 야심에 찬 신동북아 전략을 들여다보면, 우선 국무부의 대표적 협상가인 크리스토퍼 힐 주한대사를 6자 회담 수석대표 및 동아태 차관보로 전격 발령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로써 6자 회담 전략을 크게 수정해 적극적인 정책으로 바꾸어 갔다. 이와 함께 북한 정책의 당면 최대 과제로 연락사무소 진출을 설정하고, 앞으로 주한대사가 이를 겸할 뿐 아니라 그 위상을 크게 격상한다는 방침 역시 당시에 만들어졌다.
이런 방침에 따라 동북아 현안에 밝고 강대국 외교 경험이 있는 인물, 그중에서도 특히 러시아 대사를 지낸 인물 중에서 힐 대사의 후임을 물색하다가, 버시바우 대사를 선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라이스의 신동북아 전략은 왜 등장하게 되었나. 지난해부터 동북아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흐름, 그리고 이것이 몰고올 파장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중국이 북한에 접근한 데 따른 북·중 관계 강화와 이것이 몰고올 파장에 대해 라이스 장관을 비롯한 국무부 팀이 깊이 염려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크게 강화되고, 또한 러시아·한국·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 분명한 현실을 미국이 수수방관하다가는 외교적 고립을 면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힐 대사를 6자 회담에 투입해 국제 무대에서 이니셔티브를 강화해 나가면서 서울을 대북, 대동북아 접근의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현지화 전략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워싱턴에 위치한 국무부가 모든 것을 조정할 경우 발생할 수도 있는 중국과의 마찰, 또는 패권주의 시비를 불식하고 발 빠른 대응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위폐 사건 터뜨려 경수로 문제 상쇄

위폐 사건의 진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한 위폐 문제가 버시바우 대사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하나는 그가 지난 10월 중순 부임할 때 이미 위폐 문제에 대한 확증을 가지고 있었고, ‘대형 스피커’로서의 임무를 띠고 왔다는 지적이다. 반면에 원래는 약 1년 정도, 합리적인 전문 외교관 이미지를 구축한 뒤 서서히 영역을 확장해갈 계획이었는데, 위폐 문제로 인해 계획이 앞당겨졌다는 시각도 있다.

어쨌건 최근의 강경 발언을 앞으로 그가 행할 임무와의 관계를 놓고 조명해보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비록 ‘악역’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대북 강경 발언을 통해 앞으로 북한 이슈가 자신의 업무 영역에 포함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12월14일 미국 국무부 당국자가 그의 발언을 지지하고 나선 것을 업무 이양을 공식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최근 워싱턴에는 ‘업 앤드 다운 전략’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즉 현재는 악역 이미지로 목청을 돋우는 ‘업(UP)’ 단계이지만, 조만간 북·미 교섭을 통해 위폐 문제가 해결되는 ‘다운(DOWN)’ 국면이 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버시바우 대사의 위상과 역할이 자연스럽게 ‘업(UP)'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위폐 문제로 북한과 미국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현재의 국면이 어떤 식으로든 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얘기다. 우선 위폐 문제의 성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금융 당국이 북한산 슈퍼노트(초정밀 위폐)를 추적하기 시작한 때는 금년 초이다. 지난 7월 중순께 마카오에서 북한산으로 추정되는 슈퍼노트가 등장했고,  이 중 약 3만~4만 달러를 7월 말께 미국 금융 당국이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미국 금융 당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전세계 어떤 기계로도 구별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정밀했고, ‘위폐 100년사의 최고 걸작’으로 꼽을 만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화폐 문제는 미국 정부와 독립되어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담당한다. 달러에 대한 발권과 유통을 책임지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했다. 즉시, 기축 통화인 달러의 국제 유통을 위협하는 ‘범죄 행위’라고 규정하고 강력한 대책이 강구되었다. 그러나 6자 회담이 이미 시작되어, 자칫 판을 깬다는 비판을 받을 수가 있었고, 정보 소스를 은폐하는 데 약 3개월이 소요되는 등의 사정으로 인해 10월 말, 11월 초에야 이슈화할 수 있었다.

 
위폐 문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주관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 특히 국무부도 뭐라고 하기 어렵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난 9·19 공동성명 이래의 불리한 협상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특히 9·19 합의 당시 경수로 제공에 대해 억지 춘향으로 합의해 준 이래, 미국은 북한의 거듭되는 선 경수로 제공 주장에 크게 부담을 느껴 왔다. 따라서 때마침 등장한 위폐 사건은 경수로를 상쇄하기 위한 좋은 호재인 것이다. 이 점은 버시바우 대사가 위폐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경수로에 대해서도 회의적 언급을 빼놓지 않은 데서도 잘 드러난다.

위폐는 사실 관계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이 계속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에 힘이 실려 있다. 반면에 미국 역시, 중국의 대북 진출이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북·미 관계를 파탄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북한이 사실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선이면 타협이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은 범죄 행위를 하는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 교과서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위폐 문제를 연락사무소 개설로 끌고 가기 위해 언젠가는 짚고 갈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미래의 연락사무소 책임자’로서, 버시바우 대사가 이 문제를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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