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혈관은 안녕하십니까?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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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4명 중 1명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 ‘발병 인자’ 피하고 적당한 운동·식사해야 예방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가 열리던 지난 2월26일 새벽,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배 아무개씨(70)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쇼트트랙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보다 너무나 흥분했던 그에게 심장마비가 찾아온 것이다. 이보다 열흘 전인 2월16일, 경남 창원공단 근처에서 회사원 이 아무개씨(44)가 마라톤 연습을 하다 쓰러졌다. 쓰러진 직후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지만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이씨는 급성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심장마비와 같은 심장 돌연사는 예고도 없이 목숨을 앗아간다. 손쓸 시간도 허락하지 않다. 심근경색이 생기면 둘 중 하나는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에 급사하거나 응급처치를 해도 이미 심장 근육이 다 파괴되어 사망한다. 게다가 나이를 가려서 찾아오는 불청객도 아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그것도 멀쩡하게 운동하러 나갔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문제는 이 같은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인 4명 중 1명은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다. 4인 가족 중 한 사람은 협심증·심근경색·뇌졸중과 같은 심혈관 질환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고대구로병원 심혈관센터 서홍석 교수는 “목숨을 구하는 열쇠는 혈관이 쥐고 있다”라고 말했다. 심혈관 질환은 대부분 혈관이 건강하지 못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심장은 매일 약 10만 번 이상 뛰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심장이 끊임없이 운동하기 위해서는 혈액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혈액은 각종 영양분과 산소를 온몸 구석구석에 실어 나르고, 혈관은 그 혈액의 통로 구실을 한다. 도로가 망가지면 자동차가 지나갈 수 없듯 혈관에 이상이 생기면 혈액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콜레스테롤 같은 노폐물이 혈관 벽 파괴

예컨대, 혈관에 콜레스테롤 같은 노폐물이 달라붙으면 혈관 벽이 돌처럼 딱딱해진다. 동맥경화 현상이다. 혈관의 매끄러운 내벽에 상처가 생기면 노폐물은 더 잘 달라붙는다. 달라붙은 노폐물은 섬유처럼 딱딱해지고, 이것이 생기는 만큼 혈관의 지름은 좁아지게 마련이다. 혈관에 달라붙은 노폐물은 혈관에 염증 세포를 만들고 혈관 벽을 공격해 파괴하기도 한다. 혈관이 좁아지거나 파괴되면 혈액이 맘껏 흐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혈액을 공급받지 못한 사람의 신체 조직은 손상을 입어 치명적인 질환이 발생한다. 동맥경화증으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면 협심증이 생긴다. 혈관이 완전히 막히면 심장근육의 일부가 손상을 입어 심근경색증이 발생하거나 치명적인 부정맥이 발생하여 급사를 할 수도 있다. 동맥경화 현상이 뇌혈관에 생기면 뇌졸중을 일으킨다.

문제는 이런 동맥경화 현상을 누구도 완전하게 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혈관은 나이와 함께 늙어가고, 스무 살이 지나면 누구나 동맥경화가 진행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속에 동맥경화라는 시한폭탄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이 시한폭탄이 나이보다 훨씬 빨리 찾아와 ‘새파란’ 나이에 죽음을 맞게 한다. 동맥경화 속도를 높이는 위험 인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흡연·고지혈증·고혈압·당뇨병·비만·스트레스·관상동맥질환 가족력·연령 등이다.

이 위험 인자 가운데서도 흡연·고지혈증·고혈압·당뇨병이 특히 위험하다. 혈압이 높을수록 혈관 내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혈관 내피 세포가 많이 손상되고, 혈관에 달라붙는 노폐물의 양이 증가하므로 고혈압은 동맥경화증을 부추긴다. 담배 속에 들어 있는 약 4천 가지 화학물질은 혈관을 보호하는 혈관 내막을 파괴하고, 혈관 벽에 상처를 낸다. 흡연은 동맥경화증을 억제하는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줄이고, 대신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중성 지방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혈액 내에 지방이 많은 고지혈증은 혈관을 낡게 하고 원활한 혈류를 방해한다. 또 혈액 속에 당 성분이 높으면 혈관 내막에 손상을 주기 때문에 당뇨병은 동맥경화증을 일으키기 쉽다.

흡연·고혈압·당뇨병 특히 위험한 발병 인자

 
특히 이런 위험 인자들이 모일 때 위험성은 더 높아진다. 예컨대, 당뇨병 환자는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의 수치가 높고, 당뇨병 환자의 반 이상이 고혈압을 지니고 있다. 또 혈압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 가능성이 6~7배나 높다.

한국의 경우 지난 10년간 관상동맥 질환이 78%나 증가했고, 남성의 경우 100% 가까이 늘었다.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지난 30년 동안 30% 이상 감소한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종구심장내과 이종구 원장은 혈관 건강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종구 원장은 “선진국은 혈관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 인자를 잘 관리해 질병을 적극 예방하고 치료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 위험성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생활 습관마저 혈관 건강에 나쁜 쪽으로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가운데서 위험 인자만 더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고혈압의 경우를 보자. 30세 이상 한국인 열 명 가운데 세 명 이상이 고혈압 환자일 정도로, 고혈압은 흔한 질병이다. 흔하기 때문일까. 고혈압을 질병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 방성군씨(68)도 평소 혈압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혈압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3년 전 갑자기 쓰러져 병원을 찾았다. 방씨는 “병원을 찾은 뒤에야 고혈압이 얼마나 심각하고 무서운 질병을 불러올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운동하고 약 먹으면서 혈압을 관리해 다른 합병증을 예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구강 내 박테리아, 혈액 염증 일으킬 수도

미국의 경우 고혈압 환자의 절반 이상이 혈압 조절에 성공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4분의 1(남자) 또는 3분의 1(여성)만이 혈압을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방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국내 당뇨병 환자는 4백만명 이상이다. 또 한국인 남성의 약 60%가 흡연자다. 한국인의 상당수가 째각째각 작동 중인 시한폭탄의 초침을 최후의 순간으로 몰아대는 형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혈압이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와 같은 혈관 건강을 자신할 수 있는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 이제부터라도 혈관 건강에 신경 써보자. 우선 자신의 혈관이 얼마나 깨끗하고 건강한지 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대부분 1~2년에 한번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았을 것이다. 책상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던 건강 검진표를 꺼내 보자.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수치만 찾아내면 자신의 혈관 건강 상태를 집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미국 국립 심장·폐 및 혈액 연구소에서는 향후 10년 뒤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잠재적 위험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할 수 있는 표를 만들었다. 이 표대로 자신의 건강검진표에 나와 있는 수치들을 입력해 보면 10년 후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다(표 참조). 예컨대, 55세이고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120 mg/dl이며 혈압은 140/90이고 흡연하는 상태라면, 총점은 8점이 된다. 이는 10년 후에 관상동맥 질환이 발생할 위험도가 18%라는 것을 뜻한다. 20%가 넘으면 병원을 찾아가 관리를 받아야 할 매우 위험한 상태이다. 10%만 넘어도 경계해야 한다.

혈관 상태를 점검해 본 뒤에는 혈관 건강에 좋은 생활 습관에 익숙해져야 한다. 부산대 약대 정해영 교수는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적게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며 항산화제를 복용하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콜레스테롤이 적은 음식 위주로 부족한 듯 먹고, 혈관 세포의 변성을 막아주는 항산화제를 섭취하면 그만큼 혈관에 노폐물이 쌓이는 것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한 시간씩 빨리 걷기 운동, 자전거 타기, 수영을 하는 것이 좋다. 적절한 운동은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혈액 순환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운동은 피의 흐름을 좋게 하여 혈관 벽을 자극함으로써 마사지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울트라마라톤이나 과도한 등산과 같은 심한 운동은 오히려 혈관 건강을 해칠 수 있다.

혈관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치아 건강에도 유의해야 한다. 치아와 잇몸 사이에 축적되는 박테리아가 심장으로 흐르는 피에 섞여 들어가 염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자들은 혈관에 이상이 생겨 얻게 되는 질병 대부분이 편하고 호사스럽게 산 대가라고 말한다. 사시사철 산해진미를 풍성하게 먹으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데서 오는 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활을 조금은 불편하고 부족한 듯 바꾸는 것이 혈관 건강을 지키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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