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 시대
  • 이윤삼 편집국장 (yslee@sisapress.com)
  • 승인 2006.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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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대학이 얼마 전 대통령학을 전공한 학자들에게 역대 대통령 43명 중 가장 큰 잘못을 범한 대통령을 꼽으라고 했다. 무엇이 최악의 실책이었는지를 드러내 다음 대통령들에게 교훈을 주자는 의도였다. 전쟁에 개입했거나, 섹스 스캔들 등에 연루된 대통령 열 명이 불명예를 안았다. 그 중에는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도 들어 있다.

닉슨이 범한 가장 큰 잘못은 거짓말이었다. 닉슨은 1972년 공화당 후보로서 대통령 재선에 도전했다. 선거 와중에 비밀 공작팀이 민주당 후보 캠프를 도청하려다 발각되는 사건이 터졌다. 닉슨은 처음에 도청 사건과 백악관의 관계를 부인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의 끈질긴 추적으로 그의 거짓말은 들통이 났다. 닉슨 자신이 사건 은폐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 국민을 분노하게 한 것은 도청 자체보다 그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데 있었다. 결국 그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는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수상도 사실을 은폐하려다 역풍을 맞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1974년 10월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기자가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이라는 기사를 썼다. 다나카 수상은 천문학적 단위의 금권을 휘두르며 수십 년간 일본 정치를 주물렀던 실력자였다. 그의 저택에는 한 마리에 100만 엔이나 하는 잉어가 떼지어 다녔다. 의혹은 ‘금맥’ 쪽에 집중되었다. 검은 정치 자금의 비밀과 조성 과정, 후원금을 낸 기업들이 누리는 혜택, 후원금 허위 신고 내역 등이 폭로되었다.

문제는 다나카 수상의 대응 방식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기사에 나온 의문들을 해명했지만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켰다. 하나 둘씩 거짓말이 들통나자 그는 보도된 지 45일 만에 총리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이 계속 커지고 있다. 고위 공직자들의 거짓말이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골프 모임의 성격, 참석자와 관련한 총리실의 첫 번째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기우 교육부 차관은 물론, 전날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문제의 기업인도 이총리와 함께 골프를 했다. 김평수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도 말을 자꾸 바꾸고 있다.

여기자를 성추행한 최연희 의원도 넓게 보아 은폐 행렬에 가담하고 있다. 그는 아예 모습을 감추었다. 최의원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의원직 사퇴를 결심한 것처럼 얘기하다가 ‘3·1절 골프 파문’ 때문인지 태도를 바꾼 듯하다. 뒤로는 지역 유지들에게 구원을 요청했다는 구설에 올랐다.

은폐는 더 큰 은폐를 낳는다. 결국 거짓말은 밝혀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가 고위공직자의 말을 따를 것이며, 누가 정부 정책을 믿을 것인가. 거짓의 커튼을 걷고 하루빨리 진상을 국민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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