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거짓말 그리고 엽기
  • 김형석 (월간 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01.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네마키워드] 자매:<당신이 그녀라면> <스위티> <팻 걸> 등

 
영화 속에서 만나는 자매의 이야기는 형제의 이야기와 조금은 다르다. 형과 아우의 드라마가 혈연적 유대·의리·갈등과 슬픈 가족사를 주로 담고 있다면, 언니와 동생의 스토리는 각종 장르 영화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들은 서로 여성으로서의 존재를 확인하며 하나가 되고(가족 드라마), 가끔은 질투하고(로맨틱 코미디), 때때로 음흉하다(스릴러). 재미있는 건, 그들에게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최소한 영화에서만큼은 더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각양각색의 형제들보다는 자매들의 톡톡 튀는 개성들을 보는 재미가, 사실 더하긴 하다.

<당신이 그녀라면>은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진 두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다. 평범한 외모의 내성적인 변호사 로즈에겐 섹시하고 천방지축인 동생 매기가 있다. 매일 동생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는 게 로즈에게 고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사이가 좋았다.

그런 자매의 우애에 결정적으로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매기가 그만 언니의 남자를 가로채버린 것! 언니 집에 얹혀 살던 매기는 급기야 쫓겨난다.

좌파 감독이 그린 ‘뼈저린 현실’ 속의 자매

<당신이 그녀라면> 정도면 ‘대조적 자매’의 귀여운 축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제인 캠피언의 <스위티>나 카트린 브레야의 <팻 걸>에 이르면, 그 만만찮은 엽기 코드에 혹시나 몸서리쳐질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편애하던 언니 스위티와 외로운 몽상가인 동생 케이. 가족이나 로맨스 등의 ‘진부한’ 주제 의식을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그린 <스위티>의 자매는, 한쪽이 없어져야 남은 한쪽이 행복한 ‘공존 불가능’의 자매다. 

<팻 걸>의 예쁜이 엘레나와 못난이 아나이스는 한 핏줄이라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너무나 다른 자매. 그들의 유일한 합의점은 ‘첫경험에서 오르가슴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었고, 대담한 언니 엘레나가 방에 남자를 끌어들여 일을 벌이자, 아나이스는 자는 척하며 그 광경을 엿본다. 서서히 공포 영화처럼 변해가는 이 영화는, 감독의 이전 작품 <로망스>만큼이나 크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작은 아씨들> 같은 고전 문학 또한 ‘자매’라는 키워드로 곧잘 영화화한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은 대표적인 자매 영화. 이 영화들은 네다섯 명을 주인공으로 자매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 <작은 아씨들>은 가난한 시기를 헤쳐 나가는 네 자매의 이야기이며, <오만과 편견>은 다섯 자매 중 과년한 두 자매 제인과 엘리자베스의 결혼관과 애정관을 비교한다. 

역시 오스틴 원작의 <센스, 센서빌리티>는 세 자매 이야기. 첫째 마리엘은 차분하고 둘째 메리앤은 감정적이고 셋째 마거릿은 활발하다. 이러한 구도는 할리우드 방식으로 각색되기도 한다. <지금은 통화중>의 큰언니 조지아는 성취욕 강하며 이기적인 여성이고, 막내 매디는 큰언니에 대해 콤플렉스를 지닌 좌충우돌 스타일이고, 중간에 낀 이브는 둘 사이의 중재자인 사랑스런 여인이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둘러싼 세 자매의 모습들이 홈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요즈음 한국 영화에서 자매의 자취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라고 한다면 <장화, 홍련> 정도? 고전을 영화화했다고는 하지만 제목만 따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대폭 각색한 이 영화에서 언니 수미는 동생 수연을 보호하려 하는데, 과연 수미에게 동생은 어떤 존재인지 모호하다(수미에게 동생은 있었던 걸까?). 

이처럼 자매의 드라마에 판타지가 개입되는 또 한 편의 영화라면 <프랙티컬 매직>이 있다. 샐리와 질리언은 마법사 혈통을 타고난 자매. 역시나 언니는 책임감 강하고 동생은 곧잘 사고를 저지르는 캐릭터다.

한편 <최종분석>은 자매를 스릴러 장르에 가두는데, 언니 헤더는 술을 약간만 마셔도 정신 이상 증세를 나타내고 동생 다이애나는 심리 불안에 시달린다. 비슷한 자매 아니냐고? 하지만 그들도 <스위티>의 그 자매들처럼, 누군가 한 명이 죽어야 했다.

지금까지의 영화들이 영화적 장치를 위해 자매의 캐릭터를 조율하고 그 사이에 긴장을 만들어내어 쾌감을 선사했다면, 지구상에 몇 명 남지 않은 좌파 영화감독 중 한 명인 켄 로치의 <빵과 장미>는 어느 자매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아슬아슬하게 국경을 넘어 로스앤젤레스에 숨어든 멕시코인 마야. 먼저 정착한 언니 로사와 함께 빌딩 청소부로 일한다. 현실을 각성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든다는 교훈적인(?) 내용의 이 영화는 말한다. 자매, 그녀들의 이야기는 뼈저린 현실로부터 시작한다고.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