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쐬주’는 모를 소주의 깊은 맛
  • 성석제(소설가) ()
  • 승인 2006.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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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음식정담]

 
소주에서 주, 곧 술은 한자로 ‘酎’, ‘酒’ 두 가지를 쓴다. 안동소주처럼 구경하기 힘든 소주는 ‘燒酎’로, ‘소주나 한 잔 마시고’ 할 때의 ‘쏘주’, ‘쐬주’는 ‘燒酒’로 쓰는 것이다. 진하고 독한 술이라는 뜻인 ‘酎’ 자를 쓰는 소주는 알코올 도수 40도가 넘는, 위스키나 브랜디, 보드카와 같은 증류주다. 술을 증류할 때 땀처럼 방울방울 술이 맺힌다 하여 땀 한(汗) 자를 써서 한주(汗酒)라고도 했다. 

우리 나라에 증류주인 소주가 전해진 때는 몽골제국의 쿠빌라이 칸(忽必烈汗 1215~1294 재위 1260∼1294)이 고려를 침략한 13세기 후반이다. 몽골은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아랍의 알코올 증류법을 배워 소주를 만들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몽골 병사들의 주둔지였던 개성, 안동, 제주를 중심으로 소주가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면 ‘땀의 술’ 한주(汗酒)는 우연히도 ‘칸의 술’ 또는 ‘칸이 갖고 온 술’이 될 수도 있겠다.

몽골이 물러가고 난 뒤 토착화한 안동소주는 안동 지방 명문가에서 전통 가양주로 전승되어 왔다. 처음으로 대량 생산된 것은 1920년이다. 권태연이 안동의 남문동에서 우리의 전통 누룩 대신 배양균을 이식하는 일본의 흑국(黑麴)을 써서 생산한 ‘제비원 소주’는 일본과 만주까지 명성을 떨쳤다.

1980년대 후반에 안동에 들르게 된 나는 안동소주 양조장부터 찾아갔다. 안동소주는 1964년 정부의 양곡 절약 정책에 따라 주세법이 개정되어 쌀을 원료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공식적으로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 뒤로 민간에서 명맥만 이어지다가 1987년에 안동소주 제조법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면서 생산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안동 이외의 고장에서 안동소주를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택시 기사가 일러준 집의 대문이 열려 있기에 나는 무심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쪽에서 일반 여염집과 다른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고 있는데 양반동네의 기품과 기운이 느껴지는 할머니가 나왔다. 내가 혹시 여기가 안동소주를 파는 곳인가 묻자, 할머니는 술 같은 건 애저녁에 다 나가고 없다는 요지의 말을 웅얼대는가 싶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야야, 야야” 하고 누군가를 불렀다. 딸인지 며느리인지 모를 젊은 여성이 젖은 손을 한 채 나왔다. 할머니는 대뜸 “왜 대문을 열어놓아 가지고 지나가는 개나 소나 다 들어오게 만드느냐”라고 꾸짖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택시까지 타고 왔다 ‘개’가 되어버린 나는 무안한 얼굴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개망신’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안동관광호텔의 매장까지 찾아가서 안동소주를 샀다. 가는 도중 동행에게 ‘술먹은개’라는 단어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가며.

하지만 그 술은 내 입에 들어갈 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차에서 내릴 무렵 시렁 위에 올려놓았던 안동소주가 아래로 떨어지며 병이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기차가 종착역에 도착하기까지 내가 탄 기찻간은 온통 술냄새가 진동을 했고 사내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저마다 ‘거 냄새 한 번 조오타’라고 한 마디씩 하며 내렸다.

‘문화재’ 안동소주와 ‘불법’ 법성포소주의 차이

소주를 만드는 재료는 밀과 멥쌀이 기본이다. 통밀로 만든 누룩, 멥쌀로 찐 고두밥을 식혀  말린 것을 물을 부어가며 고루 섞고 버무려 술독에 넣는다. 1주일에서 보름 정도의 숙성 기간이 지나면 독안의 내용물이 발효하여 증류 이전 단계인 전술이 된다. 전술을 솥에 넣고 소주고리를 솥 위에 얹은 뒤 불을 지펴서 열을 가한다. 알코올은 끓는점이 73도이므로 알코올성분이 물보다 먼저 증발하기 시작한다. 기화된 알코올은 소주고리 위의 냉각기에 닿고 액체로 변하여 소주고리관을 타고 밑으로 떨어진다. 증류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에는 80도 가량의 소주가 나오고 점점 도수가 낮아져서 25도까지 내려간다. 이 술을 서로 섞으면 45도의 소주가 탄생한다. 

법성포소주는 영광 굴비로 유명한 그 법성포에서 나오는 소주다. 법성포도 안동처럼 몽골군의 전진기지로 쓰였다고 한다. 안동소주와 마찬가지로 쌀을 절약한다는 차원에서 생산이 금지되어 있어 몰래 만들어 마시던 소주였다. 안동소주와 달리 1980년대에도 여전히 만드는 게 불법이었다. 안동소주 마시기에 실패하고 난 그 해 가을, 서울 신촌의 굴비 전문 식당에서 이 술을 알고 찾아간 사람에게만 판다는 정보를 운동권 출신 후배에게서 입수했다. 바로 그날 저녁, 진짜 소주에 굶주린 친구들을 긴급 소집해서 불법 법성포소주를 마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입이 짧았던 데다 술 욕심은 많아서 제일 먼저 취하는 쪽이었다.       

소주는 도수가 높은 만큼 빨리 취하는 술이다. 안주로 육류나 기름진 전 같은 게 어울리지만 굴비 전문 식당의 안주는 짠 굴비와 조기밖에 없었다. 소주가 한 잔 들어가자 코 끝을 툭 치는 강한 향기가 다가오고 곧 입안이 얼얼해지는 느낌이었다. 쏘주에서는 쓴맛이 나지만, 그래서 사카린이니 아스파탐이니 하는 인공감미료까지 넣지만, 소주는 단맛이 나면서 목구멍을 가볍고 매끄럽게 넘어간다. 쏘주처럼 마시고 나서 “크아” 하는 소리를 낼 이유가 없다.

빈속에 들어간 소주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화주라는 이름에 걸맞는 찌르르한 느낌을 주는데 이 때 목구멍 근처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감돌기 시작한다. 신선한 햇차를 마시고 난 다음에 느끼는 향기와 비슷하다. 코로 맡는 향기가 아니라 목구멍 근처를 감도는, 안개와 같은 향기다. 세 잔쯤 마시면 술은 상기(上氣)하여 머리로 치밀어 올라간다. 오르고 오르던 기운이 머리끝 정수리까지 도달하는가 싶다가 문득 병뚜껑이 열리고 기화한 성분이 밖으로 치고 나갈 때처럼 팍, 하는 느낌으로 머리가 맑아지고 들뜬다. 이쯤해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발을 디뎠더니 발바닥에 스펀지라도 달린 듯 푹신했다.

주전자를 바꿔가며 계속 마시다 보면 전원 대취하여 구름 속으로 올라가 버리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거나 남을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았다. 빨리 취하는 만큼 빨리 깼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소주의 맑은 성질이 소주를 마신 사람의 성정에 영향을 미쳐서 그런 것 같았다.

기자인 ‘ㅂㅎㅎ’은 문화재인 안동소주와 당시 불법이던 법성포소주를 비교해서 마셔보고는 “법성포소주가 훨씬 프리미티브(primitive)하다”고 논평했다. 이 ‘원시적, 본원적, 야만적, 근본적’인 법성포소주를 운동권에 있던 후배가 한 말들이 플라스틱통으로 가져다가 팔기도 했다. 인삼주나 천마주 같은 약술을 담을 때 쓰면 효과가 높다고 해서 구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불법이라 스릴이 있었다.

지금은 증류식 소주가 많다. 안동소주를 생산하는 곳도 세 군데나 되고 홍주, 문배주, 이강주 등등에 최근 기업에서 만든 ‘화요주’까지 등장했다. 소주와 관련된 불법도 운동권도 그 시절도 사라져갔다. 뒤끝 없는 소주의 향기처럼 홀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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