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친인척 “역 차별 받고 있다”
  • 소종섭 기자 · 주진우 기자 (kumkang@sisapress.com,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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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이 관리하는 대통령 친인척은 9백명에 달한다. 이들 중 일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외로 나가거나, CEO 자리 등을 포기해야만 했다. 대통령 친인척들의 현주소를
 
최근 정보통 사이에서는 역술인 백운산씨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2003년부터 한국역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백씨는 몇 년 전 탤런트 강문영씨의 모친인 권 아무개씨와 결혼해 화제가 되었는데, 권씨가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친척 관계인 점이 이런 소문이 확산되는 배경이 되었다. 노대통령의 딸과 아들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해 주목되었던 강씨는 당시 “권여사와 먼 친척 관계이다”라고 참석 이유를 설명했다.

백씨는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를 과시한 적이 없다. 아내는 성이 권씨일 뿐, 권여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어떤 기자도 그와 관련해 전화를 걸어왔던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노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사실을 기록해 놓은 것과 관련해서는 “나만 감사장을 받은 것이 아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역술인협회 주요 임원 35명이 모두 받았다”라고 말했다.

백씨의 사례가 주목된 것은 역대 정권이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항상 친인척 때문에 곤욕을 치르곤 했기 때문이다. 김현철·김홍업 사건은 김영삼·김대중 정권의 기반을 크게 흔들어 정권의 레임덕을 가속시킨 대형 악재였다. 역대 정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노무현 정권은 초기에 대형 친인척 사건들이 터졌다는 점이다.

노대통령 조카 ‘노지원씨 사건’의 진상

2003년과 2004년 초 <시사저널>을 통해 터져 나온 노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의 ‘국세청장 인사 청탁 사건’과 건평씨 처남 민경찬씨가 거액의 펀드를 모았다는 ‘민경찬 펀드’ 사건이 그것이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당시 “정권 초창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처하겠다”라고 공언했다.

2003년 10월에 있었던 ‘노지원 사건’은 외부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친인척 문제를 바라보는 대통령과 현 정권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노건평 사건’과 ‘민경찬 사건’이 언론을 통해 제기된 것과 달리 이 사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첩보를 입수해 해결했다.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노대통령의 큰 형 영현씨의 세 아들 가운데 둘째인 노지원씨가 방송 및 통신 기기 등을 제조·판매하는 벤처기업 ㅇ사로부터 최고경영자(CEO) 자리와 함께 거액의 스톡옵션을 제안받았다는 것이 첩보 내용이었다. 노대통령이 정권을 잡기 전 KT 부산지사에 근무하던 그는 노무현 정권이 등장한 뒤 서울로 올라와 근무하다가 사표를 냈다. 당시 민정수석실은 지원씨에게 주식과 CEO 자리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든지, 둘 다 받고 검찰 조사를 받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지원씨는 이에 반발했다.

 
민정수석실은 공을 대통령에게 넘겼다.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으로 일했던 이 진씨가 쓴 책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에는 이 사건을 노대통령이 어떻게 대했는지 나와 있다. “민정수석실 보고서를 본 노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니, 당장 그만둬라!’ 대통령은 30분간 조카에게 호통을 쳤다. 그런 뒤 민정수석실에 지시를 내렸다. ‘조카를 영입한 회사 사장을 만나 제안을 철회하도록 하고, 안 된다고 하면 앞으로 특혜 관련 조사를 계속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사전에 보도 자료를 내서 미리 그런 일이 있었다고 밝혀버리십시오.”

결국 지원씨는 CEO 자리와 주식을 둘 다 포기했다. 현재 ㅇ사에 등기이사로 근무하는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동 대표로 제안을 받았던 것은 맞지만 내가 거절했다. 스톡옵션은 다른 이사들과 함께 주주총회를 통해 정식으로 받은 것이다. 당시 내가 펄쩍 뛰었던 것은 사실이다. 역차별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혜 같은 것은 없다. 친구 다 잃고 두문불출하고 있다. 어렸을 때 노대통령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눈빛만 보아도 안다. 대통령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노대통령의 친인척 가운데 최근 주목받은 인물은 권양숙 여사의 동생이자 노대통령의 처남인 권기문씨다. 우리은행 부산 범천동 지점장으로 근무했던 권씨는 노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우리은행 로스앤젤레스 지점 조사역으로 발령나 미국으로 갔다. 당시 금융권에는 우리은행측이 고민 끝에 권씨를 해외로 내보냈다는 말이 나돌았다. 권씨는 미국에서 은행 업무를 보지 않고 대학에서 연구를 하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는 지난해 가을 귀국해 기업고객본부 조사역으로 있다가 12월 말 주택금융사업단 부장으로 발령받고 우리은행 본사에 근무하고 있다. 권씨는 “주택 자금 융자를 담당하고 있다. 기자를 만나서 할 이야기가 없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쌍용자동차 노경현 상무보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해군사관학교·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5년 2월 부장에서 상무보로 진급했다. 정부와 공공기관 등을 상대로 한 특판 업무와 출고사무소를 맡고 있다. 그는 기획 업무에 종사한 적도 있지만 영업 전문가로 통한다. 한때 쌍용차 홍보 담당 임원이 된다는 말이 자동차 업계에 퍼지기도 했다.

각종 선거 때 노대통령을 도와 가까운 친척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관계는 파악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노상무보는 “노대통령과 고향이 같다. 가까운 친척은 아니다. 오해하는 분도 있고 해서 힘들다. 선거 때 노대통령을 도운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권 초기 된서리를 맞았던 노대통령의 형 건평씨는 조용하게 지낸다. 부인 민미영씨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감농사도 그대로 하고 깨랑 이런 저런 작물을 밭에 심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건평씨는 장남 상욱씨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첫 부인 오명례씨와의 사이에 지연·상욱 남매를 두었는데 지연씨는 한국과학기술원을 졸업한 남편 연 아무개씨와 함께 서울 역삼동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정보 서비스를 하는 벤처회사 ㄱ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에는 상욱씨도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노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현재 LG전자 재경 부문 업무혁신팀 대리로 일하고 있다. LG측에서는 건호씨가 입사한 초기에 외국으로 그를 발령 내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실행하지는 않았다. LG 한 관계자는 그가 직원들과 잘 어울리고 업무 능력도 뛰어난 편이라고 전했다.

대통령 아들, 친화력·업무력 뛰어나

이 관계자는 건호씨가 특별한 혜택을 받는 것은 없고 LG인화원에서 시행하는 직원 대상 영어교육을 빨리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보아준 적은 있다고 말했다. 건호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 얘기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죄송하지만 업무가 많아 전화를 끊겠다”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건호씨 장인 배병렬씨는 농협이 60% 지분을 갖고 있는 농협CA투신운용의 감사로 있다. 배씨는 지난해 김해 보궐선거 때 열린우리당 후보를 지원하는 선거 운동을 해 구설에 올랐었다. 그런 탓인지 그는 기자들과의 접촉을 일절 피하며 업무에 전념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2003년 2월 노대통령의 딸 정연씨와 결혼한 곽상언씨는 정연씨와 함께 2004년 미국으로 갔다. 사법연수원을 33기로 졸업한 그는 법무법인 화우에 취직했다. 화우 관계자는 “곽변호사는 미국 뉴욕 대학에서 연수 중이다.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따거나 어학 연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보통 변호사들의 해외 연수는 2년인데 곽변호사는 그 이상 해외에 머물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5년 이상 근무해야 법무법인에서 지원금이 나가기 때문에 곽변호사는 개인 돈으로 해외 연수를 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둘째 누나 영옥씨의 첫째 딸인 전순실씨와 결혼한 정재성 변호사는 법무법인 ‘부산’ 대표 변호사로 부산을 지키고 있다. 그는 민주당 부산 지역 선거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노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서울대 조 국 교수 등과 함께 지난해 4월에는 법무부 감찰위원회(위원장 김상근 목사)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일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낸 소송을 진행하면서 부산·경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관리하는 대통령 친인척은 9백명에 달한다. 친족 8촌, 처·외족 6촌에 사돈과 종친회를 합한 숫자다. 노대통령과 가까운 한 친척이 “할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 모이는 남자가 8명이었는데 정권이 바뀐 뒤 얼굴도 모르는 친척들이 많이 늘어났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들 대부분은 대통령도 얼굴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민정수석실은 실제로 가까운 친인척이면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친인척, 실제로 가깝지는 않은데 가까운 것처럼 과장해서 물의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친인척 따위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한 일간지 기자는 “과거와 달리 친인척들이 기존 정치권과 별 인연이 없고, 정권 초기에 친인척 문제가 불거져 예방주사를 맞았으며, 과거 정권에서 교훈을 얻어 엄격하게 친인척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친인척 문제와 관련한 현 정권의 특징이다”라고 분석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친인척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 문제 될 만한 친인척은 없다”라고 말했다. 친인척 관리 담당자의 면면이 과거 정권과 사뭇 다른 것도 현 정권의 특징이다. 김대중 정권 때는 DJ 아들 김홍일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인사가 친인척 관리를 담당했다. 이런 전 정권과 달리 노무현 정권은 연고주의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친인척 관리를 담당하고 있어 이른바 ‘봐주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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