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황주성씨의 올 쌀농사
  • 김 당 기자 ()
  • 승인 1989.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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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20%는 올라야 본전치기다”
“수매가 책정에서 수틀리면 서울 올라가자고, 요새 모이기만 하면 모두들 날을 잡고 있어요. 전번처럼 여의도로 가든지, 종합청사로 가든지, 청와대로 가든지 간에 뭔가 결판을 낼 겁니다.”
  ‘보통 농사꾼이 매긴 올 쌀농사의 손익’을 셈해볼 깜냥으로 전국농민협회의 소개를 받아 찾아간 기자에게, 보통 농사꾼이 들려준 첫마디는 이미 ‘보통’의 수준을 넘어선 절박한 외침이었다.
  하기야 ‘보통’이란 단어가 이미 특별한 사람 앞에 나붙는 ‘수식어’로 전용된 지 오래이고 보면 농사꾼이라 해서 늘 보통의 수준을 유지하란 법은 없겠다. 그래도 농사짓기 힘들다고 푸념하면서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대줘 온 ‘선량한 농민’의 입에서 사뭇 그런 과격한 언사가 나오리라곤 예상치 못했었다. 어찌되었거나 보통 농사꾼의 범상치 않은 이 말 속에는, 정부에서 먼저 ‘선전포고’를 한 추곡수매가 한자리수 지키기 전략에 대한 농민들의 예사스럽지 않은 결기가 담겨 있음이 분명했다.
  남원에서 전주로 넘는 국도변에 자리잡은 南原군 德東면 沙栗리 栗川부락에서 5대째 농사를 지어온 黃星(68)씨는 보통 농사꾼이다. 다만 남다른 점이 있다면 가뭄에 콩나듯 귀한 생떼같은 젊은이, 그것도 번듯하게 대학에서 농학을 공부한 아들을 거느리고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나 할까. 칠남매 중 막내인 黃義東(30)씨는 대학을 마치자 곧바로 “농민 운동에 뜻을 두고” 농촌에 뛰어든 ‘5년차’ 농사꾼이다.
  황씨 부부와 아들 내외 그리고 작년에 본 손자까지 다섯 식구가 논 18마지기(3천6백평)와 밭 8백평을 부쳐 먹는다. 얼마 안되는 밭뙈기일망정 고추며 마늘이 전에는 쏠쏠하게 시겟돈 만져볼 꺼리가 됐는데 그러께부터 불어닥친 수입개방 회오리와 한해도 거르는 법이 없는 온갖 ‘파동’으로 밭농사를 작파한 지 오래라 그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쌀농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해서 올 농사가 죽인지 밥인지를 묻자 대뜸 하는 말이 “농사지어 수지타산 뽑아보면 뭐하느냐. 나오는 게 한숨이고 느느니 빚뿐인데”한다. 그러면서도 아들을 불러 앉혀 조목조목 부르는데 그 아들 또한 요모조모로 따지며 받아적는 품이 가닥이 잡혀있어 여간 깐깐해 뵈지 않는다. 단도직입으로 말해 수매가가 적어도 10만6천1백19원(80kg 기준)은 돼야 본전치기라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에 견주어 돈으로 2만원, 백분율로 20% 남짓 올라야 한다는 셈이다. 생산비 내역을 추스르면 우선 18마지기에 든 종잣값이 6만원, 비료대가 유⋅무기질을 합쳐 51만원, 농약비가 38만원이다. 갈수록 병충해가 심해 볍씨 소독에서부터 거둘 때까지 수십번 농약을 쳐야 하는데 올해는 목도열병이 도져 농약을 ‘나수이’ 뿌렸다. 낫이며 팽이 같은 소농구비는 수명을 5년으로 잡고 감가상각해 5천원, 주로 못자리 설치에 든 비닐이며 이앙기판 따위를 셈한 기타재료비가 7만6천원, 이앙기, 경운기, 콤바인 등의 대농기구 수리⋅유지 및 임차료가 70만6천원, 가뭄에 물을 대는 수리시설 유지비가 8만6천원, 경운기를 못대는 수렁배미논에 사흘간 소를 빌려쓴 값인 축력비가 2만원, 촌구석에 살아도 어김없이 날아드는 각종 조세공과금이 3만원이다.
  거기다 조금은 진지한 계산이 필요한 노력비는, 쏟은 정성까지 따진다면 돈으로 다 셈할수 없지만, 돈을 주고도 얻기 힘든 놉꾼들 삯과 놉꾼의 먹새로 1백13만8천원을 쳤다. 그밖에 토지용역비가, 이녁 몫인 3마지기를 뺀 자식들 몫 15마지기를 소작줄 때 받을 한가마 값(지난해 수매가 8만6천원)으로 곱해 셈하니 1백27만5천원, 그보다 계산이 훨씬 더 복잡한 자본용역비는 27만8천원이다. 일반벼논과 통일벼논을 대충 어울러 셈한 것이라 딱 들어맞진 않겠지만 계산대로라면 올 수매가가 10만6천1백19원은 돼야 본전을 건지게 된다.
  황씨 부자가 거둔 나락은 통일벼가 11마지기에서 40kg 기준으로 125가마, 일반벼가 7마지기에서 60가마이다. 황씨 부자가 올 1년 한결같이 새벽 6시면 일어나 볍씨를 담그고, 모를 심고 김을 매고, 농약 치고 피 뽑고, 가물면 물 대고 큰물지면 물 빼고, 비료를 뿌리고도 성이 안차 땀으로 흠뻑 적신 논 18마지기에서 거든 나락이 1백 85가마(40kg들이). 굳이 돈으로 환산하면 농민단체에서 요구하는, 작년보다 41% 오른 값인 4만3천86원으로 셈해도 8백만원이 채 안된다.
  거둔 나락을 금새로 죄다 수매한다 해도 그중 5백만원을 생산비로 치고 나머지를 순수익으로 셈하면 나중에 이 글을 읽을 황씨가 웃어 넘기지는 않을는지⋅⋅⋅. 사람 좋은 황씨 부자를 최루탄 냄새로 그득할 여의도 광장에서 만나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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