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큰길’로 방향 틀었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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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대형차 판매로 수출 전략 변경…야심작 아제라 ‘선발 출전’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가 ‘변태(變態)’를 꿈꾸고 있다. 애벌레가 극심한 형태 변화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처럼 현대차는 한때 ‘바퀴 달린 깡통’을 만드는 회사라는 오명을 벗어 던지고 프리미엄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고급차 전략을 본격 가동한 것이다.

고급차 전략의 핵심은 주력 판매 차량의 대형화와 고급화다. 현대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이나 다름없는 미국에서 파는 주력 차종은 소형차 액센트와 준중형차 엘란트라(아반떼)였다. 하지만 수년 동안 점차 중형차 쏘나타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투싼·싼타페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판매 차량 가운데 쏘나타가 13만 대 넘게 팔려 엘란트라(11만6천 대)를 처음으로 제쳤다. 쏘나타는 지난해 10월 미국 중형차 시장 점유율이 5.7%를 기록할 정도로 판매 돌풍을 일으켰다. 토요타 캄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해 말 ‘고급차 전략’의 첫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프로젝트명은 아제라(Azera). 그랜저TG의 수출용 차량인 이 대형 세단은 현대차가 지금까지 미국 시장에 출시한 차량 가운데 가장 비싼 차종으로 도요타 아발론·닛산 맥시마·포드500과 경쟁을 벌인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아제라 가격은 2만5천~3만 달러로 책정되어 경쟁 차종보다 1천5백~4천 달러 싸지만 제원으로 보면 경쟁 차종을 압도한다. 아제라의 심장은 람다라고 불리는 3.8리터 6기통 알루미늄 엔진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속도를 높이는 데 7초도 걸리지 않는다. 실내는 최고급 차종인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BMW 7시리즈·도요타 아발론보다 넓다.

최고급 세단 후속 모델도 대기

안전성을 높인 첨단 설비와 함께 갖가지 편의 장치가 추가되어 있다. 에어백 8개가 탑재되었고 전자안정제어(ESC) 장치와 마찰제어시스템(TCS)을 구비해 빙판길이나 급커브 길에서 차가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가 하면 비 감지 와이퍼·컴팩트디스크(CD) 6장을 선택해 틀 수 있는 CD 체인저·후진 시 자동으로 올라가는 차양막을 갖추고 있다.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은 “그랜저(아제라)는 BMW 5시리즈나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대등한 수준의 고급 세단을 목표로 개발했다”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올해 미국 시장에서 아제라 4만 대, 내년에는 10만 대까지 판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제라 이전 모델 XG3.5가 기껏해야 한 해 1만8천 대밖에 팔리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4만 대 판매 목표는 달성하기 쉽지 않다. 목표에 못 미치더라도 아제라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현대차의 수익성은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학주 삼성증권 자동차 담당 분석가는 “그랜저가 쏘나타에 비해 4%가량 현대차 공헌 이익률이 높다. 현대차 전체 차종 가운데 그랜저 판매를 1% 늘리면 현대차 영업이익률이 0.28% 포인트 개선된다. 그랜저 판매가 1% 늘어나면 분기당 2백억원가량 이익이 늘어나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고유가 지속되면 목표 달성 차질 빚을 수도

아제라가 제 궤도에 올라 가속도가 붙을 즈음 현대차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프로젝트 암호명 BH로 일컫는 최고급 세단 개발 계획이다. 지금 한창 개발하고 있는 이 차종은 2007년 전세계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BMW 5시리즈·도요타 렉서스·혼다 아큐라와 경쟁할 이 차종에는 4.6리터 엔진이 장착된다.

하지만 과연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소비자가 현대차의 프리미엄 세단을 선택할까? 최고급차 소비자는 단지 성능이나 편의 사양만 보고 구입을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품질 못지않게 브랜드 이미지를 중요한 소비 기준으로 삼는 부유층의 특성을 감안하면 현대차 브랜드를 선택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만만치 않다. 또 유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와중에 연료 소비량이 많은 대형차 위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급차 전략의 첫 번째 야심작 아제라는 푸른색을 뜻하는 어주어(azure)와 시대를 의미하는 이어러(era)의 합성어다. 현대차 로고 색인 ‘푸른색의 시대를 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아제라에는 수익성이 작은 소형차에만 몰두해서는 세계 5대 자동차 제조업체로 떠오를 수 없다는 현대차 수뇌부의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축적한 기술력과 품질 향상으로 얻은 자신감이 응축되어 탄생한 것이 아제라인 셈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아제라의 성공 여부에 반신반의하지만 아제라가 현대차 고급차 전략의 성패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은 틀림없다. 현대차가 도요타나 혼다에 버금가는 자동차 업체로 탈바꿈할지, 아니면 번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을지 결정권을 아제라가 쥐고 있는 것이다. 올해 미국 시장에 본격 발진한 아제라의 시장 반응에 국내외 자동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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