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여, 물을 끓여라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www.enh21.org) ()
  • 승인 2006.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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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건강] 수돗물에 든 트리할로메탄, 미숙아 출산·자연 유산 유발 위험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예비 엄마들이 태아에게 기울이는 정성은 참 대단하다. 특히 먹는 것에 관해서는 더 엄격하다. 물론 의학적으로도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임신부가 먹는 음식은 뱃속의 아기도 함께 먹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음식을 먹어 흡수한 성분은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도 전달될 수 있다. 태아는 성인에 비해 면역력이나 독성 물질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약하므로, 성인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 양의 유해 물질도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극도로 조심하는 임신부라도 마시는 물에까지 신경을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가 매일 마시거나 요리에 사용하는 수돗물 속에는 소독·정화 과정에 사용하는 각종 화학 물질과 그 부산물이 미량이나마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염소이지만, 물속의 유기물이 염소와 반응하여 생긴 ‘트리할로메탄(THM)’이 더욱 유해하다. 발암 물질인 트리할로메탄은 일단 체내에 들어오면 쉽게 분해되지 않고 지방 세포에 축적된다. 그리고는 DNA 변형 및 면역성 저하를 일으킨다.  

태아가 이들 물질에 노출되면 치명적이다. 2002년 미국의 ‘독성 물질 및 질병 등록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트리할로메탄은 미숙아 출산이나 자연 유산을 유발하고, 태아의 신경계 발달을 방해한다. 특히 미국 환경부에서 제시한 수돗물 중 함유량 가이드라인 80ppb보다 적은 농도인 60ppb 정도에서도 미숙아가 태어날 위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트리할로메탄은 메탄을 비롯한 유기물이 많은 환경에서 잘 생긴다. 실제로 지하수보다 유기물이 많은 표층수에서 더 많이 검출된다. 물이 상수도관에 오랫동안 머물면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져 트리할로메탄의 양이 늘어날 수 있다. 또한 원수(原水)의 오염이 심할수록, 여름철처럼 수온이 높을수록 물속 유기물이 많아지고, 소독할 때 필요한 염소의 양도 늘어나 수돗물의 트리할로메탄 농도가 높아진다.

수돗물 끓이기만 해도 트리할로메탄 사라져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수돗물에는 트리할로메탄을 비롯한 오염 물질 함유량이 모두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 이하였다. 그러나 이는 정수장에서 측정한 값이다. 정수장에서 멀리 떨어진 각 가정에서의 함량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도관에서 오래 머무를수록 트리할로메탄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수돗물을 끓이기만 해도 트리할로메탄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끓인 수돗물이라면 태아도 트리할로메탄에 노출될 위험에서 안전하다. 그러나 정수기만으로 트리할로메탄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일본 후생성이 일본에서 시판되는 정수기들을 검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정수기가 사용 후 조금 지나서는 트리할로메탄을 거의 걸러내지 못했다.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는 트리할로메탄을 완벽하게 걸러낼 수 있다고 하지만 여기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따라서 임신부는 수돗물이건 정수된 물이건 끓여 마셔야 안전하다. 냉국처럼 찬물을 그대로 써야 하는 음식에도 끓여서 식힌 물을 사용하기 바란다. 정부는 비용이 좀더 들더라도 염소 대신 오존 소독법 같은 더 안전한 방법을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최근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묘안이 백출하고 있는데, 단순히 출산율 증가에만 신경 쓰지 말고 태어날 아기들의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도 기울였으면 한다.  

환경과 건강 Gazette www.enh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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