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괴물이고 선생님은 악마였다”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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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교육에 적응 못하는 아이, ‘홈스쿨링’이 보약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두사부일체> <여고괴담> <비트>…. 한국 영화가 그리는 학교는 결코 즐거운 공간이 아니다. 폭력이 횡행하고 애국조회 같은 권위적인 제도와 재미없는 수업이 학생들의 숨통을 죄는 곳이다. 이런 영화들이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만을 과장해 부각한 측면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는 학교 가기가 정말 죽기보다 싫더라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으나 앞으로는 많이 달라지게 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부터 대안 학교를 정식 학교로 인정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집에서 공부하는 홈스쿨링(home schooling)의 학력을 인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 해에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튕겨나가는 학생은 5만~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홈스쿨링에 관심은 있으되 아직은 생소해 시도할 엄두를 못 내는 학부모들이 많은데 그런 이들에게 심은희씨는 좋은 스승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째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이종건군(16)의 어머니인 심씨는 ‘세상을 학교 삼는 아이들의 부모 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심은희씨와 이종건군은 최근 공동으로 <학교 탈출! 이제는 선택이다!>(늘푸른소나무)라는 책을 펴냈다.

  종건군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10년 전만 해도 심은희씨 집은 서울의 보통 가정과 다름 없었다. 심씨 부부는 모두 학창 시절 학교를 하루라도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열심히 공부한 모범생이었다. 더구나 심씨는 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했다(심씨는 지금도 서울 ㅅ고등학교 교사이다). 당연히 홈스쿨링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초등학교 때는 그저 열심히 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입학하기 전에 종건이에게 어떤 선행학습도 시키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종건이가 입학한 지 한 달쯤 지난 뒤에 심씨는 담임 교사로부터 호출을 당했다. 담임 교사 얘기로는 “종건이가 학교 생활에 전혀 흡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준비물도 챙겨오지 않고, 과제물도 해오지 않으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깜짝 놀란 심씨는 아이를 붙들고 학교 생활에 대해 묻다가 ‘까무러칠 만한’ 얘기를 들었다. 종건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이랬다. “학교는 거대한 괴물이야. 선생님은 변신한 악마야. 폭파시켜 버리고 싶어.”

교사가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까닭

 
   이어서 종건이가 쏟아낸 얘기는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논리 정연했다. “그림 그리라고 해서 한창 그리고 있으면 금방 종 쳤다고 그리지 말래. 종 치면 절대 하지 말래. 모든 게 선생님 마음대로야.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화장실도 시간 정해놓고 가는 거야.”

  이때부터 심씨는 종건이가 다니는 학교의  운영위원회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열성 학부모가 되었다. 학교나 선생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종건이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학교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심씨는 곧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서울의 큰 학교가 차질 없이 잘 돌아가려면 아이들 개개인의 사정을 봐주는 교육을 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때부터 심씨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담임 선생님을 설득해 종건이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학교를 쉬게 했다. 아이가 학교를 쉬는 날에는 아버지가 시간을 내서 함께 등산을 하거나 인근의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순례했으며, 그도 여의치 않으면 그저 집안에서 뒹굴며 게으름을 부리도록 했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종건이가 4학년 되던 해에 심씨 부부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으로 이사를 단행했다.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하면서도 되도록 외진 산골로 들어간 것이다. 종건이에게 작은 학교와 자연을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심씨 부부는 나중에 서종면의 학교도 성이 안 차 거기서 걸어서 20리나 더 들어가야 하는 폐교 직전의 분교로 다시 종건이를 전학시켰다. 종건이는 그곳에서 여름다운 여름, 겨울다운 겨울을 나면서 더욱 활력이 넘쳤다. 분교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종건이는 본인의 뜻에 따라 중학교에 가지 않았다.

   본인이 고등학교 선생이면서 제도권 교육을 부인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심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아이들에게 학교는 여전히 좋은 공간이다. 하지만 학교가 고통스러운 아이들도 있다. 부모가 그런 아이들 편이 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고통은 배가된다.”

세상과 넓게 소통하며 ‘큰 교육’ 받아

  많은 사람들이 홈스쿨링은 특별히 머리가 뛰어나거나, 부모가 부자여야만 가능하리라고 믿지만 그것은 오해라고 심씨는 말한다. 종건군은 초등학교 다닐 때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고, 종건군의 부모 역시 평범한 맞벌이 부부로 세간에서 얘기하는 부자와는 거리가 멀다. 심씨는 홈스쿨링에 드는 비용이 학교와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결코 많지 않다고 말한다.

 
  종건이는 학교에서 배우는 커리큘럼과는 전혀 다른 공부를 한다. 특히 ‘사회자원’을 잘 활용하는 편이다. ‘역사와 산’ 같은 산악회에 들어가 한국의 크고 작은 산을 두루 섭렵했으며 현재는 백두대간 종주 중이다. 처음에는 산행에 데려가기를 꺼리던 회원들이 요즘에는 종건이를 산악회 마스코트처럼 귀여워한다. ‘녹색연합’ 회원이기도 하며,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등에서 마련한 교육에 적극 참여한다. 청소년의 국제 교류를 지원하는 공적 프로그램에 응모해 러시아와 일본, 중국 등지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이런 공짜 연수에 응모할 엄두를 잘 내지 못한다. 점수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공부하니 영어나 일어 실력이 쑥쑥 늘어난다. 덕분에 고입 검정 고시도 얼마 전 가볍게 통과했다.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적은 게 아쉬운 점인데 2004년부터 3학기째 홈스쿨러들의 공동학습을 진행하며 또래들과 유대를 맺고 있다. 종건군을 비롯한 10명의 수도권 지역 홈스쿨러들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창조적 스토리텔링’ ‘생활 속의 철학’ ‘연극놀이’ 같은 수업을 함께 즐긴다.  이런 과목들은 대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호응이 높다고 검증이 된 것들이다.

   심은희씨는 종건이의 장래와 관련해 “앞으로 대학 가는 공부를 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갈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뜻에 달렸다”라고 말한다. 종건이는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묻자 “‘내가 태어나기 이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이라는 에머슨의 시구를 가슴에 안고 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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