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하고 또 무시하라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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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에 대처하는 법/불필요한 대꾸 말아야…법과 제도 빌려 응징할 수도

 
‘jinheeand’라는 아이디를 가진 한 여성은 얼마 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 토론방에 성폭력에 관한 자기 생각을 올렸다가 악플러(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대해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댓글을 즐겨 올리는 사람)들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악플러들은 ‘네가 유식하면 얼마나 유식하다고 아는 척을 하냐’며 이 여성이 글을 쓰는 곳을 쫓아다니면서까지 공격했다. 이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밥만 먹으면 속이 쓰릴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받은 이 여성은 문제의 해법을 묻는 질문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렸다. 지난해 5월에는 한 직장인이 악플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일도 발생했다.

인터넷 실명제 도입 논쟁이 한창인 가운데서도 악플 피해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악플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일부 악플러들은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만 하면 상대가 누구든 사정없이 ‘칼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산하 사이버명예훼손·성폭력분쟁조정센터(www.cyberhumanrights.or.kr)에는 1주일에 평균 100 건 이상의 상담이 접수되고 있다. 이 가운데 70∼80%가 명예 훼손이나 모욕을 당해 피해 구제 방법을 묻는 사람들이다.

악플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임수경씨나 최근 누리꾼(네티즌) 5백여 명을 고소한 김완섭씨처럼 법의 힘을 빌려 응징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사이버명예훼손·성폭력분쟁조정센터에서는 피해자나 신고인이 상담을 요청하면 피해 구제 관련 법규와 민·형사 및 행정 절차 등을 상담해주고, 기본적인 대응 방법을 알려준다. 대응 방법은 글 삭제나 사과에서부터 형사 처벌까지 악플의 유형과 경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배설’ 욕구가 악플 재생산의 근원

그러나 법이나 제도로 응징한다고 해서 개인이 받은 정신적 상처까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자들은 악플로 인한 상처를 없애려면 우선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세주 교수는 “악플은 배설 효과를 주는 동시에 사회적 영향력까지 행사하게 한다. 거기서 오는 쾌감이 악플을 상습적으로 달게 한다”라고 설명했다. 즉 자신이 단 댓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악플을 단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자극적이고 악의적인 댓글을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김교수 지적처럼 자신의 불만을 ‘배설’하려는 욕구도 악플 재생산 기제다.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정신과 이병욱 교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사랑과 미움이 공존한다. 내부에 존재하는 사악한 측면을 그대로 간직하며 버티기 힘들다고 느끼게 되면 누구에겐가 토해내게 마련이다. 그것이 악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악플을 강제로 금지하면 일부 줄어들 수는 있지만, 배설 욕구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이교수는 덧붙였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욕할 일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악플도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때까지는 악플로 인해 지나친 상처를 받지 않도록 자기 면역력을 기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신의학자들이 제시하는 최선의 해법은 ‘악플을 무시하는 것’이다. 김세주 교수는 “댓글은 짧은 글 속에 자기의 생각을 압축해 표현하는 것이어서 쓰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별 뜻 없이 쓰는 경우도 많고, 남의 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멋대로 논쟁을 이끌어 가기도 한다. 그런 글에 일일이 대꾸하고 논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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