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백서’는 정말 웃겨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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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현대생활 백서’ 인기…처절한 궁상, 황당한 요구로 승화

 
청년 백수 고씨. 무허가 주택을 팔고 이사를 가기 위해 ‘일구 부동산’에 전화를 건다.
고씨가 일구씨의 나이를 확인하고 나서 대뜸 반말이다. “저기… 일구야. 아파트 가장 작은 평수는 몇 평이니? 경비실은 안 되겠니?” 황당해 하는 부동산 중개업자 일구씨에게 그는 계속 졸라댄다. “일구야, 형이 하는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아파트 지하 보일러실이라도 안 되겠니?” 마무리는 더 압권이다. “일구야, 너 두꺼비 집 노래 아니? 형 집 줄게 네 집 다오.”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현대생활백수’의 한 장면이다. 청년 백수 고씨가 시청자들을 웃기는 방식은 백수 생활의 처절한 궁상을 황당한 요구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유행어가 코미디 프로의 인기를 반영한다고 보면 ‘현대생활백수’는 이미 인기 가도에 들어섰다. 고씨가 일구씨에게 억지를 부릴 때 쓰는 “안 되겠니?”라는 말은 그 능청스러움 때문인지 사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다. 팬 카페나 <개그콘서트> 홈페이지에서도 “일구야 형이 성격이 급하잖니. ‘등업’ 좀 빨리 해주면 안 되겠니?”라는 식으로 이들의 유행어를 패러디한다.

‘현대생활백수’의 인기는 청년 실업난 시대를 반영한다. 청년 백수 고씨는 하루 2천원인 비디오 테이프 대여료를 깎기 위해 “2시간만 보고 2백원에 안 되겠니? 3배속으로 보면 50원이면 되겠네?”라고 묻는다. 실제로 백수 역할을 하는 고혜성씨는 기나긴 백수 생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했는데, 일이 없을 때도 많았다. 친구에게 ‘밥 좀 사 먹게 3천원만 부쳐달라’는 부탁을 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고씨에게 늘 당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강일구씨는 “청년 실업자들이 ‘현대생활백수’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일반 시청자들도 청년 백수 고씨가 밉상이지만 워낙 약자라서 용서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고씨와 강씨가 받는 압박 수치는 올라간다. 이때는 누리꾼들이 프로그램 게시판과 팬클럽 게시판에 올려주는 백수 백서가 효자가 된다. 백수 역할을 맡고 있는 고혜성씨는 “게시판 아이디어 속에도 응용 가능한 소재가 많다.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시청자들도 ‘현대생활백수’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강일구씨는 “고씨처럼 고집을 부려서 값을 깎았다는 글이 게시판에 자주 올라온다. 우리 백서가 도움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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