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왜 ‘박심’ 외면하고 변화를 선택했나
  • 고제규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6.01.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인 독식·사학법 장외투쟁에 대한 거부감 드러나
 
“재석 의원 1백27명. 투표자 1백23명. 김무성-고흥길 후보 조 50표. 이재오-이방호 후보 조 72표. 무효 1표”. 지난 1월12일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이 열린 국회 본청 246호실. 최병국 당선거관리위원장이 개표 결과를 발표하자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박수 소리도 ‘한 박자 늦게’ 터져나왔다. 박근혜 대표는 무표정했다.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참석률만 보아도 알 수 있다(2005년 3월 강재섭 전 대표가 당선했을 때는 소속 의원 1백20명 가운데 1백1명이 투표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표 차도 예상보다 컸다. 선거 초반에 대표적 ‘친박(親朴) 인사’로 분류되는 김무성 대세론이 우세했던 데다가, 이방호 정책위 의장 후보가 당내 보수파인 ‘자유포럼’ 멤버여서 이재오 후보를 지지하는 소장파들과는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보좌관들 사이에 ‘김의원측은 14표 차로 이길 것으로, 이의원측은 3~4표 차이로 승리할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다닐 정도로 박빙 승부가 예상되었다.

이번 선거는 우선 사학법 장외투쟁을 둘러싼 당내 지형도가 변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김무성 후보는 당분간 국회에서 처리할 시급한 현안이 없기 때문에 의원총회에서 결정한 대로 계속 사학법 장외투쟁을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노선’을 확실히 한 것이다. 반면 이재오 후보는 당 안에 사학법 재개정 소위원회를 구성해 개정안을 만들고, 협상과 투쟁을 함께 하는 강·온 전략을 구사하자고 주장했다. 병행 투쟁론이다. 결국 의원들은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사학법 노선에 대한 ‘변화’를 선택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박대표 체제에 대해 견제구를 날린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당사자들은 부인했지만 이번 경선은 ‘박근혜 대 이명박’의 대리전으로 비쳐졌다. 김후보가 박대표 체제에서 최근까지 사무총장을 했고, 이명박 시장과 가까운 이재오 후보는 박대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각을 세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재오 후보를 지지하는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와 당내 소장파들만으로는 72표를 모으지 못한다. 중간지대 의원들이 일인 독식 체제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의총장에서 ‘좌우 합작’이라는 반농담 반진담이 나올 정도로 ‘이-이’ 조합은 이변에 속했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 이재오 후보는 러닝메이트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재오측 한 관계자는 “이후보가 수도권이 지역구이기 때문에 영남 쪽 의원들 중에서 러닝메이트를 구하려고 했는데, 몇몇 의원들이 승낙해놓고 나중에 거부했다. 주류측에서 침을 발랐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재오 후보가 이방호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것이 승인으로 작용했다는 평이다. 영남 지역구인 데다 친박 성향인 이방호 의원(경남 사천)을 합류시키면서 일부 친박파의 표까지 끌어왔다는 것이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 결과가 박대표측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박대표와 가까운 한 관계자는 “상당히 뜻밖이다”라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권 후보인 이명박계가 박대표계에게 이겼다거나 ‘친박(親朴) 대 반박(反朴)’ 대결에서 반박이 승리했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장외투쟁에 대한 의원들의 반발심이 (이재오 표로) 뭉쳤다”는 평가에는 동의했다. 그렇다면 장외투쟁을 강하게 이끌어온 박대표가 리더십에 손상을 입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리더십 손상된 박근혜 대표의 선택은?

더욱이 같은 날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 조사 결과도 박대표측에게는 뼈아프다. 전국 성인 남녀 7백명을 상대로 한 여론 조사(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는 ±3.7%)에서 한나라당이 국회에 등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82%에 달했다. 박대표의 직무 수행 지지도도 지난해 11월 말 조사(65.0% 긍정평가)와 비교해 13% 포인트나 하락했다.

한나라당의 사학법 투쟁 방식이 어떻게 변할지도 관심거리이다. 이재오 신임 원내대표가 당장은 장외투쟁에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박근혜 대표측도 “외형상 오월동주 같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싸우면 자멸할 것을 이대표도 알기 때문에 분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경선 과정에서 의원들의 속내가 드러났기 때문에 강경 드라이브로만 일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대표 측에서도 ‘협상’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박근혜-이재오 투톱 체제에서 사학법 투쟁 방식의 변화를 엿보게 하는 징후로 읽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