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열리는 ‘부다페스트의 봄’
  • 金成進 통신원(부다페스트) ()
  • 승인 1989.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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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公産통치 끝낸 헝가리의 오늘과 내일
‘민주주의, 법치국가, 사회주의’-헝가리 사회주의 노동당(공산당)의 역사적인 제14차 전당대회가 열렸던 부다페스트 컨벤션센터 대회장 정면 단상에 내걸린 구호다. 헝가리는 이제 이 슬로건처럼 지난 40년의 과거를 역사의 한 페이지에 묻은 채 서구식 민주적 사회주의에로의 大長征에 올랐다.
  개혁의 기수 임레 포즈가이 국무장관은 개막연설에서 질과 양면에서 모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당을 창설할 것을 제의하고 앞으로 헝가리는 복수정당이 허용되는 多元主義 정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날부터 8일간 계속된 전당대회에 참석한 1천2백79명의 대의원들은 20년전 못다 핀 ‘그날의 봄’을 잊을 수 없었기에 손에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며 벅찬 감격을 가누지 못했다.
  물론 민주적 사회주의에로의 헝가리의 앞길을 놓고 일반국민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당 지도부 내에서도 결코 목소리가 하나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헝가리 정치전문가들은 당내 이견을 의례적이고 표피적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 서방 외교관은 “이미 당내에서는 포즈가 이를 대통령으로 하는 기본 골격에 잠정적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이들 지도층이 현시국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로 풀이했다.
  익명을 요구한 칼 마르크스大의 한 교수도 “헝가리 지도층들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親思考 외교를 한 축으로, 이에 따른 美⋅蘇간의 親데탕트를 다른 한 축으로 한 구조 위에 헝가리 개혁이 놓여있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 지도층은 자칫 내부적인 분열상이 잘못 전달될 경우 초래될지 모를 예기치 않은 결과를 직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헝가리는 소련과의 관계에서 ‘孤原의 촛불’같은 신세다. 헝가리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력과 천연가스의 90% 이상을 소련에서 직접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따라서 개혁추진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소련과의 마찰을 최대한 줄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것은 헝가리 개혁의 파장이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 때문에 일반 국민들의 反蘇감정도 상당한 정도에 이르고 있다. 헝가리 저개발의 원인이 소련의 對東歐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은 싼데 비해 공산품 가격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비싼 게 현실이다. 실제로 수퍼마켓(ABC)에 가보면 물건을 싸주거나 포장해주는 법이 없다. 종이나 비닐이 워낙 귀하기 때문이다. 보통 우유 1리터 짜리가 12포린트(1백20원상당)인 반면 큰 비닐 백은 84포린트를 호가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은 헝가리에서 상대적인 ‘우세’를 얻고 있다. 대체로 實利외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미국의 정책은 對헝가리 외교에도 예외를 두지 않고 있으며 원조 역시 체면유지 정도에 그치고 있다. 지난 7월 부시 美대통령의 헝가리 방문때에도 ‘립서비스’(lip service)로 일관했다는 점은 이를 잘 증명해준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호감은 대단하다. 지난 2일 실시된 89년도 미스 헝가리 선발대회 심사위원장을 마크 파머 駐헝가리 미국대사가 맡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어쨌든 헝가리 개혁의 물결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으나 그 장애물은 곳곳에 널려 있다.
  개방이 가속화됨에 따라 물가가 급격히 오르고 있다. 서구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동구권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ABC에 가면 같은 물건에 다른 가격이 2, 3개 붙여져 있는 것도 많다. 1년에 3번이상 인상되는 물건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 1년간 전차요금은 2포린트에서 5포린트로 1백50%, 버스요금은 3포린트에서 6포린트로 1백%가 인상됐다. 이에 따라 일반 국민들의 불만도 점점 고조되고 있다.
  이처럼 물가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동구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였던 지하경제가 점점 활성화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넵사 바드샤그>紙는 최근 사설을 통해 갖가지 ‘더러운 속임수’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암달러 시장도 이제 경찰이 손댈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또하나의 중요한 개혁의 방해물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헝가리인들의 정치적 무관심이다. 한 서방 외교관은 “오랜 기간 공산 권위주의에 순치된 듯한 면도 보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의 진원지가 권력의 상층부라는 구조적 문제”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하면 국민들은 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개혁의 부정적 영향이 시민생활 일반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경우 또 다른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 대의원으로 지난 20년간 헝가리 개혁을 주창해온 베렌드 헝가리 과학원 원장은 개혁물결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개혁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근거없는 슬로건이나 선동적 요소들까지 섞여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같은 부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출발은 틀리지 않았으며, 미래는 이러한 개혁 노력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아직 고쳐야 될 많은 일들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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