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한류를 등에 업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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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업’ 확장에 한국 영상물 적극 활용…세계 겨냥한 ‘뉴 미디어 제국’ 꿈꿔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명문 구단인 다이에 호크스를 인수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름을 바꾸고 구단주로 취임한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이 내세운 취임 일성은 독특했다. “구단을 한국 드라마처럼 운영하겠다”라는 것이었다. ‘1억인 감독론’으로도 불리는 손사장의 이 구상은 투수 교체 등 경기의 중요한 국면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팬들의 의견을 받아 구단을 꾸려가겠다는 것이다.

손사장의 구상이 의도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기고도 팬에게 욕을 먹는 경기를 하기보다는 지더라도 팬을 만족시키는 경기를 하겠다’라는 것이 그의 복안이었다. 이는 손사장다운 혜안이 돋보이는 일화다. 그때까지 한국 드라마는, 비록 재미는 있지만 졸속으로 제작되고 특히 그때그때 시청자 반응에 따라서 이야기 전개가 달라지는 것이 문제로만  지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사장은 역으로 그 점이 바로 한국 드라마의 강점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손사장이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인과 장모 때문이다. 일본에 한국 드라마가 처음 방영되기 시작할 때부터 팬이 된 부인과 장모를 따라 그도 한국 드라마에 재미를 들이게 되었다. 그는 <겨울연가> 같은 몇몇 드라마는 중요한 장면의 대사를 거의 다 외울 만큼 한국 드라마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단순한 취미 차원을 넘어 사업으로까지 승화시켰다.

2000년대 들어서 소프트뱅크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초고속 인터넷망인 ADSL 브로드밴드를 구축하는 사업이었다. 일본 최대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인 NTT에 대항해 벌인 이 사업에 그는 그룹의 사활을 걸었다. 야후BB라는 이름의 브로드밴드 사업은 소프트뱅크를 좌초시킬 최악의 투자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2004년부터 흑자로 전환되면서 그룹의 효자 사업이 되었다.

야후BB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류 콘텐츠였다. 역시 손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야후재팬에 올려진 한류 콘텐츠는 야후BB를 통해 각 가정에 전달되면서 한류 콘텐츠 수입업자들의 큰 수입원이 되었다. 물론 역으로 한류 콘텐츠는 야후BB가 안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위기를 맞았던 소프트뱅크의 전환점이 된 브로드밴드 사업에 한류 콘텐츠가 중심 역할을 한 것이다. 

 
손사장은 한류 콘텐츠를 다루는 기업 중에서도 한 기업에 주목했다. 바로 욘사마 배용준의 일본 내 활동을 관리하고 있는 인터렉티브미디어믹스(IMX)라는 곳이었다. 야후재팬에서 한국 드라마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를 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던 IMX는 한류를 초기에 확산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업체이다. 손사장은 한류를 개척한 IMX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1백30억원이라는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배용준씨와 공동으로 ‘키이스트’ 설립

손사장과 IMX를 이어준 사람은 바로 배용준씨였다. 배씨와 만난 손사장은 안정적인 한류를 위한 시스템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IMX를 그 주체로 세우기로 의기투합했다. 배용준씨의 소속사 BOF 역시 손사장과 함께 IMX에 투자했다. 주목할 점은 IMX에 대한 소프트뱅크의 투자가 게임을 빼면 콘텐츠 자체에 투자한 것으로는 첫 사례라는 점이다.

손사장과 IMX 그리고 BOF의 파트너십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더 큰 그림을 그렸다. 코스닥 기업인 오트윈테크를 인수해 ‘키이스트’를 세워 이 회사를 아시아 콘텐츠 산업의 중심으로 육성하기로 한 것이다. ‘BIS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키이스트의 설립을 위해 배용준씨가 90억원, IMX가 10억원, 소프트뱅크 계열사가 30억원을 투자했다. 이로써 소프트뱅크는 한류 비즈니스를 위한 포석을 완성했다.

그간 소프트뱅크가 해왔던 막대한 투자 사업과 비교해 볼 때 이번 투자는 미미해 보일 수도 있다. 자회사만 2백여 개, 관계 회사 100여 개, 투자 회사 8백여 개를 두고 있는 소프트뱅크는 정보기술(IT)의 우주에서 거대한 성운을 이루고 있다. 한국에만도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회사가 40여 곳이다. 그러나 이 신사업을 위해 손사장이 직접 움직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사장은 배용준씨를 비롯해 IMX 손일형 대표를 만나며 투자를 진두 지휘했다.

손사장은 한국을 방문해 방송 3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 방문은 단순한 콘텐츠 확보 차원만은 아니었다. 그는 방송사 인터넷 사업부를 찾아 둘러보았다. 방송 콘텐츠의 인터넷 비즈니스 모형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드라마를 거의 동시에 인터넷으로 서비스하면서도 본방송 시청률이 영향을 받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야후재팬과 합작하여 TV뱅크를 설립하여 인터넷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었던 그는 일본 방송사의 우려를 씻어낼 수 있는 성공 모형이 필요했다. 그에게 한국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였다.

언제부터인가 신사업을 구상할 때 손사장은 한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간부회의에서도 그는 틈만 나면 ‘한국을 바라보라’고 주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얼마 전까지 ‘미국을 보라’고 말했던 것과 대비된다. 미국에서 시작된 트렌드는 반드시 일본에서도 재현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타임머신 전략’이라 불리는 이 시간차 비즈니스로 그는 그동안 큰 성공을 맛보았다. 

소프트뱅크 창립 25주년이 되는 올해, 그의 시선은 한국에 고정되어 있다. ‘뉴 타임머신 전략’이라 불리는 이 전략은 한국의 IT산업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일본 시장, 그리고 중국·인도 등 아시아 시장, 더 나아가 유럽과 미국 시장에 구현한다는 것이다. ‘타임머신 전략’을 위해 실리콘밸리의 기업들과 조인트 벤처(합작 투자) 회사를 만들던 그는 이제 그 대상을 한국에서 물색하고 있다. 

손사장이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이 세계 IT 시장의 테스트 베드(시험대)라는 점이다.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산업의 흐름이다. 갖은 비아냥을 들으면서 1조원을 들여 세계 최대 IT 박람회인 컴덱스 쇼를 사들인 것도 흐름을 쥐기 위해서였다. 그는 유비쿼터스 시대로 가는 관문이 바로 한국이라고 보고 있다. 메신저 아바타가 팔리고 사이버 커뮤니티에서 도토리 화폐가 유통되고 있는 한국을 통해서 어떤 사업이 타당성이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손사장이 주의 깊게 보는 것은 콘텐츠가 소비되는 형식이다. 발달된 인프라를 경험한 콘텐츠는 절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소프트뱅크 코리아 문규학 대표는 “한국의 IT 콘텐츠는 지구상 어느 나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가장 발달한 통신 및 미디어 인프라의 기반 하에서 소비되고 있다. 제작 주체들이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디지털 음원에도 깊은 관심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마이뉴스>다. <오마이뉴스>가 뉴미디어에 적합한 새로운 저널리즘을 개척했다는 점을 높이 산 손사장은 100억원이 넘는 돈을 과감히 투자했다. 국내 법인인 소프트뱅크 코리아에서까지 반대했던 투자를 강행한 것은 <오마이뉴스>가 성공을 일구어내는 배경이 된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도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10여 년 전 야후에 투자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였다.

소프트뱅크가 한국을 바라보고 벌여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업은 바로 ADSL 브로드밴드 사업이다. 2000년 초 인터넷 거품이 꺼질 무렵 시가 총액이 1백50조원까지 치솟았던 일본야후는 주가가 90% 이상 추락했다. 일본 언론에서는 연일 ‘손정의 제국’이 저물었다는 비관적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브로드밴드 사업이었다. 통신 공룡 NTT와 경쟁하며 그는 이 사업에 그룹의 사활을 걸다시피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손사장은 세계 최초로 ADSL을 상용화한 한국 시장을 참고했다. 사실 한국에 ADSL 사업을 주창한 사람은 바로 손사장 자신이었다. 당시 자문위원 자격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그는 “첫째도 브로드밴드,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라며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충고를 충실히 따랐지만, 그로부터 똑같은 충고를 들었던 NTT는 그의 의견을 묵살하고 이미 깔려 있는 ISDN을 고수했다. 

한국의 성공을 보고 자신감을 얻은 그는 야후BB를 통해 ADSL 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빠른 인터넷을 가장 저렴하게 제공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브로드밴드 사업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 지난해 5백만 가입자를 돌파하며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매년 1조원 가까운 적자를 발생시켰던 ADSL 사업은 소프트뱅크가 드라마틱한 V자 회복 곡선을 그리게 한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는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비율까지 일본시장이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야후BB를 담당하는 소프트뱅크BB는 이제 소프트뱅크 그룹의 대동맥으로 부상했다. 손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이 사업은 통신 인프라로 승부하는 단계와 영업력으로 승부하는 단계를 넘어서 이제 콘텐츠로 승부하는 단계에 들어서 있다. 소프트뱅크BB는 콘텐츠, 그 중에서도 텔레비전 분야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한류 콘텐츠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주문형 비디오 사업인 TV뱅크에서 한류 콘텐츠가 가장 경쟁력 있고 차별한 콘텐츠라고 평가하고 있다. 

 
브로드밴드와 관련해서 처음에 손사장이 주목했던 것은 한국의 온라인 게임이었다. ‘라그나로크’ 같은 게임에 일본 청소년들이 중독되어 한국 서버에 직접 접속하고 게임 캐릭터 코슈툼 플레이(의상 따라 입기)에 나서는 것을 보고 그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 천 년간 혹은 앞으로 천 년간 한국이 이렇게 주목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야후재팬에 한국의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한국 드라마 붐이 일면서 그는 한국의 영상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한류가 아시아의 주류 문화로 부상하는 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동안 소프트뱅크는 콘텐츠 확보를 위해서 할리우드 주류 제작사들과도 접촉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불법 복제 따위 문제 때문에 뉴 미디어에 부정적이었다. 소프트뱅크는 대안적인 파트너십을 한류에서 찾고 있다. 영상 콘텐츠 이외에도 디지털 음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제작자들과 소프트뱅크가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류 콘텐츠로 중국 시장 공략 노려

한류 또한 소프트뱅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너가 재일 한국인이기 때문에 소프트뱅크는 한국 콘텐츠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이 강점이다. 아시아 시장과 세계 시장에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트너십을 통해 해외로 진출할 수도 있다. 키이스트는 바로 이 비즈니스 모형을 구현할 핵심 회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 코리아의 문규학 대표는 “이제 한류의 관건은 창작의 문제에서 유통과 소비의 문제로 넘어왔다. 한류를 안정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역할은 이제 또 다른 사람의 몫이다. 그 역할을 소프트뱅크가 담당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손사장이 일본 시장 외에 한류 콘텐츠로 공략하고자 하는 곳은 바로 중국 시장이다. 현재 소프트뱅크의 중국 내 사업은 손사장이 버클리 대학 재학 시절 사업 파트너로 함께 일했던 홍량뤼와의 제휴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는 한류 콘텐츠가 소프트뱅크의 해외 사업에 있어서 킬러 콘텐츠가 되어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한류 또한 소프트뱅크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는 세 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지향하고 있다. IT 인프라 구축과 플랫폼과 포털 완성, 그리고 콘텐츠 확보 부문이다. 특히 콘텐츠 확보는 소프트뱅크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분야다.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이승근 부사장은 “향후 소프트뱅크는 1천개 정도 채널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 채널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최대 과제다”라고 말했다. 한류는 뉴 미디어 제왕을 꿈꾸는 손사장이 맞추고 있는 퍼즐의 가장 중요한 조각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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