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이’ 보며 떡볶이 먹는 중국인들
  • 칭다오 · 정유미 통신원 ()
  • 승인 2006.01.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음식, 한류 바람 타고 아시아로 ‘쭉쭉’…요리 학교에 수강생 북적

 
익숙한 솜씨로 콩나물을 다듬고 고사리와 양파, 잘게 다진 고기를 볶는다. 근처 까르푸(프랑스계 대형 할인점) 수입 코너에서 구입한 한국산 고추장을 넣어 비비고 마지막에 참기름 몇 방울까지 떨어뜨려 완벽하게 비빔밥을 만들어낸다. 은행에 다니는 중국인 류젠(劉健) 씨는 종종 퇴근 후 ‘반판(拌飯)’이라 불리는 한국식 비빔밥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대접한다. 

한국 음식이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규모가 큰 슈퍼마켓이라면 어김없이 진열되어 있는 김치를 사서 식탁에 올리고 간단한 한국 요리쯤은 직접 해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인들에게 한국 음식이 친근하게 다가선 것은 한국 드라마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보고 또 보고> <인어 아가씨>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일일 연속극들이 연이어 인기를 모으면서 한국 가정에서 온 가족이 식탁 앞에 모여앉아 밥과 찌개, 상추쌈을 먹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중국 전역을 강타한 <대장금>은 한국 음식에 명품 브랜드를 붙여주기에 충분했다. 
    
최근에는 좀더 전문적으로 한국 요리를 배우고자 요리 학교에 등록하는 중국인들도 늘고 있다. 베이징 시에 있는 요리 전문 학교인 ‘탕런메이스(唐人美食) 학교’는 지난해 말 <대장금> 붐을 타고 한국 요리 수강생이 급증했다. 예전에는 직업 요리사로 나가기 위해 한국 요리를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가정에서 요리할 요량으로 등록하는 일반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추세다.

한국 요리 학교 수강료 열흘에 1천6백 위안

열흘에 1천6백 위안(한화 약 19만3천원)이라는 비싼 수강료에도 불구하고 중국 베이징 시의 ‘이친(藝沁)학교’에도 한국 요리를 배우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불고기와 순두부 찌개에서부터 삼계탕과 갈비탕과 같은 보양식, 궁중 요리인 신선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리를 배우고 있다. 특별 과정으로 개설한 개고기 전문반도 인기다.
  
한국 요리는 중국 요리나 서양 요리에 비해 강습료가 1.2~1.5배 정도 비싸다. 다른 음식에 비해 소소한 재료가 많이 들어가 재료비가 많이 들고 일명 ‘손맛’이라 불리는 섬세한 손기술이 요구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중국의 ‘장금이’를 꿈꾸는 사람들의 발길은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 쯔슈(自修) 대학 국제 교류학원에서는 한국 요리 전문과정을 개설해 큰 인기를 모았다. 3년 과정인 한국 요리 전문과정은 1년 동안 중국에서 기초 강습을 받은 후 나머지 2년은 한국에 유학을 다녀오는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유학비만 1년에 중국 도시 근로자 평균 연봉의 2배 이상인 4만 위안(한화 약 4백80만원)이라는 큰돈이 들어가지만 성적이 우수하면 한국 요리 전문 자격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전 재산을 털어 ‘올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의 입맛은 중국의 길거리까지 점령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간식인 김밥과 떡볶이는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각각 ‘쯔차이바오판(紫菜包飯)’ ‘차오녠가오(炒年고)’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까르푸 등 대형 할인 매장과 일본식 백화점인 쟈스코의 식품 매장에서는 김밥과 떡볶이, 어묵을 포장해서 팔기도 한다. 산둥성 칭다오 시의 대표적인 쇼핑 거리인 타이동과 지모루 시장에는 길거리에서 한국 고추장 맛을 강점으로 내세운 떡볶이를 즉석에서 조리·판매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김밥·떡볶이는 길거리 입맛 장악

계절 간식 또한 예외가 아니다. 팥과 미숫가루, 떡으로 한국식 맛을 낸 팥빙수가 중국 패스트 푸드점의 고정 메뉴로 자리잡은 데 이어 최근에는 대표적인 길거리 겨울 간식인 붕어빵도 등장했다.
 
베이징·상하이·톈진·션전 등 대도시에서는 한국식 자장면과 짬뽕 등을 파는 중화 요리점이 중국인들을 유혹하며, 중국 요리의 안방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사례도 많이 발견된다. 중국 자장면에는 없는 고기와 야채를 넣고 캐러맬을 섞은 달콤한 춘장을 만들어 비벼먹는 한국식 자장면은 맛과 영양에서 원조를 압도하며 중국에 상륙한 지 불과 10년도 채 안되어 중국인들의 입맛을 바꿔놓았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칭다오는 한국 음식의 전파 속도가 가장 빠른 곳 중 하나다. 한국인들을 위해 문을 열었던 한국 식당이 오히려 중국인들로 북적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칭다오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은 화로구이 전문점 ‘안씨화로’는 한국식 숯불구이로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경우다, ‘안씨화로’ 1호점 안금산 사장은 “지난 2004년 5월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한국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 손님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이다”라고 말했다. 고급 한정식집인 ‘흥부명가’ 역시 마찬가지다. ‘흥부명가’의 한 지배인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숯불구이뿐만 아니라 1백 위안(한화 약 1만2천원)이 넘는 퓨전 한정식도 인기가 많다”라고 귀뜸했다.
 
깔끔하고, 정갈한 이미지가 장점

최근 조간 신문 천바오(晨報)는 중국에서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요리로 한국 요리를 꼽았다. 한국 요리는 중국에 뒤늦게 불고 있는 웰빙 바람과 맞물려 대표적인 건강식으로 떠올랐다. 기름이 많이 들어가는 중국 음식에 비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5대 영양소가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호평받고 있다. 보기에 깔끔하고 정갈하며 이미지가 고급스러워 손님 접대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유통 전문가들은 외식 문화가 발달한 중국에서는 굳이 주말이나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가족들끼리 나가서 식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한국 식당의 수요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긴 역사와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다채롭고 풍요로운 요리 문화를 발전시켜오며 세계 최고의 요리 강국으로서의 자부심을 지켜온 중국. 한국 맛에 한번 길들여진 13억 중국인의 입맛은 비록 반한류의 역풍이 몰아친다 해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