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무서워 금산법 못 담그나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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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안, 순환출자구조 제재에 소극적…“차기 정권에 떠넘길 의도”
 
“현 정권이 차기 정권으로 금산법이라는 ‘똥볼’을 찼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가 지난 2월27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를 통과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을 놓고 한 말이다.  금산법 정부안을 만드는 데 깊숙이 관여한 이 관료는 ‘현 정부가 삼성그룹의 순환 출자 구조를 끊으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차기 정권으로 떠넘겼다’고 지적한 것이다. 당초 금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생명·삼성카드·삼성화재 같은 삼성그룹 계열 금융사가 갖고 있는 비금융 계열사(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 지분 가운데 5%를 초과하는 주식을 팔거나 의결권을 제한받으므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일반적 분석과 배치되는 것이다. 

금산법 개정안의 골자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5%가운데 5%를 초과한 2.25%에 대해 2년 후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것과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 가운데 5%를 초과한 20.64%의 의결권을 즉시 제한하고 유예 기간 5년에 걸쳐 자발적으로 팔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초 금산법 개정 작업을 주도한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안과는 거리가 있다. 두 의원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5% 초과 지분을 강제 매각하는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여야 합의 과정에서 무산되었다. 또 삼성카드 초과 지분은 강제 매각하되 삼성생명 초과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즉시 제한하자는 여당의 ‘분리 대응안’에서도 후퇴한 것이다.

재경부 고위 관료는 “정부·여당이 삼성그룹의 순환 출자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금산법을 개정할 의지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금산법 개정안이 국회 재경위원회 산하 금융소위에 계류되어 있을 때 법안 통과를 주도해야 할 여당은 명쾌하게 당론을 결정하지 못했다. ‘분리 대응안’을 ‘권고적 당론’으로 가까스레 정하기는 했으나 소속 국회의원들은 이 애매모호한 당론에 개의치 않고 투표해도 무방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 이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초과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2년 유예하고 삼성카드가 가진 에버랜드 초과 지분에 대해 5년 유예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회 재경위 소속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2년 후 참여정부 임기가 끝나고 5년 후에는 누가 어떻게 집권할지 모르는데 이 법이 어떻게 결론날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냉소했다. 재경부 고위 관료도 “2년 후 국회 다수당이 금산법을 재개정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 관료는 “삼성그룹이 지금까지 관료와 정치권에 쌓아놓은 공든 탑이 (이번 정권 말기에) 위력을 발휘하지 않겠느냐”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가장 크게 논란이 일고 있는 조항은 삼성생명이 초과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공정거래법 11조 적용이다. 국회 재경위 소속 금융소위는 개정안을 심의하면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5% 초과 지분은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되 그 적용을 2년간 유예하고 이 법 시행 후 2년이 경과한 날로부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제11조를 적용한다’라는 조항을 삽입했다.

삼성, 금융지주회사법 남아 있어 ‘산 넘어 산’

공정거래법 11조는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금융사들이 보유한 계열 회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15%(특수관계인 포함)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재경부 고위 관료는 “지금도 이미 삼성그룹은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으로 분류되어 있어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카드는 이 조항의 적용을 받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초과 지분의 의결권을 2년 뒤부터 공정거래법 11조를 적용해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심상정 의원도 “금융소위에서 공정거래법 11조 규정을 끌어들였다. 이것은 시장 개혁 3개년 로드맵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공정거래법의 후퇴를 염두에 둔 꼼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심의원이 지난 2월27일 재경위 표결에서 금산법 개정안에 반대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박영선 의원도 “지금 공정거래법 11조가 실행되고 있는 와중에 2년 후 의결권을 다시 공정거래법 11조를 적용해 제한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여야 합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삽입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금산법 개정 작업을 용두사미로 마치려 하는 것은 그만큼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위헌 시비야 이해 당사자인 삼성그룹이 헌법소원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재계가 끊임없이 반발했고 이들이 제기하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일어날 가능성을 크게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본 회의를 통과하지 못해 국회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는 금산법 개정안은 4월 임시국회에서는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재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금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금산법이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을 내심 반기면서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는 해석마저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 고위 인사들은 금산법 개정안이 국회 재경위에서 심의되고 있을 때에도 평소 친분이 있는 정·관계 인사와 접촉을 끊었다는 후문이다. 구설에 오를 수 있는 행위는 아예 하지 않겠다는 뜻이지만, 평소 정·관계 인사와 쌓은 교분이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휘할 것이므로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은 대신 국민 여론을 반전시키는 작업에 몰두했다. 삼성그룹은 지난 3월8일 구조조정본부를 전략기획실로 이름을 바꾸고 인원을 1백46명에서 99명으로 줄였다고 발표했다.

 
삼성그룹은 금산법이라는 암초를 피했지만 금융지주회사법이라는 또 다른 난관에 직면할 듯하다. 현행 규정에는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계열사 삼성생명 지분이 자산의 절반이 넘으면 금융지주회사로 편입된다. 이렇게 되면 에버랜드는 삼성전자·삼성물산을 비롯한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모두 팔아야 한다. ‘이건희 왕국’을 지탱한 순환 출자 구조가 붕괴되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지금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시가(지분법)가 아니라 구입 원가(원가법)로 회계 처리해 삼성생명 자산 규모를 편법으로 줄이고 있다. 따라서 정부·여당이 회계 지침을 원가법이 아니라 지분법으로 바꾸게끔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하면 삼성그룹은 대재앙을 맞게 된다. 거의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부려 금산법 위기에서 벗어난 삼성그룹이 앞으로 금융지주회사법이라는 재앙의 불씨를 어떻게 없앨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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