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표정 관리 경찰은 아연 실색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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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청장 낙마로 검·경 수 사권 조정 ‘새 국면’ 맞아
 
지난해 12월28일 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있는 경찰청 앞은 통행이 되지 않았다. 경찰청으로 가는 길을 경찰이 완전히 봉쇄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불평을 토로하며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경찰청 앞 10차선 도로의 양옆은 경찰차가 점령했다. 경찰들은 “경찰청 앞에서 시민단체가 불법 집회를 하고 있으니 양해해 달라”며 시민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경찰청 앞을 지나던 민주노동당 차량은 중간에 제지당해 오던 길을 돌아가야 했다. 차량으로 만든 벽은 강고했고 거리에, 지하철역에 경찰이 넘쳤다.

경찰의 철벽 경비는 전날 “자진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허준영 경찰청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 오후 2시 ‘농업의 근본적 희생과 고 전용철·홍덕표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허준영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노상 농성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고한 벽이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다음 날 오전 허청장은 “통치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사퇴했다. 범대위 박석운 집행위원장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런 일이다”라고 말했다.

‘허준영’의 사퇴는 단지 한 경찰총수의 사퇴를 넘어 정치적으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막판 줄다리기가 치열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 그동안 청와대와 경찰 간에 형성됐던 긴장 관계 등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통치 후반에 들어가는 노무현 정권 입장에서는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 염두에 둔 새로운 경찰 구도를 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허청장의 퇴진 이후 경찰 조직은 충격에 휩싸여 있다. 특히 수사권 문제에 진력했던 경찰관들의 경우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허준영’이라는 인물이 워낙 상징화되었던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부에서 60년 경찰사에서 강한 쪽에 대해 경찰의 목소리를 제대로 낸 유일한 청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찰대 출신 한 총경은 “단지 수사권과 관련해서만이 아니다. 허준영 청장은 경찰관들이 자신과 동일시했던 상징적 인물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허청장이 적나라하게 대신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찰관들에게 자부심과 명예를 느끼게 했다. 충격과 상실감에서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허청장 사퇴한 직접적인 원인은 농민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전용철·홍덕표 두 농민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했던 전씨는 9일 뒤인 11월24일, 홍씨는 12월18일 사망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농민 두 명이 사망한 일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11월29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해 이루어진 조사에서 인권위는 “경찰의 방패에 뒷목 등을 가격당해 목뼈 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경찰의 진압과 두 농민의 사망이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결론냈다. 당시 인권위는 “허준영 청장의 사퇴와 관련된 문제는 정치적인 책임과 관련된 사항이다”라며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차장을 경고 조처하고 서울청 기동단장을 징계하라고 권고하는 데 그친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경찰의 최대 관심사는 ‘허준영 청장까지 불똥이 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일 인권위에는 경찰들이 현장에 나와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경찰의 노력이 영향력을 발휘한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인권위 결론에서 허청장에 대한 부분은 빠졌다. 인권위 발표 다음날 허청장은 발빠르게 “인권위의 조사 결과를 존중한다”라며 서울청장 등에 대한 징계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다른 한편으론 농민단체를 대상으로 두 농민에 대한 장례식을 치를 것을 설득했다.

서울청장이 사퇴하는 선에서 책임론을 매듭짓고 농민들의 장례식이 치러지면 사태가 수습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했던 것이다. 진작부터 경찰 내부에서는 경무관급 고위 간부 일부가 “서울청장이 책임을 지는 선에서 사태를 매듭지어야 한다”라며 ‘서울청장 희생양설’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온 터였다.

그러나 둘 다 어긋났다. 허청장의 “사퇴하지 않겠다”라는 버티기 기자회견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시민단체들은 물론 언론, 정치권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장례식 설득 작업’도 실패했다. 그러자 강고하게 단결했던 경찰 내부에서도 “조직이 더 망가지기 전에 청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허청장이 막판까지 버티려고 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의 말대로 경찰청장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시각, 임기제 본질에 반한다는 것, 불법 폭력 시위가 근본 원인이라는 판단, 향후 시위 진압 업무를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요구 등등이었다. 그러나 경찰 전체를 관통했던 것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중요한 국면에 있는 상황에서 그가 물러나면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허청장의 낙마를)바라고 있거나 추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조직 전체에)깔려 있었다”라고 말했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지 못하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이른바 뚝심만을 내세우다 사태가 더 악화되었다”라고 분석했다. 허청장에 대한 내부 충성파들이 조직을 위해서 사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수록 외부에서 허청장과 경찰을 보는 시각은 더욱 비판적이 되면서 경찰 전체의 입지가 좁아지는 쪽으로 몰렸다는 것이다.

경찰대 출신 한 중간간부는 “시민단체들의 농성보다 여당의 비판적인 움직임이 허청장의 사퇴에 더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라고 말했다. 예산안 처리까지 연계한 민주노동당의 공세와 우리당 행자위원들이 사퇴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것이 결국 허청장이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인권영화제에 참석하는 등 역대 어느 경찰청장보다 ‘인권경찰’을 강조했던 그의 마지막은 그에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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