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눈 맞추는 대학생 필독서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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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학습용 만화로 ‘리모델링’

 
어느 시대에나 당대를 대표하는 ‘커리’라는게 있다. ‘커리’는 커리큘럼의 약자로 대학 신입생들에게 선배들이 권하는 필독서를 말한다. 1970년대에는 <전환시대의 논리>가, 1980년대에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나 이진경의 저작 등이 커리의 전성 시대를 연 대표작들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문화 서적이 커리 목록을 대체했다. 1994년 출간된 <미학 오디세이>가 좋은 예다. 지금은 시사 논객이 된 진중권씨가 대학원생 시절 ‘독일 유학비를 벌기 위해’ 썼다는 이 책은, 난해한 미학·철학 이론을 작가 특유의 유머와 맛깔나는 문장으로 풀어 교양에 목마른 대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었다.

‘대학생 커리’의 제왕 <미학 오디세이>가 앞으로는 ‘중·고등학생 커리’가 될 것 같다. ‘만화로 보는 미학 오디세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현재 3권까지 출간된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를 현태준·이우일·김태권 등 작가 세 명이 각각 나누어 맡아 각색하고 있으며, 빠르면 5월 초순 출간된다.
교양 서적을 학습 만화로 탈바꿈시키는 일이야 종종 있지만, 세 명의 작가가 독립적으로 분담해 그리는 풍경은 실험에 가깝다. 화풍도 다르고 철학도 달라 3인 3색이다.
1권 각색을 맡은 현태준씨(41)는 <뿔랄라 대행진>에서 유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을 선보인 작가다. 현씨의 미학 해설은 마치 아동 문학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려운 용어나 발음하기 힘든 철학자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플라똥’으로, 비윰 카르텐은 ‘밤 카텐’으로 불린다. 그는 “원작에서 조금 어렵다 싶은 부분은 아예 생략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중견 만화작가 ‘3인3색 각색’ 눈길

 
2권 각색을 맡은 이우일씨(37)는 <시사저널> <씨네21> <노빈손 시리즈> 등에 감각적인(혹은 엽기적인) 삽화를 그려온 인기 작가다. 이씨의 각색 철학은 현씨와 정반대다. 이씨는 “가급적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려 했다. 진중권씨가 재해석한 철학 이론을 내가 다시 재해석하면 ‘오독’의 소지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이씨 작품에는 아예 2권 일부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따다 붙인 장면도 있다. 원작 문장의 풍류를 살리기 위해서다.

3권 각색을 맡은 김태권씨(32)는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로 지식 만화에 새 지평을 연 신세대 작가다. ‘김태’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연재된 <십자군 이야기>는 세계사를 보는 참신한 시각과 함께 이라크 전쟁과 십자군 전쟁에 대한 풍자와 블랙 유머로 화제가 되었다. 김씨가 맡은 3권은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 중 가장 난해한 포스트 모더니즘을 소개하는 부분인데, 미학을 전공한 김씨의 재해석이 기대된다.

 
만화 오디세이 프로젝트에 대해 원작자 진중권씨는 “만화화는 새로운 창작 작업이어서 내가 간섭할 영역이 못된다. 활자 매체가 퇴조하면서 말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출판 미디어가 변화하는 현상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판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 휴머니스트측은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주요 독자층을 중·고등학생으로 잡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학 오디세이>는 초판 발행 이후 지금까지 50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12년째 장수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도서 판매 사이트 알라딘에 따르면 <미학 오디세이 4권 세트>는 2006년 3월 현재 예술·대중문화 분야 4위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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