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과자의치명적인 위험 피할 수 없을까
  • 안은주 기자 (anjsisapress.com.kr)
  • 승인 2006.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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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속의 당류, 산화 방지제, 황색 4호 등은 몸 건강과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고백하자면, 열 살짜리 딸아이를 둔 기자는 ‘나쁜’ 엄마다. 과자에 대한 부모의 태도를 보는 ‘나는 몇 점짜리 부모인가’에서 받은 성적표가 그렇다(표 참조). ‘네’라고 대답한 것이 다섯 개나 된다. 이 체크리스트를 만든 <설탕>의 저자 클라우스 오버바일에 따르면, 기자는 아이의 건강에 책임감은커녕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최근 과자의 유해성을 다룬 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슴이 섬뜩했던 부모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과자 속에 함유된 식품 첨가물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이 심화된 어린이 아토피 환자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기자처럼 별 의식 없이 자녀에게 과자를 사 준 부모들은 ‘내가 아이에게 독을 먹인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에 시달렸을 것이다. 

과자가 또 도마에 올랐다. 과자의 위험성을 고발해 온 이들은 과자의 유해성이 식품 첨가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 안병수씨(후델식품연구소장)에 따르면, 과자를 비롯한 가공 식품은 정제당과 포화지방, 식품 첨가물로 이루어진, 몸에 이로울 것이 전혀 없는 식품이다. 과자 회사에서 16년 동안 근무하며 신제품을 개발하고 과자를 먹으면서 느낀 것이란다.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사회적 정황과 과학적 증거도 적지 않다.

트랜스지방산, 인체 면역력 떨어뜨려

우선 과자의 기본 원료가 되는 밀가루부터 보자. 국내에서 소비되는 밀가루의 98%는 수입품이다.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은 “밀가루는 유통 기한이 3개월 정도인 것만 정상적인 방부처리를 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수입산 밀가루는 유통 기한인 1년을 넘어 2년, 3년을 두어도 멀쩡하다. 그만큼 방부제가 많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방부제 양을 문제 삼지 않는다 해도 영양학적으로 볼 때 정백 가공된 밀가루는 피해야 할 이유가 뚜렷하다. 밀은 정백 가공된 가루가 되면서 영양소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칼슘이나 마그네슘 같은 무기질과 비타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칼로리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과자를 고소하고 바삭바삭하게 만드는 지방은 또 어떤가. 가공 식품 제조 과정에 감초처럼 들어가는 쇼트닝이나 마가린 같은 지방은 가공 과정을 거치면서 트랜스지방산으로 바뀐다. 트랜스지방산은 인공 물질이라 체내에서 대사가 안 되고, 세포들의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해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또 지방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식욕을 조절하는 렙틴 호르몬이 이상해져 식욕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지방
 
을 섭취하지 않으면 우울증·욕구불만·강박증 등이 금단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캐럴 그린우드 박사는 쥐 실험을 통해 트랜스지방산을 많이 먹을수록 뇌 기능 장애가 심해지며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지방이 비만을 초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트랜스지방산은 햄버거 반쪽 정도만 먹어도 하루 평균량을 초과한다.

과자를 만들 때 빠지지 않는 또 하나가 설탕을 비롯한 당류다. 과자나 음료수 같은 가공 식품으로 소비되는 설탕 양이 전세계 생산량의 83.1%에 이른다. 사람들은 과자나 음료수를 통해 설탕 대부분을 소비한다는 이야기다. 안병수씨에 따르면, ‘초코파이’는 재료의 3분의 1이 설탕과 정제당이고, 쿠키나 비스켓에도 당류가 총량의 5분의 1가량 들어간다. 탄산음료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말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어린이 음료를 조사한 결과 어린이 음료 100ml당 평균 당류 함량이 12.9그램이었다. 어린이 음료수 200ml 한 잔만 마셔도 하루 당류 최대 섭취량을 몇 배나 넘는다. 사탕은 정제당 덩어리 그 자체이고, 설탕·물엿·포도당 등이 약 30%, 나머지가 색소·향료·유화제로 만들어지는 껌도 말할 것이 없다.

이처럼 아이들 먹거리에는 당류가 듬뿍 들어 있다. 문제는 가공 식품에 들어가는 당류에는 당분만 있고, 영양소와 섬유질이 전혀 없다는 데 있다. 야채나 곡류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은 서서히 분해되어 인슐린도 적당하게 분비되도록 하지만 가공 식품 속의 당류는 체내 혈당 수치를 즉시 높인다. 가공 식품의 섭취 빈도에 따라 체내 혈당 수치는 널뛰기를 하고, 인슐린 농도도 자연히 높아진다. 그러면 우리 몸은 저혈당
 
증을 일으키게 되고, 더 나아가 당뇨병으로까지 발전한다. 당류를 지나치게 많이 섭취할 경우 비만을 초래하고, 고혈압을 일으킨다는 것은 상식이다.

“당분, 아이에게 폭력성과 신경병 심어줘”

더 큰 문제는 당류가 몸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 건강까지 좀먹는다는 데 있다. 탄산음료나 과자 속에 듬뿍 들어 있는 당분은 저혈당증을 부르고, 저혈당 상태가 되면 뇌의 조절 기능을 잃게 된다. 신경질이 자주 나고 공부도 안 되며 기분이 우울해지거나 불쑥 화가 나기도 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신경 전문의 해머스미스 박사는 “단 것을 먹이는 부모는 아이에게 폭력성과 신경병을 심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경고한다.

당류만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과자 속의 일부 식품 첨가물 역시 아이들의 정신을 망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 상원 영양특위에서는 결핍·과잉 행동 장애의 약 40%는 식품 첨가물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로체스터 대학의 버나드 웨이스 교수는 식품 첨가물이 마약처럼 뇌 기능을 저해함으로써 비정상적인 행동이 나타나게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과자에 쓰인 기름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산화방지제,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위해 색을 내는 황색 4호 같은 일부 식품 첨가물을 먹을 경우 뇌를 손상시켜 의욕을 잃게 만들고 아이들을 난폭하게 만든다는 것이다(표 참조). <식사와 범죄 그리고 비행>의 저자 알렉산더 샤우스 박사는 식품 첨가물을 먹은 아이의 집중력과 학습 능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도 내놓았다.

 
일부 식품 첨가물은 알레르기를 가속화하거나 암을 유발하는 식으로 신체 건강도 해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예컨대, 초콜릿이나 과자에 폭넓게 사용되는 ‘황색 4호’는 알레르기와 천식을 유발하고 장기 투여할 때 체중 감소와 설사 등을 일으킬 수 있다(미국 FDA 식용색소 규정).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적색 2호’도 암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미국 FDA에서는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일본 후생성이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보존료 ‘터셔리 부틸 하이드로 퀴논(TBHQ)’은 독성이 강해 성인의 경우 섭취량 1g 이하에서도 정신착란이나 호흡곤란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고, 5g 이하에서 치사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식품 첨가물>의 저자이자 미국 언론인인 루스 윈터는 ‘TBHQ는 미국 식품의약국이 식품 업자들의 집요한 압력에 굴복하여 허가한 물질’이라고 고발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식품 첨가물이 아직도 합법적으로 사용된다. 국내 식품 안전 대책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한국 식품 공전에 올라간 식품 첨가물은 6백여 가지인데, 주로 미국 FDA 등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TBHQ’처럼 일부 국가에서 사용이 허가되었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인하대 의대 임종한 교수(산업의학)는 “모든 식품 첨가물의 안전성은 동물 실험 결과까지만 거쳤다.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섭취 한계량 이하라서, 또는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
 
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정부와 식품 업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라며 정부와 식품 업계의 안일한 태도를 꼬집었다. 

게다가 식품 첨가물을 복합적으로 섭취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정부와 업계는 아직 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교토 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한 사람이 보통 하루에 80여 가지, 1년에 무려 4kg에 이르는 식품 첨가물을 섭취한다. 국내에서는 일인당 식품 첨가물 섭취량과 복합 섭취 후의 반응 등에 대한 연구가 이제 막 시작했을 정도로 뒤처진 상황이다. 

업체들이 식품 첨가물을 외면 못하는 이유

식품 첨가물 섭취 실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식품 첨가물 사용 기준이 특정한 질병이 없는 성인 대상인 것도 문제가 된다. ‘환경정의 다음을 지키는 엄마 모임’ 박명숙 국장은 “똑같은 양이라도 건강한 성인이 먹었을 때와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먹었을 때는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위험할 수 있는 식품 첨가물이라면 사용 기준을 아이들 수준에 맞추어 가급적 적게 사용하게 하는 것이 상식인데, 국내 식품첨가물법은 거꾸로 되어 있다”라고 비판했다. 

물론 과자를 비롯한 가공 식품 대부분을 무조건 나쁘다고 몰아세울 수만은 없다. 현재까지 부작용이 전혀 보고되지 않은 것도 있고, 값이 저렴하고 보존 기간이 길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보건산업진흥원 조양희 박사는 “식품 첨가물 중 보존료 및 산화방지제는 인체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식중독을 예방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
 
천연 소재라도 알레르기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면역 기능이 약한 특정인은 아주 소량으로도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식품 첨가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소량이라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해롭지 않은 수준에서 잘 이용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 보면 식품 첨가물은 적은 돈으로 많은 이익을 내게 해주는 ‘효자’다. ‘첨가물을 쓰지 말자’는 원칙을 세워놓은 풀무원조차도 첨가물 없이 가공 식품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한다. 풀무원은 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물질이라 하더라도 유해성 논란이 일고 있는 합성보존료와 합성착색료, MSG 등은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른 식품 업체에서 근무하다 풀무원 기술연구소로 이직한 구자협 식문화연구원은 “첨가물만 넣으면 해결할 수 있는데,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제품 개발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다른 식품 업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식품 첨가물이 생산 공정상의 어려움을 손쉽게 해결해주는 요술 방망이와 같아 그 유혹을 떨쳐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유해성 논란에 시달리면서도 식품 업체들이 스스로 식품 첨가물 사용을 포기하는 일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비자가 식문화를 바꿔가는 길밖에 없다. 한양대 이상선 교수(식품영양학)는 “부모 스스로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아무리 졸라도 유해한 가공 식품은 가급적 먹이지 말고, 소비자들이 가공 식품을 사지 않는다면 기업들도 보다 건강에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이 알아서 조심하기 전에 정부와 사회가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안전한 식품을 만들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가 식품 첨가물에 대한 여러 가지 안전 대책을 마련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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