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 새끼’여 변화하라
  • 김홍식(조이뉴스 미국 특파원) ()
  • 승인 2006.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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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 타격 자세 바꿔야 강타자 가능성…출장 기회는 더 늘어날 듯

 
미국 애너하임에서 벌어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과 일본의 본선 2라운드 경기를 취재하던 중 왕년의 메이저 리그 스타 덕 디신세스의 아들, 팀 디신세스를 우연히 소개받았다. 덕 디신세스는 전설적인 3루수 브룩스 로빈슨의 뒤를 이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주전 3루 자리를 차지했다가 또 다른 전설적인 스타 칼 립켄 주니어의 등장 때문에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선수 교환·이적)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팀 디신세스는 2000년 더블A에서 포수로서 최희섭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떠올렸다.
포수로서 많은 타자들의 스윙을 바로 뒤에서 보았지만 최희섭과 같은 스윙 속도와 힘은 흔하게 보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소감이었다. 특히 몸 쪽 공을 ‘파내는’ 힘에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 리그에서 본 최희섭은 왜 그렇게 몸 쪽 공에 약한지 모르겠다”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이너 리그 시절 상대 포수마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최희섭은 결국 지난 3월25일(한국 시간) LA 다저스에서 웨이버(waiver: 구단이 소속 선수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제해 방출하는 것)로 공시되어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시카고 커브스, 플로리다 말린스, LA 다저스에 이은 네 번째 팀. 메이저리그에 최희섭의 미래는 있을까.
2002년 최희섭이 메이저 리그에 올라왔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그를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신경식에 비유했다. 190cm의 당당한 체격을 갖춘 교(巧)타자 신경식처럼 최희섭도 거포라기보다는 선구안이 좋고 밀어치기에 능한 교타자라는 주장이었다.

“몸 쪽 공 파내는 힘 놀라워”

오른손 타자에 비해 왼손 타자는 밀어치기에 능하다. 메이저 리그에서 힘이 동반되지 않은 왼손 타자의 밀어치기는 그리 큰 효용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지난해 약물 복용으로 추락한 라파엘 팔메이로는 1988년 시카고 커브스에서 0.307의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도 이듬해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당시 감독이던 돈 짐머가 그의 밀어치기에 넌더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팔메이로는 친구이자 당시 커브스 에이스였던 릭 서트클리프를 앞세워 트레이드를 막기 위한 로비를 펼쳤지만 결국 팀을 떠나야 했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왼손 타자의 당겨치기가 필요한 것은 우전 안타를 만들 경우 손쉽게 1, 3루를 만들 수 있고 외야 플라이나 내야 땅볼로도 2루 주자를 3루에 보내기 쉽기 때문이다. 또 당겨치기를 해야 장타가 나올 확률도 높아진다. 최희섭은 데뷔 시절부터 팔메이로와 같은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한국에서 신경식과 그를 비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진정한 거포로 변신하라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최희섭은 LA 다저스에서 활약한 지난해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시즌 초반 불안했지만 6월11일부터 15일까지 네 경기에서 무려 일곱 개나 홈런을 쳐내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폴 로두카를 내주고 최희섭을 데려온 폴 디포데스타 단장의 트레이드에 불만을 품은 짐 트레이시 감독은 결코 최희섭이 자리를 잡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방망이에 불이 붙을 만하면 타순을 바꾸었고 컨디션이 상승세인데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시켰다.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한 것은 그런 면에서는 잘된 일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보스턴 단장 테오 엡스타인 역시 디포데스타와 마찬가지로 출루율과 장타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빌 제임스 문하생’이기 때문이다.

올 시즌, 마이너 리그에서 출발할 듯

팀 상황도 다저스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다저스에는 주전 1루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부상을 당한다 해도 올메도 사엔스 등 경쟁자가 즐비하다. 이에 비해 보스턴에서는 일단 주전 1루수 케빈 유킬리스나 왼손 백업 J. T. 스노가 부진할 경우 자리를 엿볼 수 있다. 또 노쇠 기미를 보이는 3루수 마이크 로웰이 부진하면 유킬리스가 다시 3루로 가게 되고 그럴 경우에도 최희섭에게 순서가 오게 되어 있어 일단 경우가 수가 다저스보다 많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최희섭이 자신의 스윙을 되찾는 일이다.
은퇴한 메이저 리그 강타자 안드레스 갤러라가는 움직이는 물체를 파악하는 자신의 ‘운동 시력’이 오른쪽 눈이 월등하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투수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오픈 스탠스로 바꾼 뒤 전혀 다른 강타자가 되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 평범하기만 했던 루이스 곤살레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도 극단적인 오픈 스탠스로 바꾼 뒤 강타자로 거듭났다. 2001년 타율이 2할2푼대로 추락, 주전자리에서 밀려날 위기에 놓여 있던 팀 새먼(LA 에인절스)은 타석에 섰을 때 자신의 귀 높이에 있던 양 손의 위치를 가슴으로 내린 뒤 2002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최희섭은 지난 겨울 몸쪽 공과 바깥쪽으로 흐르는 변화구에 대처하기 위해 스탠스를 조금 열고 타석에서 투수 쪽에 가깝게 서는 위치 변화를 시도했지만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최희섭은 아직도 ‘미운 오리 새끼’임에 틀림없다. 엡스타인 단장은 최희섭이 올 시즌 출발을 마이너 리그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소한 변화가 그를 메이저 리그 정상급 타자로 변신시킬 수도 있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그에게 필요한 건 변함없는 노력,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팬들의 따뜻한 격려와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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