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수 향한 ‘무기한 사랑’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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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규씨, 15년째 편지 쓰기·면회·치료비 제공 등 뒷바라지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의정부역에서 내려 시장 쪽 출구로 걸어 나가면 지하상가 입구 왼쪽에 ‘구두 병원’(구수 수선 가게)이 한 곳 있다. 그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선 언뜻 들으면 댄스곡으로 착각할 만큼 경쾌한 성가들이 하루 종일 흘러나온다. 특이하게도 구두 병원 앞 유리 문에는 큼지막하게 ‘길 안내’라고 써붙여 놓았다. 그러지 않아도 위치가 위치인 만큼 길을 묻는 행인이 많아 귀찮을 텐데 이곳 주인은 무슨 생각에서 이런 안내문까지 붙여 놓고 더욱 번거로움을 자초하는 것일까. 
 
이 구두 병원의 사장은 조상규씨(48)이다. 조씨는 오래 전 어느 지하상가 앞에서 가게 문 앞에 ‘묻지 마’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자기는 가게를 차리면 ‘길 안내’라는 표지판을 반드시 달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묻지 마’와 같은 사나운 인심만을 접하던 사람들이 친절한 표지판을 보면 하루 종일 마음이 훈훈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조씨는 남들이 하지 않는 길 안내를 한 가지 더 하고 있다. 벌써 15년째 무기수 돕기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요즘처럼 사회가 힘들면 감옥 안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재소자들 사이에서도 인심이 각박해지기 때문입니다. 관에서 주는 물품으로는 살아가기 힘든데 다른 재소자들에게서 얻어 쓰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형편입니다.” 그는 감옥 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 가족마저도 모두 외면해버리게 된다며 그 누구한테도 물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무런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완벽한 고립감이 장기수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말한다. 어둠 속에 홀로 버려진 듯한 그들에게 위로를 주는 일도 그에게는 아주 중요한 길 안내인 것이다. 
 
그가 무기수들을 위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하고 품이 많이 드는 것은 편지 쓰기이다. 그는 전국의 무기수 4백50여 명에게 한 달에 편지를 대략 1천3백통 쓰고 답장 1천5백통을 받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집사이기도 한 그는 새벽 4시40분에 일어나 새벽 예배를 마친 뒤 5시40분부터 아침을 먹기 전까지 꼬박 편지를 쓴다. 예전에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자마자 잘 때까지 편지를 썼으나, 얼마 전부터 아내나 두 아들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해 아침 잠을 포기했다. 아이들은 그에게 컴퓨터로 쓰면 훨씬 쉬우니까 컴퓨터를 배워보라고 권하지만 그는 육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만이 받는 사람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동안 열심히 편지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지금 전국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4백50여 명의 무기수 중 적어도 90여 명은 예전에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훤히 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기수들은 부모나 배우자에 대한 나쁜 소식보다도 자식들이 비뚤어지는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 크게 상심하고 가장 힘들어한다고 한다. 대부분 자신이 결손 가정에서 자라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깊은 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한 군데 마음 붙일 데가 없는 상태에서 몸이 아프게 되면 그것만큼 무기수들을 의기소침하게 하는 일도 없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교도소 의무실에서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재소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돈이 많은 재소자들은 사회 병원에 나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가족과 단절된 무기수는 꿈도 꾸지 못한다. 
 
자신도 옥살이 경험…재소자 가족도 돌봐

따라서 조씨는 시간만 났다 하면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정말 힘들어하는 무기수들을 직접 면회하고 위로한다. 그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단 한 번도 이름난 산이나 바다로 휴가를 떠나본 적이 없다.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이 보호감호소가 있는 청송이다. 그의 두 아들 요셉(14)과 다윗(9)은 아버지보다 좀더 나이 많아 보이는 무기수는 아저씨, 좀 적어 보이면 삼촌이라고 부르며 커왔다. 그들이 가장 잘 따르는 이는 ‘창원이 삼촌’(신창원)이다. 조씨 가족이 신창원을 면회한 것만 해도 20차례가 넘기 때문이다(상자 기사 참조). 
 

 
조씨 가족은 면회한 재소자들의 부탁을 받고 그들의 늙은 부모나 자식들을 돌보기도 한다. 마침 같은 의정부에 사는 신창원의 이모와는 한 가족처럼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형편 닿는 대로 몸이 아픈 무기수들에게 약값과 치료비를 보내주고 있는데 조씨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다. 때로는 마치 맡겨 놓은 돈을 달라는 듯 막무가내로 보채는 경우도 있어 서운하지만 이해는 한다.  “얼마나 못 견디겠으면 생판 남남인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하겠습니까. 그들로서는 죽지 못해 그렇게 떼쓰는 것일 겁니다.”
 
그가 방 두 칸 사글세 신세를 면치 못하면서도 무기수 뒷바라지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그 자신 예전에 오랜 동안 옥살이를 해보았기 때문이다. 부모가 화목하지 못한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던 그는 1993년 신앙을 얻고 부인을 만나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질러 여섯 차례나 투옥되어 12년을 살았다.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 조씨의 생각이다. 

무기수라도 15년 이상을 복역하면 석방하는게 관례이므로 조씨가 돌보던 이들 중 상당수는 현재 출소를 앞둔 형편이다. 조씨는 요즘 출소를 하더라도 세상 어느 한 군데에 발 붙일 곳이 없는 무기수 출소자들이 단 며칠이라도 마음 놓고 쉬어갈 곳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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