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성폭력, 기는 처벌 딸들의 비명’ 그칠 날 없다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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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여자 어린이가 성폭행범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뒤 온갖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실적 대안이 될지는 의문스럽다.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1년부터 6개월에 한 번씩 아홉 차례에 걸쳐 청소년위원회가 신상을 공개한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수는 4천6백24명이다. 이들은 죄질이 나쁜 공개 대상 1만90명 가운데서도 신상공개 심의위원들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 특히나 죄가 무겁다고 판정한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1994년 미국의 15개 주 교도소에서 출소한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4천2백95명의 평균 재소 기간이 약 8년이란 사실을 참고한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청소년위원회가 신상 공개를 시작한 지 이제 4년 남짓이니까 미국의 예를 염두에 둔다면 이들 대부분은 아직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다.

죄질 나쁜 성범죄자 63%가 풀려나

하지만 현실은 의표를 찌른다. 이들 4천6백24명 가운데 62.7%인 2천8백98명이 집행유예 나 벌금형을 받고 바로 풀려났다. 청소년위원회 신상공개 심사위원들에 따르면 실형을 받은 1천7백25명 가운데서도 중형을 받은 경우는 많지 않다. 결국 지난 4년 사이 청소년을 상대로 몹쓸 짓을 벌인 어른들 대부분은 지금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신상이 공개된 뒤 주소지를 바꿔버린 상당수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최근 서울 용산에서 상습적인 아동 성폭행범에 의해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어린이가 무참하게 살해된 뒤에야 책임 있는 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청소년 통금제를 실시하겠다(법무부), 성범죄자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거나 화학적 거세를 하겠다, 성범죄자 집에 문패를 달겠다(이상 국회의원들), 주민들에게 우편으로 성범죄자의 상세 정보를 제공하겠다(여성가족부)는 등 기발하거나 과격한 주장들이 넘친다. 하지만 이들이 내놓는 주장들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즉흥적이어서 과연 이들이 문제를 냉정하게 파악하고는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이들의 주장은 기지도 못하면서 날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사법부가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에 대해 재벌 오너들에 못지않게 관대하다는 점이다. 죄질이 나쁜 신상 공개 대상자도 거의 4명 중 3명은 풀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그보다 경미한 범죄자들은 거의 모두 다 법망에서 빠져나간다고 보는 게 옳다. 법망에 걸려야 전자 팔찌를 채우든 화학적 거세를 할 것 아닌가. 결국 나중에 합헌 판정이 나긴 했지만 헌법재판소 판정 과정에서는 지금 수준의 신상 공개조차도 위헌이라는 의견이 우세했었다고 한다.

 
 
   
   
 
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보수적 태도와 국가인권위와 시민단체의 견제로 신상공개제도는 항상 원안보다 축소되는 길을 걸어왔다. 현재 청소년위원회는 성범죄자의 성명, 시·군·구까지의 주소, 직업, 범죄 사실 개요를 관보 및 인터넷에 연 2회 공개하고 있다. 그리고 오는 6월30일부터는 성폭력 재범자의 사진, 실제 거주지와 근무지의 상세 주소 등을 5년간 청소년위원회에 등록하고, 피해 청소년 및 가족과 청소년 관련 교육기관의 장 등에 한해 열람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완할 예정이다. 본래 청소년위원회는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제도를 원했으나 관련 부처나 시민단체들과 숱한 논쟁을 통해 합의에 이른 것이다. 현재 백가쟁명식 대책을 내놓고 있는 각 부처나 국회의원들은 이런 과정을 모두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논의를 다시 시작하자는 것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6월에 보완한다고는 하지만 현행 신상공개제도가 청소년 대상 범죄를 억제하는 데 과연 효과적인지는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수치심을 유발하는 데 그치는 지금 제도는 대졸자들이 많아 화이트 범죄라고 불리기도 하는 성매매 억제에는 유효할지 모르지만 강제 추행이나 강간과 같은 성폭력을 예방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특히 12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강간이나 강제 추행은 면식범 소행인 경우가 많다. 2005년 6월20일 청소년위원회의 8차 신상 공개 자료에 따르면 교사·학원강사·유치원 운전기사 등 어린이들을 직접 지도하거나 가르치는 사람들이 저지른 성폭력이 21건에 달했다. 또한 공동주택 경비원이 저지른 범죄도 10건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에게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게 한다든가, 경비실에 열쇠를 맡겨놓고 아이에게 찾아가라고 하는 등의 행위는 삼가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아이가 직·간접으로 가해자의 보호 하에 있는 경우에는 피해가 몇 달, 심하면 몇 년이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위원회가 6월에 성폭력 재범자 상세 정보를 청소년 단체·교육기관의 장에 한해 열람할 수 있도록 보완한 것은 청소년 교육기관에서 상습범들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다. 이 보완책에 따르면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는 청소년 교육 시설에 5년간 취업할 수 없다. 청소년위원회는 이번 용산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 교육기관 종사자뿐만 아니라 아파트 관리인이나 경비원, 그리고 청소년 대상 병원 종사자들에게 성범죄 경력이 있지는 않은지 주민들이 쉽게 조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좀더 강화하기를 원한다.

청소년 상대 성범죄자 기초 자료도 부실
 
놀랍게도 교사나 학원 강사, 아파트 경비원 못지않게 청소년들에게 위협적인 사람은 그들의 친부이다. 청소년위원회가 지금까지 신상을 공개한 강간, 강제추행 등 성폭행 범죄 총 3천8백93건 중 10%인 3백90건을 피해자의 친부, 의부, 어머니의 동거인이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3백90건 중 가장 많은 49%인 191건은 친부가 저지른 것이었다. 피해자 수는 4백39명으로 가해자 수보다 훨씬 많은데 이는 자매가 함께 당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가해자가 친부인 경우, 피해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 오랜 기간 지속되므로 그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대책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이나 친어머니마저 묵인하는 경우가 많아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피해자의 53.1%는 어머니에게 최초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고, 어머니에게 알린 이후에도 30%는 부모와 여전히 동거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법률에 친권의 제한 및 박탈에 대한 근거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국가가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교사나 아파트 경비원 등에 의한 피해가 6.8%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친부 등에 의한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지난 4년 동안의 신상 공개를 통해 전에 비할 수 없이 많은 정보를 축적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청소년 상대 범죄자에 대한 기초 자료가 부실하다. 국가인권위의 관계자는 지난 2월22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청소년 상대 성범죄자들의 동일 범죄 재범율이 7%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 장하진 여성가족부장관은 청소년 상대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83.4%에 달한다고 밝히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국가 기관의 책임 있는 담당자들의 말이 왜 이렇게 크게 다른 것일까. 정답은 ‘아직도 우리 나라에선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들의 행적을 수년간 추적해 그들의 행태를 조사한 신뢰할 만한 자료가 없다’이다. 지난해 경찰청은 성범죄 재범률은 16.1%에 달한다고 발표했는데 그것이 아마도 가장 진실에 근접한 수치일 것이다.

1996년 7세 소녀가 옆집에 이사온 성폭력범에 의해 살해당했을 때 미국은 청소년 상대 범죄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 소녀의 이름을 딴 메건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은 이 법에 서명하면서 “자녀를 사랑과 안전 속에서 키우려는 부모의 권리보다 더 큰 인권은 없다”라고 선언했다. 2004년 여덟 살 어린이가 성폭력 전과자에 의해 유괴되어 살해된 이후 일본도 가해자에 대한 정보를 세밀하게 추적 관리한다.

우리 사회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청소년 상대 범죄에 대한 법원 판례, 수년간의 가해자의 행적, 친부 범죄에 대한 정밀한 정보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처를 해야 하는지 쉽게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김00(45):1983년 강간 치상으로 징역 5년, 1992년 강제추행으로 징역 4년, 1997년 미성년자 강제추행으로 징역 5년, 2003년 11월 여자 어린이 강간으로 징역 2년6개월 확정.

청소년위원회에는 이처럼 출소하기만 하면 반드시 청소년 성추행을 벌이는 상습범 수십명의 명단이 있는데 지금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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