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론 덮친 ‘테니스 파울볼’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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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한나라당 서울시 대의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황제 테니스 파문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시장을 대선 후보감으로 꼽는 지지층은 여전히 두꺼운 것으로 나타났다.

 
잘 나가던 이명박 서울시장이 진흙탕 코트에 빠졌다. “돈 없이 정치하는 시대는 끝났다” “한국의 OECD 가입은 미국 덕이다” 같은 아슬아슬한 발언을 쏟아낼 때부터 조짐이 일더니 이른바 ‘황제 테니스’ 파문이 불거지면서 이시장은 연일 정치권과 언론의 집중타를 맞고 있다.

공짜 테니스→불법 테니스장 건립 지원 의혹→폭우·파업·철거민 시위 등 부적절한 시점의 테니스→테니스 담당 측근의 시 체육회 예산 전용 의혹 등 자고 나면 하나씩 구설이 터지고 있다. 이를 보며 일각에서는 “이러다 본게임도 시작하기 전에 이시장이 낙마하는 것 아니냐”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 직전 이해찬 총리를 낙마시킨 이른바 ‘황제 골프’ 파문과  전개 양상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명박 시장이 국제화 이미지를 한껏 부각하기 위해 기획한 미국 방문은 ‘황제 테니스’ 파문에 묻혀 그 성과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동행 기자들 경비를 시 예산으로 지원했다는 또 다른 시비 거리만 낳은 터였다.

하지만 이번 테니스 파문이 이시장의 급격한 추락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정가의 중론이다. “이명박 시장이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정치적 공격을 당하는 것이다” “사과했으면 되었지, 지지율이 떨어질 만큼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지 않느냐”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렇게 내다보았다.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의 수뢰 건이 터졌을 때도 이명박 시장이 곧 무너질 것처럼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제 지지율 조사를 해보면 별 변화가 없었다. 이번에도 한나라당 지지층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비 한나라당 지지자 가운데 이명박 시장 개인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일부 동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부분에 그칠 것이다.”. 지지자들 눈높이에서 볼 때 이번 테니스 파문이 찜찜하기는 하지만 이사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만큼 ‘결정타’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분석은 공격을 퍼부어대는 여권 안에서도 비슷하게 나온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여권에는 굉장히 엄격하게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이명박 시장에게는 다소 관대한 측면이 있다”라고 했고, 열린우리당 전략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광재 의원 역시 “당장 대선 후보 지지도 순위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3월21일자 <내일신문>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세간의 관측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내일신문>이 3월18일 전국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 이해찬 총리 골프 파문, 이명박 시장의 공짜 테니스 파문 등 일련의 사건 중 지방선거에 가장 영향을 미칠 것이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39.5%)과 ‘이해찬 총리 골프 파문’(37.4%)을 엇비슷하게 꼽았다. 이에 반해 ‘이명박 시장 공짜 테니스 파문’을 꼽은 이는 4.7%에 불과했다. 그만큼 테니스 파문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시사저널>이 3월21·22일 이틀간 한나라당 서울시 대의원 1천3백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시장의 건재함을 보여준다.

‘이명박 신당설’에도 대다수가 부정적

이번 조사의 1차 목적은 맹형규·홍준표 등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군의 경쟁력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쪽 관련 기사와 조사방법 참조). 그런데 ‘누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가장 적합하다고 보는가’라는 부가 질문에 응답자의 67.2%가 이명박 서울시장을 꼽았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꼽은 사람은 20.2%에 그쳤다. 이때는 이시장의 테니스 파문이 확산 일로를 걷고 있던 시점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안에서는 이명박 대세론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명박 신당설’에 대해서도 응답자들은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신당 가능성이 낮다는 쪽이 70.7%로, 신당 가능성이 높다(23.2%)의 세 배가 넘었다. 요컨대 ‘이시장이 한나라당 대선 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생뚱맞게 웬 신당이냐’라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두 조사로 ‘황제 테니스’ 파문의 강도를 일반화하기에는 저마다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내일신문> 조사는 조사 시점이 이시장 테니스 파문이 터진 직후라 그 파장이 온전하게 반영되지 않았을 공산이 크고, <시사저널> 조사는 일반인이 아닌 한나라당 대의원, 그 가운데서도 서울시 대의원만이라는 조사 대상의 제약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테니스 파문의 단기적 효과를 가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지표’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시장은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일까. 이시장이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당장은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이 적더라도, 멀리 보면 이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차곡차곡 쌓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이번 파문이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나면야 별 문제 없겠지만, 비슷한 사건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3진 아웃될 수밖에 없다”라면서, 이시장 진영에 일단 경보음이 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경박함에 특권층 이미지까지 보태졌다”

정치 평론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이시장이 ‘가볍다’는 이미지에 더해, ‘특권층’이라는 이미지까지 얻게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 봉헌 발언, 광주 5·18 묘역에서의 파안대소 사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수도 이전을 막고 싶다고 한 발언 등으로 ‘경박하다’는 이미지가 적잖이 형성되었는데, 이번 테니스 파문으로 ‘도덕적 불감증’ ‘구태’ ‘특권 의식’이라는 이미지가 보태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시사 평론가는 “지금은 이시장이 실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청계천 약발이 다하고 누가 대통령감이냐가 화두가 될 때는 이런 이미지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잔매에 멍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아닌 게 아니라 청계천 노점상들이 철거에 반대해 시위를 벌였던 날도 이시장이 테니스를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한 노점상은 “우리가 삶의 터전을 놓고 생존 투쟁을 하는 시간에 이시장이 테니스를 했다는 것이 놀랍다. 이시장이 대권에 신경 쓰는 만큼 서민들의 삶에 신경 쓰기를 바라는 게 무리인 것 같다”라고 비난했다.

연일 이명박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여권은 이시장 공격을 통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우선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유력 대선 주자에 대한 흠집내기다. ‘샐러리맨의 신화’ ‘청계천 신화’ 따위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이시장이 실제로는 특권의식과 대권욕에 사로잡힌 인물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해찬 골프 파문으로 불리해진 여론을 반전시켜 5·31 지방선거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이다. 특히 양극화 해소와 지방권력 심판론을 5·31 지방선거의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운 열린우리당측에 이번 ‘황제 테니스’ 파문은 딱 떨어지는 먹잇감이다. 여당이 4월 국회를 ‘이명박 국회’로 몰고 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 번째는 한나라당 내부를 이간질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과 이명박 시장의 황제 테니스 파문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은 심상치 않은 적전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연희 의원 사건이 터졌을 때는 최의원을 감싸는 듯한 박근혜 대표에 대해 이른바 이명박계 의원들의 불만이 거세더니, 황제 테니스건이 터지자 박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엄호는커녕 나 몰라라 하는 양상이다. 박대표측은 “개인적인 문제라 당이 나서기 곤란하다”는 입장이지만, 이시장측은 “이미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한나라당 유력 주자에 대한 정치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당이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박대표가 은근히 이시장의 불행을 즐기고 있다고 불평한다. 열린우리당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 “한나라당 주자들은 참 의아하다”를 연발하고 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이명박 시장으로서는 이런 여권의 파상 공세와 한나라당 내부의 견제를 동시에 견뎌내야 할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이시장측은 일단 “이회창 전 총재처럼 맥없이 당하지는 않겠다”라며 1차 저지선을 쳤다. ‘명예훼손’ ‘무고’ 등을 거론하며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어떻게든 파문의 확산을 막고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시장 진영 안에서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화되는 데는 속수무책이다. 급한 대로 이시장에게 자숙을 촉구하고 주변 단속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참모진의 생각이지만, 만에 하나 ‘서울시 복마전’을 연상시키는 제2, 제3의 사건이라도 불거진다면 그때는 정말 치명상을 입으리라는 내부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 참에 2등으로 내려앉는 게 더 낫겠다”는 얘기가 나올까. 이러다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의 한 축은 고스란히 이시장이 질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4·5월은 이시장에게 편치 않은 봄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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