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규칙 토종 건축가를 기림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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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서울 삼청동 구석에 ‘재즈 스토리’라는 술집이 있다. 언뜻 보면 포크레인이 삽시간에 달려들어 철거해버리기 직전의 폐가 같지만, 실은 고도로 계획된 건축물이다. 건축가 고 차운기(1955~2001)가 ‘신축이지만 더 오래된 것 같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리된 것 같은’ 컨셉트로 설계한 곳이다.

차운기가 누구냐고? 일반인 중에서 그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건축계 안에서도 그는 이단자였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의 ‘아류 건축물’ 하나쯤은 봤을 것이다. 시골 길을 가다가 도자기 모양이나 초가 모양, 하여간 독특한 건축물을 발견하거든 ‘차운기 아류구나’ 생각해도 된다. 그렇다고 찾아가서 설계자 이름을 확인한 뒤 ‘이게 차운기 작품이구나’ 믿어버려도 안 된다. 건축주 상당수가 너무 튀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원래 건물을 ‘개보수’해버렸기 때문이다. 튀는 예술가가 이 땅에 남겨놓은 희비극들이다.

‘무규칙 토종 건축가’ 차운기가 사후 4년 만에 재조명되었다. 후배 건축학도 이중용씨(31)에 의해서다. 이씨 또한 무규칙한 삶을 살았다. 대학 건축과와 대학원을 나와, 막노동꾼과 공장 노동자, 웹마스터, 잡지사 기자를 지냈다. 지금은 서울 대학로의 유명 건축사무실에 취직해 조신하게 본업을 ‘견디는’ 중이다. 그가 얼마 전 <차운기를 잊지 말자>는 제목의 책을 썼다. 책 제목이 마치 너무 ‘쿨’해진 동료 건축계 인사들을 향해 외치는 구호 같다. 그가 차운기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재즈스토리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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