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방북 열차 선물 싣고 온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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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각에서 지방선거 승리와 ‘6·15 정상회담 체제’ 복원을 위해 ‘DJ 방북→경의선 북쪽 구간 현대화·복선화→개성·평양간 6·15 고속도로 건설’ 등 단계별 프로젝트를 추진하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를 태운 열차가 드디어 에어푸트에 도착했다. 동독 당국의 제지로 거리에 나올 수 없었던 시민들은, 일제히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빌리, 빌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지난 1970년 3월, 브란트 총리의 역사적 동독 방문은 이렇게 시작됐다. 본에서  200km 떨어진 동독의 지방 도시인 에어푸트는 서독 사민당(SPD)과 동독 공산당의 발원지이자 ‘마음의 고향’ 같은 곳. 그가 독일 분단 이후 처음으로 슈토프 동독 총리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도착할 당시의 광경은 역사의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DJ, 경의선 타고 가 정상회담 하려 했다

1994년 10월.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이인석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북방실장(현 인천대학교 석좌교수)을 ‘조용히’ 불렀을 때, 그의 머리 속에 바로 이 장면이 떠올랐다. 정치 재개를 앞둔 김대중 이사장은 당시 집권 이후를 대비한 각종의 구상을 가다듬고 있었고, 그날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남북 정상회담이 대화의 주제였다.

이 실장은 브란트 총리가 열차로 이동했다는 점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왜 열차였을까. 그것은 곧 ‘독일 문제는 독일인의 손으로’라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그는 보았던 것이다. 내륙 수송의 근간인 열차를 이용함으로써, 외세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절단된 혈맥을 잇는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이날 김이사장에게 제시한 방안도 결국 ‘집권 후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경의선을 타고 평양에 가시라’는 것으로 모아졌다.

이인석씨는 김대중 대통령 주변의 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은 ‘숨은 브레인’ 중 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첫 인연은 1992년 대선 패배 후 영국에 체류하던 김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당시 코트라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장이었던 그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첫 대면에서 동·서독 통일과 한반도 문제를 아우르는 그의 탁견과 통찰력을 높이 산 김대통령이 그 후 그를 수시로 불러 조언을 구하곤 했다.

3년 후.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통령이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에 다시 나가 있던 그를 급히 불러들여, 청와대 건설교통비서관에 앉혔다. 자신이 3년 전 대통령에게 조언했던 대로, 그는 곧바로 ‘경의선을 통한 남북정상회담 추진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남북 간에 끊겨 있는  27km를 얼마나 빨리 복구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다. 정상적으로 공사를 할 경우 27개월. 1천2백여km에 이르는 베이징-상하이 구간을 3년 만에 돌파한 중국의 경험을 참고해 최단 시일 내로 당길 경우 9개월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남북 간 신호 체계나 전력 차이 같은 기술적 문제는 북쪽 구간에서 기관차를 바꿔 다는 ‘묘수’로 해결 가능하다는 결론에도 도달했다.

그러나 2000년 6·15 정상회담 합의가 너무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물론 준비기간 9개월이 확보되었다 해도, 북한이 과연 ‘경의선 방북’을 과연 허용했을까라는 문제는 남지만,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었다. 결국 ‘정상회담은 분단 극복은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는 그의 지론대로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북의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80 고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행사가 될지도 모를 ‘4월 평양 방문’을 앞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5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또다시 북풍 의혹을 제기하고, 여기에 남북 관계의 급진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가세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경의선 방북이 성사되면, 김정일 위원장이 그 길을 따라 답방을 한다는 ‘6·15 2차 정상회담설’과 ‘8월15일 낮은 단계 연방제 합의설’ 등이 최근 남북 관계 급진전론의 주요 뼈대이다.

“남북 정부 간의 물밑 행보 심상치 않다”

지난 2월15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와 건설교통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종석 통일부장관과 이 철 철도공사 사장을 상대로 쏟아낸 발언들은 최근 시중에 나도는 각종 설의 백가쟁명을 방불케 했다. 특히 박성범 의원은 “지난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마련한 10억 달러 중 잔여 자금 5억 달러가 특정인의 외국 계좌에 은닉되어 있고, 이 자금이 이번에 북측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는 사람도 있다”라며 자금 제공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납북자가족협회측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DJ의 귀경 열차에 1987년 남북된 동진호 선원 등 상당수 납북자와 일부 국군 포로를 데려온다는 얘기를 정부 관계자에게 들었다고 한다”라며 진위 여부를 따져 묻기도 했다.
이런 구체적인 의혹 제기 외에도 통일 방안과 관련해 김 전 대통령이 이번 방북에서 낮은단계 연방제와 관련한 모종의 합의를 할 가능성에 대한 집중적인 문제제기 양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의 방북이 이처럼 논란에 휩싸이게 된 데에는, 5월 지방선거를 앞둔 4월 하순을 방북 시기로 잡은 것 외에도, 지난해 연말 이후 김대통령이 한몫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5일 ‘문명과 평화국제포럼’에 보낸 영상 연설과 12월8일 노벨평화상 수상 5주년 기념 강연 등에서 ‘남북 양측이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바와 같이 남쪽의 남북연합제와 북쪽의 낮은 단계 연방제를 통합해 통일 1단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각종 언론 매체와의 회견에서는 앞으로 열차 방북이 이루어지면 김정일 위원장과 ‘6자회담의 상설화’ 및 통일 방안에 대해 협의하겠다고 거듭 천명했다.

물론 그의 발언들에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달려 있다. 자신이 정부의 특사가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사인 자격으로 가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폭넓고 자유롭게 얘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북 관계의 현주소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이처럼 앞서 나가는 얘기를 거듭 해온 것은 뭔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만도 하다.

 
여기에 또 한 가지 특징적인 사항은 한동안 북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들 사이에 ‘김 전 대통령이 경의선 열차를 타고 4월 평양 방문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낙관론이 유포되기도 했다. 그 중에는 “김 전 대통령 탑승 열차에 명단을 올릴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는 통고를 북측의 사업 파트너로부터 들은 대북 사업자도 있다고 한다. 결국 별 내용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진 이 철 철도공사 사장의 방북이나 김 전 대통령 방북과는 별개의 문제로 북을 다녀온 것 같다는 임채정 의원 방북 등이 이런 분위기에 겹치면서, 물밑의 분위기가 고양된 면도 없지 않다.

최근 김 전 대통령 방북 문제를 둘러싸고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야당이 제기하는 북풍 의혹은 과연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상투적인 의혹 제기에 불과한 것인가. 이와 관련 상황을 극명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남북간의 물밑 행보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돌고 있기는 하다. 한 정보 소식통은 “정부 일각에서 DJ 방북을 계기로 모종의 적극적인 대북 제안을 했고, 그 내용의 일부가 야당에 입수되었다는 얘기가 있다”라고 전했다. 정부와 여당이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칠 만한 대북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고, 야당이 그것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정보 소식통은 “약 한 달 전부터 여의도 정가에 그런 소문에 퍼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열린우리당이 대북 문제 외에는 판세를 반전시킬 카드가 없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남북 교통로 이은 뒤 2차 정상회담 추진

정부 내부 움직임에 밝은 한 소식통은 김 전 대통령의 열차 방북이 성공할 경우 정부는 이를 ‘6·15 체제 복원’의 계기로 삼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즉 핵문제 해결까지는 어렵지만, 남북 관계 복원을 위한 몇 가지 단계별 프로젝트는 가능하다고 낙관하는 분위기도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단계별 프로젝트의 1단계가 바로 개성 이북의 경의선 북쪽 구간에 대한 건설 프로젝트이다. 즉 한국의 자본과 기술·기업을 동원해 경의선 북쪽 구간의 현대화와 복선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정부 내에서 세워놓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북쪽의 경의선 구간은 남한과 전력 체계나 신호 체계가 달라 어려움이 있다. 남쪽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서 정비를 할 경우 앞으로는 남쪽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그는 지적했다.

경의선 개통이 1단계라면, 개성에서 평양까지 이어지는 6·15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2단계의 중장기적 계획이라고 한다.

 
이처럼 남북 교통로를 잇는 것을 근간으로 6·15 체제를 복원해 가면서, 상황을 보아가며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말 이해찬 총리와 정동영 장관, 그리고 12월 들어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 김대통령 방북을 설득했고, 또한 경의선을 타고 방북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이 당시 정동영 통일부장관이란 점도 뭔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을 뒷받침한다.    또한 이 와중에 ‘카터 정도의 역할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버텨오던 김 전 대통령이, 고집을 꺾고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한 것도 주목할 사항이다.

김 전 대통령의 국내외 위상과 상징성에서 볼 때, 뭔가 눈에 잡히는 확실한 성과가 없다면 결코 움직이려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연말부터 뭔가 자신감을 얻은 듯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은, “핵문제 해결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에 버금가는 성과를 뭔가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정부 일부의 생각대로 경의선 개통 및 복원을 앞당기기만 한다 해도 그것은 역사에 남을 업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러나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 내부에서 ‘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많았으나, 남쪽에서 북풍 논란이 일고, 또 남쪽 정부가 과연 5월 지방선거 이후에도 약속을 지킬 것인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최근 들어 힘을 받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즉 5월 지방선거라는 남쪽 잔치에 들러리만 서주고, 그에 상응하는 만큼 얻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최근 들어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하기도 한다. 남북의 혈맥을 잇는 경의선 개통이라는 대프로젝트가 또다시 국내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표류하는 게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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