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두 얼굴 브로커’ 실체 밝혀질까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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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진입한 ‘윤상림 게이트’ 수사 큰 진전 없어

 
브로커 윤상림씨 사건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검사 9명 등 수사 인력 60여 명을 이 사건에 투입했다. ‘단군 이래 최대 브로커’라는 검찰의 호언에 어울리는 대규모 수사진이다. 지난해 11월24일 윤씨를 구속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검사 김경수)는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그동안 그를 네 번이나 추가로 기소했다. 검찰이 밝혀지지 않은 윤씨의 죄가 더 있다고 보고 있어 추가 기소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사에 착수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구속된 사람은 윤씨 한 명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검찰로서도 상당한 부담이다. 구체적인 수사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수사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다시 불거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나라당 또한 이 사건을 ‘권력형 게이트 사건’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를 하겠다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2월 안에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검찰이 막판에 어떤 성과를 올릴지 주목되고 있다.

검찰은 일단 윤씨의 입을 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계좌 추적만으로는 다른 혐의를 캐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씨가 입을 닫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참고인들도 덩달아 입을 닫았다. 급기야 검찰은 윤씨가 변호인을 제외하고는  면회인을 만날 수 없도록 하는 ‘접견 금지 결정’까지 내렸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윤씨, 입 굳게 다물고 튀는 행동 일관

검찰은 윤씨와 돈거래를 했거나 함께 강원랜드에 갔던 인사들의 신상을 거의 파악했으나 범죄 혐의와 관련된 점은 밝혀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전부터 윤씨를 알고 지내며 두세 달에 한 번씩 그와 골프를 했다는 법조계 인사 ㅅ씨는 “윤씨는 독한 사람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끝까지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윤씨에 대한 수사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검찰 주변에서는 윤씨의 기묘한 행태가 입방아에 올랐다. 윤씨의 공소장에는 ‘나는 부장검사도 소주병으로 때린 사람이다’ ‘유명한 조폭 두목 김아무개씨가 내 친구다’라고 협박해 돈을 뜯어냈는가 하면, ‘아들이 사법시험에 떨어져 가세가 기울었다’라며 급전을 빌려 떼먹은 적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윤씨가 경찰 사이드카의 호위를 받으며 골프를 치러 다녔고, 경찰 헬기를 이용한 적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조사 과정에서도 화제가 만발했다. 윤씨는 갑자기 할렐루야 하고 외치는가 하면 ‘전화기 버튼에서 소리가 날 것이다’, ‘똥을 싸겠다’라고 엉뚱한 말을 하기도 했다. 문에 머리를 찧고 자살하겠다며 소동을 피운 적도 있다.

이른바 게이트급 사실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윤씨의 인맥은 실제로 대단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이 압수한 윤씨의 수첩에 올라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 1천여 명의 명단이 그냥 이름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십 년간 검찰에 몸담으며 재경 지청장을 역임한 ㅅ씨는 “골프를 하러 가면 늘 두세 팀이 있었다. 나도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가보면 거의 다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아무개 판사, 경찰 고위층 누구 하는 식이었다.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이나 고위직이 아닌 사람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라고 털어놓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인 사람들은 서로 “야, 저 사람도 있네. 대단하다”라고 윤씨의 인맥에 놀라워하며 인사 나누기에 바빴다. 윤씨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김대중 정권 때 검찰 핵심부에 근무했던 한 인사도 “당시 검찰 고위 간부들로부터 ‘윤상림과 골프를 쳤다거나 술을 먹었다’는 얘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나도 놀랄 정도로 검찰에도 아는 사람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를 잘 아는 인사들에 따르면 윤씨 인맥의 양대 축은 판사 그리고 군, 특히 기무사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두터운 인맥·이중 행태 등은 속속 드러나

윤씨는 일단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스타일이었다. 골프 같은 경우도 2~3일을 앞두고 불쑥 전화해서 부킹을 해놓았으니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운동하자는 식으로 사람들을 모았다. 윤씨는 전혀 술을 마시지 못했지만 입심이 좋았다. 그를 아는 한 인사는 “누구한테나 좋게 이야기를 해서 상대에게 신뢰감과 호감을 주었다. 반론을 제기하기도 전에 그의 말에 빠져들곤 했다”라고 전했다. 윤씨는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지인들의 결혼식이 있으면 축의금이나 화환을 대신 전달해주었고, 명절 때면 곶감이나 참기름 세트를 선물해 인맥을 관리했다.

윤씨가 회장으로 있는 지리산 스위스관광호텔도 인맥을 넓히는 데 한몫을 했다. 윤씨 초대로 이 호텔에 숙박한 한 인사는 “장모님을 모시고 갔는데, 윤씨가 ‘어머님’이라고 부르면서 잘 대해주어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그곳에서도 윤씨가 초대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을 여럿 만났다고 한다. 호남 지역의 한 정치인은 윤씨로부터 ‘다른 정치인들은 와서 다 자고 갔는데 왜 형님은 안 오시냐’라는 항의 아닌 항의를 받기도 했다.

윤씨는 ‘잘 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골프장 캐디나 식당 종업원 등에게 보통 사람들이라면 화를 안 낼 일을 가지고 핏대를 세우곤 했다는 것이다. 윤씨와 수천만원대 돈을 주고받은 한 변호사는 “느닷없이 ‘이 ××’ 하는 식으로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며 화를 내 다른 사람들이 당황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윤씨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궁금증 가운데 하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왜 윤씨에게 수천만원대 돈을 거리낌 없이 빌려주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그를 잘 아는 한 인사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씨는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굉장히 험담을 한다. 자신과 관계가 틀어지거나 부탁을 안 들어준 사람에 대해서 좋지 않게 얘기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나도 저 사람과 관계가 안 좋아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저렇게 욕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부담스러웠다.”

이 인사는 “윤씨는 돈이 필요하면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급하게 쓸 데가 있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말한다. 평소 그의 막강한 인맥을 직접 겪어본 사람들 입장에서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또 그가 건설 시행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 인사들은 돈을 불려줄 것으로 기대하며 빌려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윤상림 게이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위원장 주성영)’를 만든 한나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사건을 키우려 하고 있다. ‘슈퍼 게이트’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여권 인사 다수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도 새로운 내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윤씨를 잘 아는 한 인사에 따르면 윤씨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양쪽에 다 보험을 들어놓았다”라며 여야에 모두 발을 걸쳐 놓았다고 말하고 다녔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 사건과 관련해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을 소환 조사하는 등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경찰을 크게 흔들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 검찰은 그만큼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추가로 검사들을 배치하는 등 거대 수사팀을 구성한 것도 이런 방증이다. 검찰로서는 마지막 전력투구를 해보는 형국이다. 여기서도 별 성과가 없으면 윤상림 사건은 한 거물 브로커의 기묘한 행태만이 회자되는 가운데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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