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파문’ 발단은 외교부 내분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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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조약국·북미국 대미 협상 놓고 대립…청와대·NSC로 흩어진 뒤 ‘재격돌’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통일부장관에 내정되었을 때 대다수 언론은 ‘ 외교 안보 실세의 전면 등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러나 권력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통일부장관 내정은 청와대 386들의 그에 대한 견제와 타협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차장 후임으로 안보정책실장에 내정되다시피 했던 이수혁 주독일 대사가 낙마하고, 송민순 차관보가 발탁되면서 또 다시 견제설이 불거졌다. 이 차장이 내심 편하게 생각하는 이수혁 대사를 청와대 386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밑에서 타오르던 양측의 각축이 이 내정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폭발했다. 그를 겨냥한 듯한,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의 문건 폭로전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문건이 전한 권력 내부의 암투와 갈등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정황을 아는 사람들은 이를 달리 받아들였다. 이미 권력 내부에서 점검이 이루어져 별 문제점 없이 종결된 사안들이 뒤늦게 터져나온 배경에 촉각을 기울였다. 누가 왜, 다 끝난 얘기를 재탕 삼탕하는가.

우선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2월1일 폭로한 내용. 지난해 12월29일 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 외교통상부장관은 사전 협의 필요성을 제기한 데 반해, 이종석 차장은 이를 부인했다는 게 요지이다.

최재천 의원 폭로 문건은 철지난 ‘녹음 테이프’

그러나 이 문제는 정부 내부 또는 이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다. ‘사전 협의’라는 조항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한미군의 전장 이동을 막을 수 없게 될 때, 우리가 이를 승인해준 꼴이 되어 외교적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사전 협의 조항을 달았지만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일본 사례도 타산지석이 됐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정부 입장은 초기부터, 지난 1월29일 한·미간 합의된 내용에 맞춰져 있었다.  즉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한국이 한국 국민의 의지에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한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 3월8일 노무현 대통령의 공사 졸업식 발언이나 이종석 차장의 발언 맥락 역시 이에 입각한 것이다.

최의원이 그 다음 날인 2월2일 폭로한 내용. ‘국정상황실 문제 제기에 대한 NSC 입장’이라는 문건을 인용, 외교통상부가 지난 2003년 10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정부의 지침과 다른 내용의 외교 각서를 미국과 교환하고 그 사실을 NSC나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전·사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충격적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날인 2월3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NSC와 대립각을 세워온 ‘국정상황실 문건’을 인용했고, 외교부뿐 아니라 NSC에까지 책임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런 공박의 핵심 쟁점은 노무현 대통령 지시로 지난해 4월6일과 15일 두 차례 열린 점검회의에서 이미 대부분 해소된 것이었고, 무혐의 결론까지 난 상태였다는 것이다(  쪽 기사).  당시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동영 장관 주재 하에 문재인 수석, 국정상황실 천호선 실장, NSC 이종석 차장·서주석 실장 등 관계자들이 다 모였고, 쟁점이 되었던 사항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그 결과 NSC에 특별한 혐의가 없다는 점이 다 밝혀졌다. 이제 와서 철 지난 ‘녹음 테이프’를 다시 트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동안 언론이 제기했던 ‘온건 자주파에 대한 강성 자주파의 공격’이라는 시각만으로 보기에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집요하고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뿌리는 무엇일까. 권력 내부의 사정을 알 만한 정부 주변 인사들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청와대 386과 이종석 차장의 대립 구도’라는 설명은 이 사건의 표면에 불과한 것이고, 그 진앙지에는 청와대도 NSC도 아닌  외교부 내 일련의 정책 갈등과 그 비극적 결말, 그에 따른 뿌리 깊은 감정적 대립이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3년 하반기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둘러싸고 외교부를 뒤흔들었던 북미국과 조약국 간의 반목과 대립이 바로 이번 사태의 뿌리라는 것이다.

조약국 멤버 청와대, 북미국 멤버 NSC에 포진

<시사저널>에 이같은 사실을 밝힌 정부 주변의 관계자들은 이런 주장의 근거로 지난해 4월8일과 15일 열린 점검회의 분위기를 들었다. 당시 표면적으로는 NSC가 타깃이었지만 이는 감독 책임을 물은 것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2003년 당시 북미국장으로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던, 위성락 현 주미 한국 대사관 정무공사가 타깃이었다고 한다. 즉 2003년 북미국·조약국 대립의 연장선을 기본 축으로부터 시작된 북미국과 조약국 대립을 기본 축으로 해서, 각각의 후견 세력인 청와대 386과 NSC가 일종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북미국과 조약국 갈등은 왜 일어났나. 지난 2003년 4월, 제1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를 계기로 한·미 양국은 용산 주한미군 기지 이전 협상을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미국과의 협상이 시작되면서 외교부 내에서는  심각한 내부 논쟁이 벌어졌다. 바로 지난 1990년 한·미간에 맺은 ‘서울도심미군부대 이전을 위한 기본 합의각서(MOA)와 이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둘러싼 것이었다.

이 양대 각서는 주한미군 감축을 무기로 밀어붙인 미국의 압박 분위기 속에 맺어진 것으로, 기지 이전 비용 전액을 한국이 부담하도록 되어 있는 등 ‘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불평등한 협정’이었다. 당연히 국가간 조약 문제를 담당하는 외교부 조약국은 이를 백지화하고 재협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미국과 협상 실무를 담당하는 북미국은 국가 간 신의 문제가 걸려 있는 만큼, 여기서부터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사실 윤영관 장관이 조정력을 발휘해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윤장관이 북미국에 질질 끌려가고, 여기에 국회 동의 문제 등 새로운 쟁점이 추가되면서 양측의 대립은 전면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3년 10월 5차 포타회의 결렬, 3급 비밀 사항이었던 1990년 각서 내용의 언론 유출 사건, 11월에 대미 협상팀에 대한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실의 직무감찰, 2004년 1월 위성락 북미국장의 ‘현 정부에 대한 폄훼 발언 사건’ 따위로 언론·시민단체·청와대·NSC에까지 전선이 확대되어 갔다.

이종석 차장, 북미국 출신 중용 뒤 견제 받아

결국,  2004년 1월 감독 책임을 지고 윤영관 장관이 물러났고, 동시에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위성락 국장을 비롯한 북미국 실무자들이 청와대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조약국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반기문 외교보좌관이 후임 장관으로 오면서 이번에는 조약국이 철퇴를 맞았다. 여기에는 조약국이 문제 삼았던 1990년 각서의 서명 책임자가 당시 북미국장이었던 반기문 신임 장관이었다는 악연도 작용했다. 결국 2004년 초 조약국 멤버들도 뿔뿔히 흩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외교부에서 징계를 받은 위성락 국장은 그 뒤 NSC 정책조정관으로 자리를 옮겨 대미 협상을 담당하다가, 지난해 8월5일 주미 한국 대사관 정무 공사로 영전하기까지 했다. 반대측인 조약국 멤버들은 공교롭게 청와대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상황실과 의전비서관실 등으로 나뉘어 청와대 386들과 의기투합했다. 이들의 시각으로는 ‘대미 사대 외교’의 주역인 위성락 국장을 받아들여 영전까지 시킨 이종석 차장 등 NSC의 처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양 진영 간에 다시 전운이 감돌았다. 그 와중에 지난 2004년, 노회찬 의원이 2003년 11월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실이 작성한, 대미 협상팀 직무 감찰 문서를 폭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뒤, 2005년 3월8일 대통령의 공사 졸업식 발언이 있었고, 이에 대해 미국 럼스펠드와 롤리스 부차관보 등이 이를 불쾌해 하는 듯한 언론 플레이를 하자, 국정상황실이 그 배경을 조사하기에 이른다.

이 와중에 지난 2004년 1월 주미 한국 대사관과 북미국 사이에 오간 전문 내용이 입수되었다. 국정상황실은 외교부 북미국이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구체적 단서 조항 없이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는 듯한 각서를 미국에 보내 미국이 오해하게 만들었다고 정황을 파악한 뒤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 이에 대통령이 정동영 장관에게 사실 관계를 점검하도록 지시, 지난해 4월 두 차례 회의 결과 북미국 실무자의 실수로 인한 해프닝으로 종결 처리되었다.

사안은 종결되었지만, 뿌리 깊은 앙금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종석 차장이 통일부 장관으로 이동하는 외교 안보팀 개편기를 맞아 다시 한번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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